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5~9 / 그 사람을 보라 / 151장
(요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요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요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요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요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요한복음 19장 5~9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이미 군인들에게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고, 자색 옷을 입히며 조롱했습니다.
그렇게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사람들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을까요? 어쩌면 이 정도로 고통을 당했으니 이제 만족하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분입니다.
5절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졌습니다. 온몸에는 채찍에 맞은 상처가 있습니다. 자색 옷은 왕을 흉내 내며 조롱하기 위해 입힌 옷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모욕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고, 자신의 진심이 오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외롭게 느낍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고난당 하셨고, 배신을 경험하셨으며, 사람들의 조롱과 외면을 받으셨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고통을 몰라줄 수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고통과 눈물을 아십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바라보며 위로와 힘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을 두려워하면 진리를 외면하게 됩니다.
6절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십자가형에 처할 만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대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죄가 없다면 예수님을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압박을 받았습니다.
8절을 보면 빌라도는 더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두려워하면서도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사람들의 눈치를 볼 때가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하면 손해를 볼까 봐 침묵합니다. 진실을 말하면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시다. 나는 사람의 인정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해야 할 때 정직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사람을 두려워하여 진리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분입니다.
7절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빌라도는 예수님의 출신과 정체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대답하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미 자신의 정체와 사명을 여러 차례 밝히셨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고 해서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각자의 생각대로 판단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위험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하면서도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그분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고집을 앞세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불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나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기꺼이 순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고난이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게 하시고,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따르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삶을 충성스럽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