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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이슬
요한 묵시록은 티투스의 동생인 도미시아누스(81-96년) 치세 말기에 씌어진 것 같다.
도미시아누스 황제는 치세 말기에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으로 자처하면서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배척하는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특히 로마와 에페소에는 웅장한 황제 신전을 짓고 참배를 강요했다.
베르가모에 있던 "사탄의 권좌"(묵시 2:13)도 황제 신전을 가르키는 것 같다.
이런 박해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로 편지를 보내어 그리스도 신앙을
온전히, 그리고 굳세게 지키라고 촉구했다. 일곱 교회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공동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 교회를 뜻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일곱'은 전부를 가리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본디 바오로와 그의 제자들은 아시아 속주에서 전교했다.
바오로가 제3차 전도여행중 에페소에서 무려 27개월 동안 대대적으로 전교했는가 하면, 그의 제자 에바프라가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450여 리 떨어진 라오디게이아에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1세기 말엽 요한 복음서, 요한 1-3서, 요한 묵시록 등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무렵에는
바오로계 종파는 현저히 약화되고 요한계 종파가 매우 득세했다.
비잔틴 시대에 아시아 속주에 세원진 교회들이 요한 성당으로 불린 사례는 흔한 반면(에페소, 베르가모, 필라델피아)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
■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 에페소 (Ephesus)
[사도 요한 기념 교회]
에페소는 스미르나(오늘날 Izmir)로부터 74km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바올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Kaystros)강을 타고 흙이 씻겨내려와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못하고 바다와 에페소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겼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희라브이 장군 Lysimachos는 에페소에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을 세워 에페소를
크게 발전시켰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에페소는. 소아시아 서부지역의 수로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하였다.(오늘날 발굴되는 에페소의 모습은 로마시대의 것이다.)
기원전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죽이자,
로마의 실라(Sylla) 장군은 에페소를 완전 초토화 시켰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7년-서기 14년 치세) 때
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아시아 속주의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의 에페소는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의 노고로 발굴된 것이다.
4세기경에 에페소는 소아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431년 에페소 종교회의(Council of Ephesus)에는 200여명의 주교들이 모여 마리아의 신학적인 위치에 관한
중대한 결졍을 내려 Nestorian 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이 에페소 종교회의에서 마리아는 "Mother of God"으로 확인되었고
정통교리인 니케아신경이 재확인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였던 네스토리아파는 파문을 당하였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2장 1-5절
1 "너는 에페소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당신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등경 가운데를 거니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2 너의 행한 일과 너의 수고와 인내를 나는 알고 있으며 그리고 네 악한 자들을 참을 수 없다는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자칭 사도라고 하는 자들을 네가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으며 내 이름 때문에 고통을 참아 냈고 용기를 잃지 않았다.
4 그러나 나는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여라. 회개하고, 처음에 행하던 일을 행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찾아가겠고 만일 그래도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네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
■ 스미르나 (Smyrna)
[스미르나 교회 내부(폴리갑 기념교회)]
사도 요한의 수제자 폴리갑 주교가 시무(施務)한 곳으로 폴리갑 교회라고도 한다.
160년 교회를 핍박하던 박해자들이 폴리갑 주교에게 예수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을때
그는 "예수님을 믿은지 86년 동안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잘못하신 일이 없는데, 어찌 주님을 모른다고하리오"라고 대답하여
화형에 처해졌는데, 화염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순교하였다.
지금 이즈미르라고 하는 이 도시는 이스탄불 약631킬로미터의 거리에 있다.
B.C 3,000년부터 형성된 이 항구도시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명을 받들어 라시마쿠스 장군이 파고스 산에는
요새를, 해안에는 항구를 건설하였다. 이 성채는 지금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스미르나는 기원 전27년 로마와 합병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이곳은 항구 상업도시였으며 Diaspora Jew들이 이곳에 살았다.
묵시록의 저자는 스미르나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박해를 당하리라고 예고 하면서,
그럴 때 일수록 신앙에 충실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훈계를 했다(묵시 2,8-11).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Polycarp 69-155년 생존)의 순교록에 보면 2세기에 실지로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박해가 있었다.
폴리카르푸스는 예수의 직제자들과 교부들 사이에 연결고리 구실을 한 중요한 교부이다(이레니우스 "반이단론" 3.3.4).
그는 마르치온계 밀 발렌티누스계 영지 주의자들과 설전을 벌이곤 했다.
