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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하는 듯한 상주에게 연은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였다. 매우 떨렸지만 최대한 자신의 기량을 다해 당당하게
조건을 제시한 연이었다. 칠천 만냥이라는 거금을 요구하자 상주의 표정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제안이 너무 과했나 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상주에게 휘말리면 본전조차 찾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연은 쐐기를 박고자 상주에게 품에서 꺼낸 것을 건넸다.
"제가 수놓은 것을 엮어낸 비단이옵니다. 사내인 저의 서투른 솜씨조차 저희 서나라 여인네들의 손을 거치면 이처럼,
아름답게 그 자태가 변하지요."
"이런……."
"어떻게 하실건가요, 대상주시여?"
여유롭게 웃어보이는 연을 보며 상주는 생각했다. 과연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다.
그의 옷을 본 순간부터 독특한 아름다움이 묻어나오는 서나라의 비단임을 눈치 챈 자신이었다.
이렇듯 당당한 태도라니. 하지만 서국 비단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린 이상, 그의 제안을 없다 손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래간만에 진퇴양난에 빠진 상주는 상황에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대와 거래하겠소, 서나라의 정연."
"현명한 선택이시옵니다."
"단, 칠천 만냥에 비단 일만하고 반만필 더, 면직류 반만 척. 더 이상은 물러날 수 없다는게 이쪽의 대답이오."
얼마 있지 않아 연은 미소를 띤 채 혜정관을 나섰다.
하늘이 자신을 바라봐 주기 시작했다는 것을 연은 어렷품 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4>
이원영은 연이 혜정관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피가 거꾸로 뒤집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세상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였다. 그런 곳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연을 들여 보냈단 것은, 필시 서나라를 기만한 행태라 여겨 이원영은 방금 전 연과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을 불러 세웠다.
"저 분은 귀한 분이오. 서나라를 기만하는게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곳에 들여 보냈단 말인가."
"스스로 들어가길 원하셨나이다."
소년은 이원영의 질책에도 당황하지 않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연이 스스로 들어가길 원했다니,
그는 분명 이 곳의 용도를 모를 터였다. 혜정관은 타국의 사절단이나 돈이 많은 자들이 모여 음란한 행위를 벌이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대낮인 지금도 저렇게 수 많은 기녀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무지한 자라도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사치와 향락이 주를 이뤘다. 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원영은 소년에게 다시 물었다.
"그 분께서 자네에게 뭐라 말씀하셨는가?"
"대상주께 볼 일이 있으시다 하였나이다."
무엇인가 불길했다. 애초부터 연의 부탁을 들어준답시고 보국의 상단과 다리를 놓아준 것이 탈이었다.
말처럼 쉽게 거래를 마치고 온다면야 다행이지만 보국의 상주는 절대 자신에게 손이 되는 거래는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연에게 상주가 무엇을 요구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연과 보국의 대상주와는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원영은 직접 혜정관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나를 들여보내시게."
"서국의 빈궁께선, 이미 본궁으로 돌아가셨을것이니 서국의 대호군께서도 속히 그 분을 따르시옵소서."
"- 그것을 어찌……."
"계속 물으신다면 빈궁마마의 안위는 누가 지키겠사옵니까?."
어느 새에 떠나셨단 말인가. 자신은 연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나, 절대로 한 눈을 판 적 또한 없었다.
이 곳은 무엇인가 숨기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그것들을 다 파헤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당장은 소년이 자신과 연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보다 연이 먼저 출발 하였다는것이 중요했기에
이원영은 꺼림칙한 기분을 뒤로 한채 급히 연의 뒤를 쫒아 상단을 떠났다.
황급히 떠난 이원영이 시야에 보이지 않자, 소년은 조용히 속삭였다.
"사람의 감정은, 사람을 옭아매는 약점이 될 뿐이지요."
<4>
"전하, 전하를 뵙고자 하는 자들이 있사옵니다."
