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住民의 용광로를 접수하는 신라의 인재들]
석 산 박 영 석
移住의 출발점은 세상이 전란으로 혼란하던 시대에 아버지 우거수 호공 대에서 시작
되었으나 남하도중 BC57년 우거수 호공께서 돌아가시니, 13세의 아들이 시조왕으로
추대되어 혁거세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경주도읍은 파사왕 때임.
시대의 혼란상으로 짐작은 했으나 되짚어 보기도 싫은 戰爭의 渦中에 脫鄕의 길이었
으니 黃幢함이야 어찌 말로 다 表現할 수 있었으리오. 아득하기만 한 남행길, 멀고
먼 한반도로 가는 길, 드넓은 만주 땅 어느 곳 하나 편하고 쉬운 길은 없었지요.
고난의 연속이라 말하기조차 고통스러운 길 千辛萬苦 끝에 漢江 邊에 도착하였으나
辰韓과 10濟의 反抗이 너무도 極甚하여 漢江을 十濟에 넘기고, 淸州로 移動해갔습니다.
거기에는 먼저 온 김씨 세력과 석씨 세력들이 울타리를 치고 방어하고 있어, 그동안
엄청난 다툼에 지친 박씨세력은 서로 타협하여 박석김이 번갈아 가며 政權을 잡기로
하는 共和制로 하기로 定하는 정치적 合意를 보았습니다.
고단하고 힘들어도 歲月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나라를 정비하는 일은 반드시 해나가야
하는데 겨우 나라 기틀을 만들고 있는데 또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 편안할 날이 없는 가
운데, 예기치 않은 문제는 터지고,
245년 魏나라 (무구검)軍隊가 고구려를 侵略後 回軍시 一部인 오환족 선우 구루돈 군대가
南行하여 新羅를 接受 하였고. 3년후엔 서불한이된 구루돈이 11대 조분왕을 밀어내고,
12대 첨예왕을 옹립하며 지배세력의 위세를 떨친다.
신라라는 나라는 가히 종족의 용광로라 할많금 이주민의 나라로, 고조선족, 혁거세족(오
환족,신라족),석씨족, 김알지족, 흉노오환족, 진나라 유민,혁거세를 따라온 이웃들 오환족,
이웃흉노족, 선비족, 동호족, 낙랑인, 말갈인, 예족, 등 기타 여러부족으로 천년의
토대 위에 이주민의 나라로 세워지고 성장한 나라라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후인 342년 慕容皝 鮮卑가 5만5천軍事로 고구려를 攻擊 後, 한때
支那大陸에 前燕을 建國했으나, 얼마지 않아 分列된 北燕이 436年에 高句麗에 投降(고구
려인구의3분지1)하여,많은 餘裕兵力을 서라벌로派遣, 이들이 新羅王室을 찬탈(簒奪)하니
慕容鮮卑가 서라벌을 실질적으로 接受하게 되고. 같은 동호계열인 오환족과 협의 하여
신라의 支配階層으로 변신한다. 여러 가지 사건이 重疊되는 사이 歲月은 흐르고 흘러,
1).移住 2세대가 되는 新羅 出生 鮮卑族 出身 17대 奈勿王(尼師今356-402)이 執權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