순교록에 보면 총독이 주교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놓아 주겠노라고 하자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을 섬긴지가 86년이나 되었소. 그분이 제게 단 한가지도 잘못하신 일이 없었소.
그러니 저를 구원하신 제 임금님을 어떵게 저주할 수 있겠소"
이즈미르에는 주교님의 순교 기념 대주교좌성당이 있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2장 8-11절
8 "그리고 너는 스미르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나는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 그러나 너는 부요하다 - 그리고 네가 자칭 유대인이라는 자들에게서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모임이다.
10 네가 장차 당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너희 중 몇몇을 감옥에 던지려 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너는 죽기까지 충실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네게 주겠다.
11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승리하는 이는 둘째 죽음에서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 베르가모 (Pergamos)
[베르가모 교회]
옛성채 한 모퉁이에 남아있는 교회로 이 건물은 본래 이집트의 세라피스신전으로 사용되던 것을
비잔틴 제국 당시 베르가모 교회로 사용하였다.
묵시록 2장 12-17절에 나오는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선사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곳이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의 막료 러시마쿠스(Lysimachus) 장군이 베르가모 일대를 통치하다가
기원전 281년 시리아의 셀레우코스왕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러시마쿠스의 부하 필레타리우스가
베르가모를 수도로 삼아 베르가모 왕국을 세웠다.
베르가모는 독립된 왕국의 중심이 되어 높은 문화를 이루었다. 기원전 133년 마지막 왕앗달로스 3세가 죽으면서
왕국을 로마공화국에 헌납하게되고, 베르가모는 아시아 속주에 편입하게 되었다.
베르가모에 가면 시가지 동북쪽 높은 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천년요세(Acropolis)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베르가모 왕궁, 멀리서 식수를 끌어들여 저장한 저수장, Enmenes 2세 (197 - 159 B.C.)가 지은
큰 도서관이 있고, 가파른 언덕빼기에 만들어진 노천극장을 볼수 있다.
또 이곳 시가지 서쪽 외곽지대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117-138년 재위)때 지은 방대한 종합의료시설(Asclepieum)이 있다.
이곳은 BC 4세기부터, 그후 A.D 400년대까지 약 800년간 소아시아에서 의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로마황제 Caracalla (A.D. 211 217)도 이곳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황제는
거의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 원형극장을 세워주었다.
이곳의 치료방법은 약물요법 이외에 정신요법, 일광욕, 운동요법, 맨발걷기요법, 음악요법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도미시아누스(81-96년 재위)의 신전과 함께 묵시록 2장 13절에서 말하는 '사탄의 권좌'로 추정되는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이곳에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 건축물은, 밑으로 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본래 희랍-이집트 신인 Serapis를 위한 신전이었는데. 비쟌틴 시대에 내벽을 쌓아성당으로 개조하여
사도 요한성당이 된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비쟌틴 시대에 사도요한이 거둔 성과는 매우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이 교회의 유적이 남아있다. 이곳의 부의근거는 농업과 은광, 가축, 양털직조 그리고 글씨쓰는 양피지(parchment)였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2장 12-17절
12 "그리고 너는 베르가모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3 네가 어디 살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곳에는 사탄의 권좌가 있다.
그러나 너는 내 이름을 굳게 지켜 왔고 또 사탄이 살고 있는 너희 도시에서 죽임을 당한 나의 충실한 증인
안티파스 때에도 너는 내게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14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너에게 발람의 가르침을 고집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발락을 가르쳐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던져 놓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하고
또 음란한 짓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15 그와 마찬가지로 너에게도 니골라오파의 가르침을 고집하는 자들이 있다.
16 그러므로 너는 회개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곧 너를 찾아가서는 내 입의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17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승리하는 이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주겠고
또 그에게 흰 돌을 주겠다.
그 돌에는 새로운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 티아디라 (Thyatira)
[티아디라 교회]
이즈미르(스미르나) 북동쪽으로 105km 악세르 호수 남쪽에 있는 교회터에는 석축 기둥과 담장만 남아 있다.
베르가모에서 동남쪽으로 85키로미터 떨어진 평원 한 가운데 현대도시 아키사르가 있다,
일부러 찾아가봐야 유적이라고는 도심에 자리잡은 비쟌틴 시대 성당 페허가 고작이다.