아침부터 찾아오는 심보는 대체 어느 나라 예의던가. 인상을 찌푸린 채 휘헌왕은 손가락을 까닥 움직였다.
명백한 귀찮음이 깃든 왕의 간결한 손짓에 들어서는 이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보게나, 아무리 그래도 손님은 맞아야 하지 않겠나."
"보국의 진양. 10년만이로군."
10년이 지나도 그에게서 예의를 찾아볼 수 없는건 매한가지였다. 전쟁터에서 전쟁을 승리로 마치고 돌아온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이렇듯 아침 반나절부터 다짜고짜 찾아왔다는 것은 진양이 매우 안달이 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능글맞기론 세상 최고의 자인 그를 안달하게 만든게 대체 무엇인지나 들어보고자 휘헌왕은 그를 응시했다.
"얼마 전, 서국과 거래를 하기로 했네."
"- 이유는?"
진양은 서국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다. 이유는 몰라도 절대 서나라와는 교류를 맺지 않겠다는 그였다.
그런 그가, 거래라니? 서나라의 날고 긴다는 협정가들과 외교술의 대가들이 나서도 꿈쩍 안하던 진양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궁금해지자, 휘헌왕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넌지시 물었다.
흥미를 보이는 왕을 보며 진양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글쎄, 더 지켜보고 싶은 자가 있었거든."
"그리하시오."
역시 왕은 재미가 없었다. 관심이 없으면 가차 없이 끊어내는 저 모습은 정말이지 때론 무섭기까지 했다.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단박에 간파했을 왕이지만 묻질 않는 것을 보니 진양은 확실하게 해 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러지 말고 들어보시게. 10년 전 자네가 한 약속을 기억하는가?"
"그래."
"이제사 내 원하는 것을 말하게 되었네."
10여년 전, 진양의 도움으로 살수에게서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케케묵은 약조를 지금와서 지키라는
진양을 보고 왕은 기가 찼지만 한 번 내놓은 말이니만큼 반드시 지켜야 하므로, 이번엔 진양을 살짝 노려봤다.
"하하. 그리 노려보지 마시게나. 원하는 자가 있어서 그래. 내 상단에 들여와 업무를 보게 하고 싶네만, 어떤가?"
"뜻대로."
"이름은 정연, 우리 정보원에 의하면 서국 휘헌왕의… 빈이라더군."
"그대의 뜻대로 하시오."
"상관이 없는가?"
"있다고 하더라도 약조는 약조인 법. 그리고 난 그런 이름의 빈을 둔 적은 없소. 내겐 가양만이……."
자신의 빈이라 했음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던 왕을 진양이 다시 한 번 떠보자, 그제서야 그는 무엇인가 떠오른 듯
하던 말을 멈추고 싸늘한 표정으로 진양을 쳐다봤다. 이렇게 까지 무서운 얼굴을 내 보일 줄이야.
의외의 모습을 본 진양은 호기로운 웃음을 띄며, 말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전하의 자비로운 윤택에 감읍하며, 1년 뒤 빈을 모시러 오겠나이다."
"……."
"그 때까지, 그를 잘 보살펴 주옵시며.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휘헌왕은 만족스러운 듯 웃고있는 진양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그가 들을 수 있도록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옆에 대기해 있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 역시 당황해 있는 상태였지만, 그저 왕명에 따를 뿐이었다.
"당장 그를 불러다 상사의 직위를 내리고 안현궁에 위치시켜라. 이 자의 마음에 들었으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지."
그들의 왕은 정말이지 잔인한 자였다.
가수, 곡명: 드라마 '황진이' - 야화
출처: BGM Store
첫댓글 드디어왕이나오네
왕존재감장난아닌듯ㅋㅋㅋㅋㅋ
오늘도잘보고갑니다!!
너무 짧아요...ㅠㅠㅠ 휘헌은 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담편 기대할께요~
다공일수인가요ㅎㅎ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
요? 담편도 기대합니다~
아. . 내쫒는건가요. . . 어찌될지.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