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산 식구들
이른 아침 시간 이지만 차 안은 여느 때보다 한산 했다. 주말이나 공휴일 오전은 전철 안이 늘 한적 하다. 인적이 드문 녹천역에서 내렸다. 이 역은 시골 기찻길의 간이역 같은 기분이 든다. 역사(驛舍)를 나와 초안산 길목으로 들어서니 선뜻 차가운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여름 내내 숨이 차 땀을 흘리며 오르던 길이다. 밤에는 열대야, 찌는 듯한 낮 더위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성큼 계절이 바뀐 것 이다. 110년 만의 기록적인 무더위가 마치 거짓말 이었던 듯싶다.
오솔길 가의 나뭇잎에 곧 단풍이 들 듯하다. 나무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이 드높기만 하다. 풍요로운 한해의 가을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인적 없는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몇 사람이나 나오려나, 나는 누구와 한 편이 되어 게임을 하게 될 까, 오랫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 후배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10여분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초안산 근린공원’ 입구다. 축구장의 파란 인조 잔디가 맑은 햇살에 반짝인다. 테니스장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코트마다 경기가 한창이다. 우리들 코트에도 정답고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뜨인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 쌍문 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는 해발 144m의 나지막한 야산이 하나 있다. 초인산 이라 불리는 이 산은 도봉산 지맥이 남쪽으로 이어져 산봉우리를 형성 하고, 동쪽으로는 중랑천 서쪽에는 우이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심 속의 산이다. 산 중턱에 아름다운 공원과 스포츠 시설이 들어선 “초안산 근린공원” 이 있다.
대도시의 도심 속 땅은 날이 갈수록 건물이 들어서고 운동장이 없어지고 있다. 개발 붐에 밀려 스포츠 시설도 도시 변두리로 쫓겨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테니스 클럽도 여러 차례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지도 어언 십여 년이 훌쩍 지난 것 같다. 회원들 모두가 평생직장 에서 수십 년을 함께 보낸 동료 선후배들 이다. 청춘에서 중년까지 인생길 황금기를 수십 년 함께 걸어온 ‘직장가족’들 이었다.
한 주일 이면 주말 이 틀이 무척 기다려진다. 다른 공휴일에도 하루나 이틀을 만나니, 한 달이면 10여일 자리를 함께 하는 정다운 이웃들 이다. 더구나 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다른 어떤 만남보다도 친근감이 돈독한 것 같다. 오전 내내 함께 운동이 끝나면 점심 식사도 늘 한자리 에서 한다. 모두가 한 식구인 셈이다.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지 않는가. 또한 같은 단체나 기관에 속해 함께 일 하는 사람을 비유해서 식구라고 한다.
과거 우리는 모두가 같은 직장에서 긴 세월을 함께 보냈다.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는가보다. 후배들과 같은 직장 한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한지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정년이 되어 내가 먼저 직장을 떠날 때 청년 이었던 후배가 어느 날 정년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 벌써 정년 이라니. 오랜 세월이 지나는 것도 잊고 살아온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까닭 모를 한숨이 나왔다. 내가 직장에서 정년이 될 때만 해도 퇴직자들 보다 현역 직원들이 훨씬 더 많았었다. 시절이 바뀌니 지금은 은퇴자 수가 현역 직원보다 훨씬 많아졌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한 달이면 10끼 이상 함께 밥을 먹는 식구들 이다. 장마철이면 비가 그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했고, 겨울철 코트에 눈이 수북이 쌓이면 함께 제설작업을 하고 운동을 했다. 운동장에서 몇 시간을 치고 달리며 운동하는 동안 땀을 흘리게 마련이다. 운동이 끝나고 지정된 식당으로 가 자리를 잡으면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된다. 식사하기 전 모두가 막걸리 잔을 먼저 든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막걸리의 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쾌감이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는 가까운 사람끼리라야 가능하다. 불편한 사람과는 먹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초안산 식구들은 늘 함께 운동하고, 회식을 하며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진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란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이유도 행복한 인생을 바라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들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이다. 그 행복은 사람이 스스로 만나고 어울리는 즐거움에 있다. 그래서 우리 초안산 식구들도 함께 만나서 운동을 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며 행복을 찾는다.
첫댓글 행복은 스스로 만나고 사람끼리 어울리는 즐거움에 있다 하루를 즐기며 찾는 행복 잘 살아온 삶 멋 짐니다
한 달에 10번 이상 함께 식사를 하면 식구가 맞습니다.
이런 식구들이 있으면 행복한 삶이 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