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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지동(心術之動)
마음씨의 움직임을 일컫는 말이다. 심술(心術)은 온당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마음 또는 남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를 이르는 말이다.
心 : 마음 심(心/0)
術 : 꾀 술(行/5)
之 : 어조사 지(丿/3)
動 : 움직일 동(力/9)
역서(易序)는 웅장한 문장과 기운이 들어있는데 아직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글이다. 정이천(程伊川)이라는 말도 있고 소강절(邵康節)이라는 말도 있는데 확실치 않다.
그 글에 보면 정신을 움직이고 심술을 움직이는 가운데 이치를 터득한다(得於精神之運心術之動)는 말이 나온다. 정신을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신이 움직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심술을 움직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심술이 움직인다고도 할 수 있다. 타동이냐 자동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얼마전 구글 계정에 들어가 자세히 보니 거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20년 동안 행했던 모든 기록이 들어 있었다. 행적을 분석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걸 이용해 기업들은 개인정보에 관한 각종 비즈니스를 한다.
몸은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데 마음은 무엇을 따라 움직이는가? 마음의 움직임 또한 일정한 습성이 있고 관성이 있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면 일정한 관성적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정신과 심술은 습성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무의식적 일상에서의 심신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렇게만 내버려두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가끔 정신을 움직이고 심술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변화의 양면을 온전히 구가할 수 있다.
(添) 주역서문(周易序文)
故로 得之於精神之運과 心術之動하야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然後에야 可以謂之知易也라.
그러므로 정신의 운용과 마음씨의 움직임에서 체득해서 천지와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그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 뒤에야 역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심술(心術)부터 살피고 헤아려야 술술술 풀린다
상대하여 생각하고(思) 헤아리는(量) 마음이 한자로 ‘사량(思量)’인데 그것을 오늘날 우리는 ‘사랑’으로 간단히 말하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마음재주’로 읽고 싶다. ‘심술(心術)’을 말이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는 좋지 않다. 이른바 ‘온당(穩當)하지 않고 고집(固執)스러운 마음, 또는 남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어서다. 어쨌든 ‘마음보’는 쓰기 나름이다. ‘쓰임새’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결과는 천양지차로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재주’로 읽으려고 하는 거다.
심술시정(心術始正)
한양대 정민 교수가 지은 '다산어록청상(茶山語錄靑賞)'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정민 교수는 ‘마음가짐’으로 뜻을 풀이했다. 여기서 ‘가짐’이란 자기 것으로 손이나 몸에 지니는 소유를 뜻한다. 그러니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산효과'와 다를 바 없다. 마음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부정적이기도 하고 혹은 긍정적으로 가치가 얼마든지 변하기 때문이다.
박석무·정해염이 편역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다산문학선집'에는 '부용당기(芙蓉堂記)가 등장한다. 이를 소개한다.
황해도 관찰사 이공이 부용당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수령으로서 이곳에 온 사람이 10여 명이나 되었다. (중략) 내가(정약용을 말한다) 잔치 자리에 도착하자 이공이 술을 권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선화당(관찰사가 공식 업무를 보는 공간)과는 같지 않으니, 오늘은 흉금을 터놓고 즐기십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가 수령의 잘잘못을 살피는 것이 이 부용당이 선화당(宣化堂)보다 낫다고 생각되는데, 공은 그 까닭을 아십니까?”라고 하였더니, 이 공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령이 선화당에 오게 되면 단정한 걸음걸이와 엄숙한 얼굴빛을 하고 말을 삼가며 신분에 따라 예의를 공손히 차리니, 한 사람도 훌륭한 관리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연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버들빛이 눈에 비치며, 죽순과 고기가 상에 그득하게 놓여 있으며, 기녀들이 많이 모여 있으며, 순주로 창자를 적시며, 회나 구운 고기로 배를 채우는 장소에서는 상관은 얼굴빛을 좋게 꾸미고 환대하고 농담하기에 거침이 없습니다. 이때에 떠들고 웃으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그 잡스러움을 알 수 있으니, 그는 반드시 유능하나 가볍게 법을 범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낮추고 아첨하며 상관을 찬송하고 앙모하여 스스로 아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그 비루함을 알 수 있으니, 그는 반드시 면전에서는 아첨하나 백성들을 속이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중략) 이와 같으니, 수령(부하)을 살핌에 있어 이곳(부용당)이 선화당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처럼 다산 선생은 아랫사람이 인재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고 관찰사에게 무릇 조언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사장의 집무실에서 임원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룸살롱에서 임원을 살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즉 장소를 바꿔서 사람을 대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이 없이 사람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행간에 가득 담겨져 있다.
