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영혼 (외 1편) 김준현 커피에 든 내 영혼을 빨대로 마셨다 카페인이 지나치다 이 호흡을 커피를 위해 쓸 것이다 지난번에는 풍선을 위해 썼는데 아까웠다 며칠 동안 풍선의 노화가 진행되었지 쭈그렁망탱이가 되었지 삶이 다했네 얼굴이 다했네 볼이 홀쭉해지도록 빨대로 영혼을 남은 영혼을 누워서 보내는 사람에게 살 만큼 살았다는 악담을 하는 느낌이랄까? 빨대 말고 주사라면 어떨까? 주삿바늘은 늘 깊은 데까지 슬프고 피의 길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균인지 나그네인지 거기에 세워 둘 수 있을까?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면 일상처럼 하는 일인데 의대를 나오려면 영혼을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밤은 커피 향으로 가득하고 굳은 목을 풀며 올려다 본 밤하늘 별자리는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혈관 같을 거야 내 눈에는 빛 네 안경에는 빛 16개월 아기가 만진 안경 렌즈에 안개가 묻었다 닦으면 잘 보이겠지만 안경닦이가 없고 시력 0.1과 안갯속 세상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영혼의 이분법 어때? 잘 것인가 혹은 영화 「Soul」을 다 볼 것인가 이제 커피는 제 기력을 다했고 나는 자야겠지 우주복 내부의 산소량을 체크하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 아침까지 무사하기를 빌며 굿나잇
어디를 보다가 이제 옴
연못 속에서 눈동자들이 태양을 똑바로 본다
11월에도 깨어나지 못하고 꼬리도 다리도 초록도 육지도 없이 빛이 있으라, 출렁이는 개구리 알의 시력은 동그랗게 말린 온몸이다
더는 윤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Ω 안에 들어가기 절에서 절하기 입술을 둥글게 말고 둥근 어둠으로부터 옴
너희들 어디를 보는 거니? 저 빛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눈이 상한단다 내 눈동자는 저 연못 속에 있는 걸요, 엄마 말과 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나 죽으면 물에 묻어 다오⸻유언이란 뒤집힌 청개구리의 흰 배 위로 들끓는 개미 떼처럼 까맣게 글씨로 뒤덮인 머리에서 싹이 날 조짐을
밀어내는 것,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 부릅니다. 속가에서는 웨이브―글램 펌, 러블리 펌, 섀도 펌, 샤기 펌, 울프 펌, 루즈 펌, 댄디 펌, 호일 펌, 위빙 펌, 핀컬 펌, 레이어드 펌, 드라이 펌, 세팅 펌, 디지털 펌, 레인보우 펌, 아이롱 펌, 트위스트 펌, 믹스 펌, 보브 펌, 어쉬메트릭 펌, 롤링 펌, 보디 펌, 퍼지 펌, 롤 펌, 스파이럴 펌, 스프링 펌, 파도 펌, 리버스 펌, 발롱 펌, 물결 펌, 예수 펌 스트레이트 펌 미드나잇 블루, 밤비 브라운, 베이비 브라운, 피치 브라운, 아이스 코퍼, 애시 클래식 블루 똥 머리 혹은 올림 머리 같은 게
이토록 많은 이름과 잃음 머리카락이 무릎 꿇은 비처럼 내렸다 어떤 형태로 오든 이곳에서는 결국 둥글게 퍼져 나갈 온몸을, 연못 속에서 울기 울음주머니 한 번 가져 본 적 없이 이대로 사장되는 눈동자들이 알까? 목과 젖을 떼는 심정으로 연을 끊어 팔다리가 다 사라진 채 그저 바라보았다 면벽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았던 눈동자들아 안녕 꼬리를 내밀고 너희는 너희가 갈 곳으로 가라 초록을 얻고 눈을 얻고 먹을 수 있는 입을 얻어 입을 벌리지 않고도 울어라, 터질 때까지 부푸는 속으로 울어라
나는 바라보았다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물속으로 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돌아옴 잘 먹고 잘 자며 잘 사는 곳으로 돌아옴
―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2022.10 ---------------------- 김준현 / 1987년 포항 출생.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2015년 《창비 어린이》 신인상 동시, 2020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문학평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동시집 『나는 법』 『토마토 기준』, 청소년 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