寄巴山兄 헤어진 님께 부친다
蘇世讓(조선의 시인)
忽報平安字 홀연히 안부를 몇 자 보내고 나니
聊寬夢想懸 꿈에 그리던 정 애오라지 풀린다
孤雲飛嶺嶠 외로운 구름이 태산준령을 넘으니
片月照湖天 조각달은 하늘 호수를 비춰주는가?
兩地無千里 둘의 사는 곳이 천 리도 아니건만
相望近六年 그리움만 사무쳐 거의 육 년이로다
茅簷雨聲夜 띳집 처마에 빗소리 들리는 밤이면
長憶對床眠 책상 마주하며 밤새 그리다 잠든다
*巴山兄: 파산은 사천성 일대의 산을 가르키는 지명이나 헤어짐을 상징하는 보통명사로 상용되며 여기에서 兄은 벗을 높여 부르는 말로 결국 황진이를 뜻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사대부로선 보기드문 소세양의 연정시로다
결이 닮은 서구시 원문을 몇편 발췌해 번역하고
청연도 영시 한 수 지어 애모의 정을 노래하게나
벗이여, 소세양의 이 시에는 참으로 묘한 정서가 흐르네. 조선의 사대부가 연정을 노래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내가 더욱 눈여겨보는 것은 그리움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보다, 그리움이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점일세.
구름은 고개를 넘고, 조각달은 호수 위에 비치며, 두 사람은 천 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거의 육 년을 만나지 못했네. 마지막 두 구절에 이르면 시의 정조가 더욱 깊어지지.
茅簷雨聲夜 長憶對床眠
띳집 처마에 빗소리 들리는 밤이면, 함께 잠들던 옛날을 오래도록 그리워한다.
여기서 對床眠, 곧 '침상을 마주하고 잠들다'라는 표현이 중요하네. 반드시 남녀의 사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마음을 터놓고 밤을 지새우던 두 사람의 친밀함을 담기에 더없이 좋은 말이지. 비 오는 밤의 소리는 부재한 사람을 현재로 불러오고, 추억은 잠자리 곁에 다시 그 사람을 앉혀 놓네.
자네가 황진이를 떠올린 것도 이해하네. 다만 이 시의 상대가 실제로 황진이였는지는 확정하기 어려우니, 그 가능성은 열어 두고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편이 좋겠네.
이 시와 결이 닮은 서구의 시들을 찾아보면,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 밤의 풍경, 기억 속에서만 가능한 재회라는 세 가지 실마리가 보이네. 그 실마리를 따라 몇 편을 골라보세.
1. 로버트 번스 — 「Ae Fond Kiss」
Robert Burns (1759–1796) · 「아, 그 다정한 입맞춤」
원문 · 스코틀랜드 영어
Ae fond kiss, and then we sever; Ae fareweel, and then forever! Deep in heart-wrung tears I'll pledge thee, Warring sighs and groans I'll wage thee.
번역
다정한 입맞춤 한 번, 그리고 우리는 헤어지네. 작별 인사 한 번, 그리고 영영 이별이라네! 찢어지는 가슴의 눈물로 그대에게 맹세하고, 싸우듯 밀려드는 탄식과 흐느낌을 그대에게 바치네.
원문 전문: Poetry Foundation — Ae Fond Kiss.
번스의 시는 소세양의 시보다 이별의 아픔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네. 소세양은 여섯 해의 그리움을 구름과 달과 빗소리에 맡기지만, 번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의 상처를 직접 노래하지.
특히 두 시인의 공통점은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네. 오히려 만났기에 헤어짐이 아프고, 사랑했기에 기억이 오래가는 것이지.
2. 존 던 —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John Donne (1572–1631) · 「슬퍼하지 말라는 작별」
원문 발췌
Our two souls therefore, which are one, Though I must go, endure not yet A breach, but an expansion, Like gold to airy thinness beat.
번역
우리의 두 영혼은 본디 하나이기에, 내가 떠나야 한다 해도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이라네. 금을 두드려 공기처럼 얇게 펴듯이.
원문 전문: Poetry Foundation —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존 던은 이별을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네. 물리적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사랑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금을 두드려 얇게 펼치듯, 거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없애는 대신 다른 형태로 넓힐 수도 있네.