다시 부용당기 나머지를 읽도록 하자.
이공이 이렇게 말하였다. “참 옳습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상관)의 일도 수령(부하)이 살핍니다. 나는 공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살피려 합니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을 살피리까.”
나는 마침내 묻고 대답한 말을 기록하여 부용당기(芙蓉堂記)라 한다.
결론은 이렇다. 다산은 틈만 나면 기록(述)했다. 즉 술(述)을 중심으로 한 ‘술술(酒術)’로 학문과 독서 그리고 처세와 정치 등에 임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와 문학과 역사학 등에서도 많은 뛰어난 글을 우리에게 남길 수가 있었으니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던 뛰어난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나는 황해도 관찰사 이공(조선 영-정조시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대사간까지 역임한 李義駿)에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마음재주’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 옳습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상관)의 일도 수령(부하)이 살핍니다. 나는 공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살피려 합니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을 살피리까”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선화당과 부용당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용의주도하고 세심한 인물로 그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하도 상사를 살핀다. 사장이 임원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원이 사장을 살필 수도 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라면 무릇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살피는’ 재주부터 가지고 볼 일이다. 다음에 ‘다른 사람을 살피는 마음’을 갖춤이 물론이다. 그래야지 ‘술술술 풀리는 경영자’로서 자리가 흔들리지 않고 세워질 것이다.
관찰사의 역할처럼 경영자에게도 해야 할 역할이란 게 있다. 유능한 사람, 능력이나 경험이 많고 뛰어난 인재는 보통 경영자 주변으로 다가서지도 머물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통 경영자’는 ‘사장실’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뛰어난 경영자는 ‘술집’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고객과 현장이 있는 장소로 다가서려는 경영자는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과 현장을 외면하고 ‘사장실’에만 안주하려는 경영자는 기업을 바람 위에 올려놓을 게 뻔하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다산어록청상'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대로 옮긴다. “마음이 하는 일을 낯빛이 닮아간다. 얼굴은 얼의 꼴, 즉 마음의 모습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얼굴은 해맑다. 매일 듣고 보는 글의 표정을 닮았다. 어찌하면 돈을 많이 벌까하는 궁리만 하는 장사치는 그 검은 속을 닮아 얼굴조차 시커멓다. 꼴 먹이고 소똥을 치우는 목동은 모습도 덩달아 지저분하다. 노름꾼의 눈동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희번덕거린다. 해맑던 아이의 표정 위에 어느덧 장사치의 시커먼 속과 노름꾼의 교활한 눈빛이 깃든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상은 자꾸 변한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나는 ‘노는 대로’에 주목한다. 마음도 논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가 ‘재주’다. 곧 ‘심술’인 거다. 심술이 바른지 아닌지는 ‘자기’가 먼저 살필 일이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의 심술부터 살피려고 하시는가.
다른 사람도 내 심술을 살피니 마땅히 스스로를 살피려고 날이면 날마다 ‘성실(誠實)’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사람들이 ‘나’를 따르고 인생과 비즈니스가 ‘술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하여 자기부터 사랑할 일이다. 그래서다. 자기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면서 상대를 대하면 무시당하는 거다. 그런 거다.
경(經)의 뜻이 밝혀져야 심술(心術)이 바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유학(儒學)의 큰 방향을 두 갈래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산만이 아니라 공자(孔子) 이래 모든 유학자들이 추구했던 당연한 방향으로 본(本)인 경학과 말(末)인 경세학(經世學)이니, 경학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자 수기(修己)의 학문으로 본(本)에 해당하고, 위인지학(爲人之學)이자 치인(治人)의 학문인 경세학은 말(末)로 여겼습니다.