사도행전 16:11-15에 의하면 사도바울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 빌립비에서 맨 먼저 입교한 사람이
바로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사 리디아라는 여인 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티아디라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 했다. 이 비단은 꼭두서니 뿌리에서 추출한 물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고가품이어서 부호들이나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680년경의 리디아 인들이 티아디라와 사르티스 일대에 리디아 왕국을 건설하여 위세를 떨첬으나
기원전 190년 베르가모 왕국이 이곳을 통치하기까지 여러 왕국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을 점령 했다.
사도 바올로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입교 시킨 사람이 이곳출신이고, 특히 옛 조상의 왕국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사실과,
물욕 때문에 전도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교우들로 부터의 어떤 물질적 도움을 거부하던
바올로 일행이 리디아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과 묵시록의 7교회에 보낸 편지중 티아디라에 보낸 편지가
가장 길다 (묵시 2:18-29)는 것은, 많은 것을 묵상케 한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2장 18-29절
18 "그리고 너는 티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하느님의 아들,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시고
그 발이 놋쇠와 같은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의 행한 일과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나중에 행한 일이 처음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20 그러나 나는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이세벧이라는 여자를 그대로 놓아두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예언녀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미혹케 하여 음란한 짓을 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하였다.
21 나는 그 여자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에서 돌아서려 하지 않았다.
22 보라, 내가 그를 병상에 던지겠고, 그와 간음하는 자들도, 그의 소행에서 떠나 돌아서지 않는다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버리겠다.
23 그리고 그의 자식들도 죽음으로 덮쳐 없애 버리겠다.
그리하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자에게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
24 그러나 티아디라에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이" 를 알지 못하는
너희 남은 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지키고 있어라.
26 승리하는 사람, 그리고 나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그에게 나는 이방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겠다.
27 그는 마치 질그릇을 부수듯이 쇠지팡이로 그들을 거느려 다스릴 것이다.
28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았듯이 그 권능을 주겠다. 그리고 그에게 샛별을 주겠다.
29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 사르디스 (Sardis)
[사르디스 교회]
둥근담과 아치형 창문이 교회, 뒷쪽에 거대한 돌기둥만 남아 있는 것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폐허이다.
사르디스지역에서는 금이 많이 생산되어 최초의 주화인 금화가 만들어진 곳이다.
사르디스교회의 성도들은 물질문화에 빠져 도무지 신앙이 자라지 않으므로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은 교회였다.
아키사르(티아디라)에서 남쪽으로 70키로미터 지점에 리디아 왕국(기원전 680-546년경)의 수도였던
사르티스 페허가 있다.
티아디라에서 62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살리흘리(salihli) 읍내를 거쳐 사르디스에 도착하면 국도 오른편애
웅장한 체육관이 보인다.
서기 193-235년에 세운 체육관인데 다 무너진 것을 하버드대학과 코넬대학 고고학 팀이 1985년-1973년 사이에 발굴 복원했다.
체육관 옆에있는 4세기 말엽의 유대교 회당은 유대인들의 경제적인 도움으로 역시 같은 팀들이 복원 했다.
무었 보다도 트몰루스(해발 2,137미터) 산아래 자리잡은 아르데미스 신전이 장관이다.
에페소의 아르메데스 신전이 더 크다고 하지만 초석은 늪 속에 묻혀 있고, 형체는 거의 살아저버린 데 비해
이곳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이 신전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명으로 짓기 시작하여 끝내 마치지 못한 미완성 신전이다.
큰 돌 기둥 78개가 숲을 이루는 이 엄청난 석조물들 오른쪽 귀퉁이에 비쟌틴 시대에 세운 작은 성당이 붙어 있다.
사르디스 주교로 가장 알려진 주교는 부활론을 집필한 엘리토(190년경 사망)이다.
그는 유대월력에 따라 나산달 15일에 부활 축일을 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요일에 예수 부활 축일지낸 서방교회와 오랫동안 전례상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멜리토는 예수께서 "본성으로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시다"(Physei thcos on anthropos)라는 정통 그리스도론을
주장했다.
멜리토 성인의 축일은 4월1일 이다. 관련 성서 구절은 요한 묵시록 3장 1-6절이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3장 1-6절
1 "그리고 너는 사르디스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소행을 알고 있다.
네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름뿐, 실상 너는 죽어 있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지만 죽어 가고 있는 것을 굳건하게 하여라.
네 소행이 내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가르침을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떠올리며 그것을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고, 너는 내가 어느 시간에 너에게 올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 너에게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몇이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거닐 것이니 그들은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이는 이와같이 흰옷을 차려 입을 것이다.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고 나의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말할 것이다.
6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필라델피아 교회]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으로 인해 두개의 육중한 돌기둥과 주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 필라델피아는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도시대에 살고 있었다.
