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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욱 교수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공정을 추진하는 정부의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수진 기자 |
한국 정부는 그동안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처분에 대한 명확한 결정을 유보한 채 핵발전소 부지 내에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해왔다. 그런데 매년 약 700톤씩 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은 2024년에 영광핵발전소를 시작으로 다른 핵발전소들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미국에서 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 방식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 방식의 이점은 94-96%의 높은 재활용률, 핵연료 가격 상승에 대처하는 경제성, 재처리공장의 안전성, 감량화로 최종처분장의 규모와 관리기간 단축, 핵비확산성 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정욱 교수의 분석은 정부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한국정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추진
경제성, 안전성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
먼저 장정욱 교수는 재처리 과정을 통해 94-96%의 높은 재활용률을 얻을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며 실제 재활용률은 겨우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공정 중의 손실 및 투입에너지를 고려하면 에너지수지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 장정욱 교수 ⓒ한수진 기자 |
그러나 마이너 액티나이드는 경수로에서는 연료로 사용할 수 없고, 고속로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아직 실험단계에 있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는 중수로 4기를 가진 월성을 제외하고 모두 경수로 방식이다. 장정욱 교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시설 추진은 고속로를 함께 짓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경제성에서도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장정욱 교수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천연자원의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원전의 가동과는 별개의 거대한 규모의 시설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운영하는 상업화된 공장이 아직 없고 겨우 실험실수준에서 부분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건설비 및 운영비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이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장정욱 교수가 습식방식의 재처리공장을 건설 중인 일본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사례와 비교해 추산한 재처리 비용은 1톤당 약 176억 원으로 현재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양에 대입하면 매년 처리비용만 88조 원에 달한다. 정부는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영구적으로 반복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플루토늄의 질의 저하와 우라늄의 열화로 효율이 떨어지며, 재처리과정에서 2차 방사성폐기물이 대량 발생한다.
재처리 시설 “사고 발생은 필수적”
피해 규모도 핵발전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장정욱 교수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가 ‘환경친화적’이라는 과학적 근거 역시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처리 공정에서 독성이 강하고 발열량이 높은 방사성 물질을 분리·변환시키면 천연우라늄 정도의 방사능으로 낮아지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약 1,000년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정욱 교수는 “현재의 기술로 방사성 물질을 100% 완전히 분리할 수 없고 이마저도 실험실규모에서 극히 몇 가지 핵종의 분리를 시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완벽한 실험실에서의 결과와 상용시설에서의 실증 결과는 판이하다”고 지적하면서 “우리세대가 담보할 수 없는 1,000년의 시간을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수진 기자 |
또한 재처리 공정의 안전성에 있어서도 전(前)처리공정에서 나오는 휘발성가스의 방출을 피할 수 없어 “사고는 필수적”이며 사고 발생 시 피해의 규모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핵발전소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핵분열생성물의 양은 히로시마원폭의 약 3배 이상에 달하는데, 재처리공장은 이러한 사용 후 핵연료를 대량 취급하는 만큼 사고가 발생할 시 피해규모는 핵발전소조차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정욱 교수에 따르면, 재처리 공정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우려가 없다는 정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장 교수는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순도 높은 플루토늄 단독추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재처리 공정으로 사용 후 핵연료보다 방사능이 낮아진 만큼 범죄 집단의 접근성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교섭이 순조롭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점이다. 세계적인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원자력공학관계자, 보수언론 등이 핵연료 재처리를 밀어붙이는 이면에는 핵주권론, 원자력공학 관계자들의 학문적인 요구, 거대 시설의 건설 및 운영에 따른 관련 사업의 이해 등 ‘핵마피아’의 기득권 유지와 확대를 위한 욕망이 있을 것”이라고 장정욱 교수는 말했다. 그는 “재처리 공정으로 필요한 것을 뽑아내 사용하더라도 나머지 방사성 물질을 영구처분하는 최종처분장이 필요하다. 왜 미래세대에 10만년이 넘게 오염이 지속되는 방사성 폐기물을 넘겨주려하나”고 지적하면서 원자력발전을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생각하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사용 후 핵연료란? |
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3-5년 사용 후 원자로에서 꺼내는데, 원자로에서 막 꺼낸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능은 1m 거리에서 17초의 피폭만으로 한 달 내에 100%가 사망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이 방사능이 천연 우라늄광석의 방사능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최소 10만년이 걸린다.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처분 방법은 핵발전소 부지 내 수조(水槽)에서 최소 5년 동안 냉각한 후에 건식 저장으로 전환하거나 지하 300-500m 이상 깊이에 만든 최종처분장에 영구 보관하는 ‘직접처분 방식’과 화학적·전기적인 공정을 통해 일부의 재활용 자원을 추출한 후 나머지를 최종처분장에 영구 보관하는 ‘재처리 방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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