이 두 학문을 제대로 익혀야 융합적인 학문세계가 완성된다고 여겼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경전의 뜻이 밝혀진 뒤에야 도(道)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 도를 얻은 뒤에야 비로소 심술(心術)이 바르게 되고, 심술이 바르게 된 뒤에야 덕을 이룰 수(成德) 있다. 그러므로 경학에 힘쓰지 않을 수 없다(經旨明而後 道體顯 得其道而後 心術始正 心術正而後 可以成德 故經學不可不力:爲盤山丁修七贈言)”라고 말하여 선비라면 덕을 이뤄야 하는데 덕을 이루는 근본이 경전이어서 경전에 대한 연구인 경학에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유학자라면 경전의 뜻을 밝혀야 하는데, 그게 아무나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공자나 맹자가 주장한 경의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한(漢)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뜻풀이를 했으며, 송(宋)의 주자에 이르러 대대적인 경전 해석으로 이른바 ‘주자학’이라는 학문을 완성했습니다.
조선의 많은 학자들은 대체로 주자의 학설에 만족하면서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나, 다산에 이르러 주자학의 풀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려 232권에 이르는 방대한 다산 경학을 이룩해냈습니다.
'논어고금주'라는 다산의 논어 연구서는 40권인데, 성리학적인 주자의 해석과는 다르게 다산학적인 다산의 해석으로 이룩된 경전연구서입니다.
어느 날 공자가 곁에 있는 몇몇 제자들에게 “자네들은 내가 숨기는 무엇이 있다고 여기는가? 나는 전혀 숨기는 것이 없네. 행하면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네(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논어』述而)”라고 말하여 공자나 맹자 시절에는 경학이라는 학문이 나타나지 않을 형편을 공자 자신이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경(經)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 해석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다산의 해석이 나옵니다. “행(行)이란 몸소 행하는 바이니 말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일이다. 나는 하나의 일도 자네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일이 없으니 자네들은 마땅히 보고서 본받아야하니 나는 숨기는 일이 없네”라고 공자가 말했다고 풀어서 설명합니다.
공자와 맹자의 시대가 지나 공맹처럼 행동으로 보여주는 학자들이 없자, 이제 경에 나오는 글자까지 풀어서 설명해야만 했으니, 경학이 그때에 나타나게 됩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로써 가르쳤으니 문(文), 행(行), 충(忠), 신(信)이다”라고 했을 때, 옳은 해석으로 “문(文)은 선왕(先王)의 유문(遺文)이요, 행(行)은 덕행(德行)이다”라는 해석을 뒷받침하여
다산은 말합니다. “문과 행은 밖의 일이요, 충과 신은 내면의 일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효(孝)하고, 밖에 나가서는 제(弟)하면 행함이요, 남을 향해 정성을 다하면 충(忠)이요, 남과의 지냄에서 배반하지 않으면 신(信)이다”라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습니다.
이렇게 경학의 세계는 분명하고 바릅니다. 주자학의 잘못도 바로 잡았지만, 그들이 미처 풀어서 말하지 못한 부분도 다산은 새롭게 풀어서 ‘다산경학’을 이룩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공맹의 본질적인 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역시 다산경학을 통하는 길이 빠른 길의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성리학적 해석에서 실천가능한 행위의 경학을 이룩한 다산의 업적은 역시 대단합니다.
관자(管子) 심술(心術) 上
心之在體, 君之位也.
몸에서 마음은 군주의 지위와 같고,
九竅之有職, 官之分也.
아홉 구멍(눈, 코, 입, 귀 등)은 관직과 같다.
心處其道, 九竅循理.
마음이 올바른 도에 처하면 아홉 구멍이 이치를 따르지만,
嗜欲充益, 目不見色, 耳不聞聲.
욕심으로 가득 차면 눈이 색을 보지 못하고, 귀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
故曰: 上離其道, 下失其事.
그러므로 “윗사람이 그 도를 떠나면 아랫사람이 그 직분을 잃는다”고 한다.
毋代馬走, 使盡其力,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고, (말이) 자신의 능력을 다하도록 하고,
毋代鳥飛, 使獘其羽翼.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고 (새가) 날개의 힘을 남김없이 다하도록 해야 한다.
毋先物動, 以觀其則.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그 규칙을 살펴야 한다.
動則失位, 靜乃自得.
움직이면 지위를 잃고, 고요하면 저절로 도와 합하게 된다.
道不遠而難極也.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與人並處而難得也.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虛其欲, 神將入舍.
그 욕심을 비우면, 신神이 들어와 자리하고,
掃除不潔, 神乃留處.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神이 머문다.
人皆欲智, 而莫索其所以智乎.
사람은 누구나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 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智乎智乎, 投之海外無自奪.