폴리갑이 순교할 때 필라델피아의 신자 10명이 순교하였고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이곳 신자들은 불안했으며
이 불안은 이들의 신앙을 뜨겁게 했다.
사르디스(지금의 사르트마을)에서 동남쪽으로 45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옛날의 필라델피아.
지금의 알라쉐히르 읍내가 있다.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도께서는 일곱교회 가운데서 오직 스미르나 교회와 더불어 필라델피아 교회만은
나무라시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교회만은 오히려 칭찬 하셨다.
14세기경 주변이 죄다 오스만 부르크군에게 점령 당했으나 필라델피아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자체방어를
하더니 1379년 비쟌틴 황제 요한 5세와 오스만 브르크 슘탄 뮤라트1세 간에 정치적 거레로 오스만 제국에 편입 되었다.
B.C 159-138년 버가모(Pergamum)의 왕 Attalus 2세, Philadelphus에 의해 이 도시가 세워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는 Philadelphia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이곳은 사르디스(Sardis)와 베르가모(Pergamum)그리고 라오디게아(Laodicoa)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은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산업이었다.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이 도시가 대파되었다. 로마황제 디베리우수(Tiberius)는 이 도시를
건설하는데 크게 도와주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이에 감사하며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을 세웠다.
그 크기는 약 100m×50m 이고. 신전 둘레는 56개의 석주가 들어있다.
이 신전은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로마황제 숭배의 도시에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비잔틴시대에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신전의 후면에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유적이 남아있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3장 7-13절
7 "그리고 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당신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나는 네 소행을 알고 있다. 보라, 내가 네 앞에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두었다.
너는 적은 힘을 가졌지만 내 말을 잘 지켰으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 보라, 나는 네게 사탄의 모임에 속하는 자들을 주겠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다.
보라,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음을 알게 하겠다.
10 네가 인내하라는 나의 말을 지켰으니, 나 역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온 세계에 닥쳐올 시련의 시간에 너를 지켜 주겠다.
11 나는 곧 오겠다. 네가 가진 것을 너는 굳게 지키어 아무도 네 월계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12 나는 승리하는 이를 내 하느님의 성전 기둥으로 삼아서 그가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써 두겠다.
13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 라우디게이아 (Laodikeia)
[라우디게이아 교회]
에페소의 동쪽 150km에 있으며 60년의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십자가와 기둥 등 퇴락한 벽체가 흩어져 있다.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물이 9km가 떨어진 라우디게이아까지 흘러 오면서 물이 식어 미지근하게 된다.
에페소에서 동쪽 내륙으로 17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인구 20여만명의 테니즐리가 있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8키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리오디게이아 페허인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 임금 안티오쿠스 2세 (기원전 261-252년 재위)가 이 지역의 전략적 요소 때문에
도시를 창건하고 왕비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이아라고 명명했다.
사도 바올로가 제3차 전도 여행중(53-58년경) 에페소에서 27개월 가까이 머물때 그의 제자 골로사이 출신
에바프라는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450여리 떨어진 곳에 골로사이 교회(골로1,6-7)와, 히에라폴리스와
리오디게이아 교회도 세운 것 같다(골로 4,12-16).
요한 묵시록의 작가는 이 교회를 호되게 꾸짖었다(묵시 3,14-22). 이곳의 교우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비쟌틴 제국은 13세기까지 이고을 방어하다가 셀주크 투루크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710년과 1899년에 지진으로 심하게 파괴된 이곳을 1961-1963년 케나다 퀘백시의 라빌대학교 고고학팀이
발굴작업으로 . 로마식 야외 운동장(Stadium)과 두 개의 큰 야외 원형극장 터가 발견 되었다.
아직도 유적 대부분이 땅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관련성서구절 : 요한 묵시록 3장 14-22절
14 "그리고 라오디게이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라. '아멘이시요 믿음직하고 참되신
증인이시며, 하느님의 창조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5 나는 네 소행을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면 좋겠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
17 너는 말하기를, 나는 부자다, 나는 풍족하게 되었고,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18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자가 되려거든 불로 정련된 금을 내게서 사거라.
네 몸을 가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옷을 사거라.
네가 바로 보려거든 네 눈에 바를 안약을 사거라.
19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나누고 그도 나와 함께 만찬을 나눌 것이다.
21 승리하는 이는,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게 해 주겠다.
내가 승리한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옥좌에 앉은 것같이 말이다.
22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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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