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금요일이고, 머리도 멍하고 해서 썰 하나 올립니다.
이 썰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썰 중 하나입니다.
뭐랄까, 의외성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참고로 조미료 하나 안친 100% 실화입니다.
때는 중학교 2학년때.
90년대 중고등학교가 원래 그렇듯, 일진들이 각반마다 포진하고 있었고,
저는 그냥 평범히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2학년 일진 짱의 절친이 우리반이었는데,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항상 우리반에 왔었죠. (다른반임...)
그런데 이녀석이, 우리반을 마치 자기네 반인 것마냥 돌아다니며 반찬들을 뺏어먹는겁니다.
아무도 반항을 못합니다. 전체일진짱이 반찬만 쏠랑쏠랑 돌아다니면서 뺏어먹는데.. 누가 반항하겠나요.
애들의 불만은 컸습니다. 차라리 같은반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세금이네 하겠는데,
이녀석은 아예 다른반이잖아요.
너무 싫지만, 뭐라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늦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역시나 우리반을 돌고 있었고, 이제 제가 속한 도시락 파티에 강제참여를 시도했었죠.
그런데 그날, 이상하게도, 반찬만 집어먹는 그 애가 독특하다 생각했습니다.
왜 저 애는 반찬만 먹지.
그래서
마침 배도 별로 안고프겠다,
마침 오늘 반찬도 마음에 안들었겠다,
마침 그 애가 '덩치에 비해 밥을 조금만 싸주는 엄마'를 둬서 그러나 싶었겠다,
저는 제가 먹던 밥통을 통째로 그 애한테 건내면서 말했습니다.
'반찬만 먹지 말고 밥도 좀 먹어.'
일진짱은 뭔가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곧바로 다음 도시락파티를 침공하더라구요.
같이 먹던 애들이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충 '왠일이냐', '너가 한건 했다' 등등이었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일진짱은 그날 이후 점심시간에 저희 반에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순간적으로 그 애가 안쓰러워보였던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그 일진짱은 왜 그 뒤로 우리반에 오지 않았을까요.
기분이 나빴다면 성질을 냈을텐데...
그 뒤로도 성깔 드러운 사람을 만나면 뜬금없이 칭찬을 한다던가 등으로 친절하게 대합니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화를 가라앉히고 대화가 통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학부모들 상대할때도 도움이 많이 되구요.
뭐, 그렇습니다! 끝!
첫댓글 원래 뭔가 작정하고 심술부리던 사람일수록, 작은 걸로 마음 알아주면 쉽게 감동하는 경우가 있죠. 어렸을때부터 마인드가 성숙하셨네요
아이고 그정도는 아닙니다. 어렸을때 흑역사가 너무 많아서 부끄러울 뿐이에요
좋은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뭔가 뒤에 더 이야기가 있으려나 궁금하네요. 에필로그 랄까??
이런 여유와 친절이 어른이라도 후천적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잘 안나오는건데. 대다수 어른들도 못하는걸 10대 중반의 쫑쫑님은 실천하셨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오오 현명하시네요
그래 너도 힘든 이유가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셔요~
뭔가 따뜻한 이야기네여. 감사합니다.
교훈, 반전, 현실성, 적절한 분량 모든걸 갖춘 좋은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