지혜여, 지혜여, 바다의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求之者不得處之者.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夫正人無求之也, 故能虛無.
무릇 바른 사람은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에 처할 수 있다.
虛無無形謂之道.
마음의 길은 텅 비어 있고 형체가 없다.
化育萬物謂之德.
그래도 모든 사물을 길러내며 무언가를 만든다.
君臣父子人間之事謂之義.
군신과 부자 사이의 일을 의라고 이른다.
登降揖讓, 貴賤有等,
오르고 내림의 등강과, 절하고 양보하는 읍양과, 귀하고 천함의 귀천의 등급과,
親疏之體, 謂之禮.
친하고 소원한 친소의 체제를, 예라고 이른다.
簡物小未一道.
사람간의 일인 대소와 본말을 하나의 원칙으로 헤아리고,
殺僇禁誅謂之法.
죽이고 금하고 베는 벌을 규정한 것을, 법이라고 이른다.
大道可安而不可說.
큰 도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
直人之言, 不義不顧.
정직한 사람의 말은 치우치지 않으며 외돌려 있지도 않다.
不出於口, 不見於色.
입으로 내놓을 수도 없고 얼굴빛으로 보일 수도 없다.
四海之人, 又庸知其則.
세상사람 또한 누가 그 법칙을 알겠는가?
天曰虛, 地曰靜, 乃不伐.
하늘은 텅 비었다 하고, 땅은 고요하다 하니, 이에 잘못이 없다.
潔其宮, 開其門, 去私毋言, 神明若存.
그 집(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 문(눈과 귀)을 열고서, 사욕을 버리고 부질없이 말하지 않아야 신명이 존재하는 듯하다.
紛乎其若亂, 靜之而自治.
복잡하게 얽힌 일도 고요하면 저절로 다스려진다.
強不能遍立, 智不能盡謀.
강함으로 두루 완성할 수 없고, 지혜로 모두 도모할 수 없다.
物固有形, 形固有名, 名當謂之聖人.
사물은 고유한 형태가 있고, 형태는 고유한 이름이 있으니, 명분이 실제 합당한 것을 성인이라 한다.
故必知不言無為之事, 然後知道之紀.
그러므로 반드시 말하고 일삼을 필요가 없음을 안 뒤에야 도의 규율을 알 수 있다.
殊形異埶, 不與萬物異理, 故可以為天下始。.
형태가 다르고 형세가 달라도, (도는) 만물과 그 원리를 달리하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人之可殺, 以其惡死也.
죽임으로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죽음을 싫어하기 때문이며,
其可不利, 以其好利也.
불이익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이익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是以君子不休乎好, 不迫乎惡.
그러므로 군자는 좋아하는 것에 유혹 당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지 않으며,
恬愉無為, 去智與故.
편안함과 고요함으로 꾀와 속임을 버린다.
其應也, 非所設也.
만물에 응함은 자연스러울 뿐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에 따르지 않으며,
其動也, 非所取也.
그 거동은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꼭 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過在自用, 罪在變化.
과실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데 있고, 죄는 멋대로 변화하는 데 있다.
是故, 有道之君, 其處也, 若無知.
이 때문에 도가 있는 군주는 처함은 무지한 듯하고,
其應物也, 若偶之.
응함은 배합한 듯한다,
靜因之道也.
이 고요함으로 자연의 도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心之在體, 君之位也.
몸에서 마음은 군주와 같고,
九竅之有職, 官之分也.
아홉 구멍은 관직과 같다고 했다.
耳目者, 視聽之官也.
귀와 눈이란 보고 듣는 기관이다.
心而無與視聽之事, 則官得守其分矣.
마음이 보고 듣는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기관마다 각기 그 직분을 지킬 수 있다.
夫心有欲者, 物過而目不見.
무릇 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사물이 지나가도 눈에 보이지 않고,
聲至而耳不聞也.
소리가 이르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故曰: 上離其道, 下失其事.
그러므로 “윗사람이 그 도를 떠나면 아랫사람이 그 직분을 잃는다”고 하는 것이다.
故曰, 心術者, 無為而制竅者也.
그러므로 “마음은 무위하며 기관을 제어하는 것이다”고 한다.
故曰: 君.
그러므로 ‘군자’라고 한다.
無代馬走, 無代鳥飛.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라,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라는 것은
此言不奪能, 能不與下誠也.