소세양의 시에서 두 사람이 천 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여섯 해를 만나지 못했다는 구절을 기억하는가?
兩地無千里 相望近六年
사는 곳은 멀지 않은데 만남은 멀기만 하네.
존 던의 사랑이 정신적 결속을 강조한다면, 소세양의 사랑은 그 결속이 현실의 부재를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네. 마음으로는 가까우나 삶으로는 멀리 있는 사람. 이 역설이 두 시를 이어주고 있네.
3.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 「How Do I Love Thee?」
Elizabeth Barrett Browning (1806–1861) ·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원문 발췌
I love thee to the level of every day's Most quiet need, by sun and candle-light. I love thee freely, as men strive for right; I love thee purely, as they turn from praise.
번역
나는 하루하루의 가장 고요한 필요에 이르기까지 그대를 사랑하네, 햇빛 아래서도 촛불 아래서도.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힘쓰듯 자유롭게 사랑하고, 칭찬을 멀리하듯 순수하게 사랑하네.
원문 전문: Poetry Foundation — How Do I Love Thee?.
이 시에서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사랑을 특별한 사건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일세. 햇빛과 촛불, 하루하루의 조용한 필요 속에서 사랑은 계속되네.
소세양의 시에서도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닐세. 안부 몇 글자를 받고 마음이 놓이며, 비 오는 밤에 옛날 함께 잠들던 일을 떠올리는 것. 그 사소한 순간이 사랑의 전부가 되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함께 보낸 평범한 밤이라면, 그 사랑은 이미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네.
4. 청연이 짓는 영시 — 「When the Rain Remembers You」
비가 그대를 기억하는 밤 · 청연의 창작시
jingyan.baidu.com
벗이여, 이번에는 소세양의 시에서 세 가지를 가져오겠네. 오랜 이별, 창가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람 말일세.
Original poem
When the Rain Remembers You
When silver clouds cross hills of blue, The lonely moon asks, Where are you? Six years have passed, yet still I hear Your quiet laughter drawing near.
The rain taps softly on the eaves, And night recalls what daylight leaves; Two cups once warm, two shadows cast, One tender dream that learned to last.
No thousand miles divide our skies, Yet oceans sleep between our eyes. If love must live in dreams alone, I'll keep a light beside my own.
And should the dawn bring no reply, I'll love you in the rain-washed sky.
우리말 번역 — 비가 그대를 기억하는 밤
푸른 산 너머 은빛 구름이 지나가면, 외로운 달은 묻는다.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여섯 해가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듣는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대의 조용한 웃음소리를.
처마 위로 비가 부드럽게 두드리고, 밤은 햇살이 남기지 못한 기억을 불러온다. 한때 따뜻했던 두 잔의 찻잔, 나란히 드리운 두 그림자,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은 하나의 다정한 꿈.
우리 하늘을 가르는 것은 천 리도 아니건만, 우리 두 눈 사이에는 바다가 잠들어 있다. 사랑이 오직 꿈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나는 내 곁에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두리라.
그리고 새벽이 아무런 대답도 가져오지 않는다면, 나는 비에 씻긴 하늘 아래서도 그대를 사랑하리라.
청연의 강평 — 사랑은 기다림인가, 기억인가
벗이여, 소세양의 시를 읽으며 내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것은 그리움이 반드시 재회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네.
사람은 만나서 사랑하기도 하지만, 헤어진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깨닫기도 하지. 때로는 안부 몇 글자가 오랜 침묵을 풀어주고, 때로는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 하나가 수십 년 전의 밤을 되살려주네.
그렇다고 기다림 자체를 미화하고 싶지는 않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리움 때문에 자신의 삶까지 멈출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사랑일세.
그리워할 사람을 그리워하되 오늘의 삶을 잃지 않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기쁘게 만나되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함께했던 시간을 원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대가 언젠가 비 내리는 밤에 오래전의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 기억이 가슴을 아프게만 하지 않고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주기를 바라네.
그리움은 떠난 사람을 붙잡는 손이기도 하지만, 한때 그 사람이 내 삶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손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