능력 있는 사람의 능력을 빼앗지 말며, 아랫사람의 실질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毋先物動者, 搖者不定.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흔들리는 사람은 안정되지 않고,
趮者不靜, 言動之不可以觀也.
조급한 사람은 고요하지 않으니, 움직이면서 살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位者, 謂其所立也.
지위란 정립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人主者立於陰, 陰者靜.
군주란 음에 서 있는데, 음이란 고요함이기 때문에
故曰動則失位.
움직이면 지위를 잃는다고 말한 것이다.
陰則能制陽矣, 靜則能制動矣.
음은 양을 제어할 수 있고, 고요함은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故曰靜乃自得.
고요하면 저절로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道在天地之間也, 其大無外.
도가 천지의 사이에 있으면 그보다 큰 것이 없고,
其小無內, 故曰不遠而難極也.
그보다 작은 것이 없기 때문에 멀리 있지 않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虛之與人也無間.
비움이 사람과 틈이 없지만
唯聖人得虛道.
오직 성인만이 비움의 도를 얻기 때문에
故曰並處而難得.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世人之所職者精也.
세상 사람이 전념하는 것은 정밀함이다.
去欲則宣, 宣則靜矣.
욕심을 버리면 트이고, 트이면 고요하다.
靜則精, 精則獨立矣.
고요하면 정밀하고, 정밀하면 홀로 선다.
獨則明, 明則神矣.
홀로 서면 밝고, 밝으면 신묘하다.
神者至貴也, 故館不辟除, 則貴人不舍焉.
신이란 지극히 귀하기 때문에 집을 말끔히 청소하지 않으면 귀인이 머무르지 않는다.
故曰不潔則神不處.
그러므로 깨끗하지 않으면 신이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다.
人皆欲知而莫索之.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했는데,
其所以知彼也.
그것은 저것心을 아는 바에 있는 것이다. (지혜란 대상이다.)
其所以知此也.
그것은 이것精神을 아는 바에 있는 것이다.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주관이다.)
不修之此, 焉能知彼.
주관을 닦지 않으면 어떻게 대상을 알 수 있겠는가?
修之此, 莫能虛矣.
주관을 닦는 데는 비움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虛者無藏也.
비움이란 감춤이 없는 것이다.
故曰, 去知則奚率求矣.
그러므로 지혜를 버리면 무엇을 따라 구할 것인가?
無藏則奚設矣.
감춤이 없으면 무엇을 설정할 것이 있겠는가?고 한다.
無求無設, 則無慮.
구함도 없고 설정함도 없으면 사려함이 없고,
無慮則反覆虛矣.
사려함이 없으면 비움으로 돌아간다.
天之道, 虛其無形.
하늘의 도는 텅 비어 형태가 없다.
虛則不屈, 無形則無所位.
텅 비면 다함이 없고, 형태가 없으면 거역하는 바가 없다.
無所位, 故遍流萬物而不變.
거역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만물에 두루 유통하여 변하지 않는다.
德者道之舍.
덕이란 도가 머무르는 곳이다.
物得以生, 生知得以職道之精.
사물이 이를 통해 끝없이 생기고, 앎이 이를 통해 도의 정수에 전념할 수 있다.
故德者得也, 得也者, 其謂所得以然也.
그러므로 덕이란 얻음이다. 얻음이란 이미 얻으려 한 것을 얻었다는 말이다.
以無為之謂道, 舍之之謂德.
무위를 도라 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것을 덕이라 하기 때문에
故道之與德無間.
도와 덕은 틈이 없다.
故言之者不別也.
그러므로 구별해서 말하지 않는다.
間之理者, 謂其所以舍也.
굳이 차이점이 있으면 덕은 도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것뿐이다.
義者, 謂各處其宜也.
의란 각기 그 마땅함에 처함이다.
禮者, 因人之情, 緣義之理, 而為之節文者也.
예란 인정에 따르고 의義의 이치에 따라서 마디와 무늬를 만든 것이다.
故禮者謂有理也.
그러므로 예란 이치가 있음이라고 한다.
理也者, 明分以諭義之意也.
이(理)란 직분을 밝혀서 의(義)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다.
故禮出乎義, 義出乎理.
그러므로 예는 의에서 나오고, 의는 이에서 나오며,
理因乎宜者也.
이는 마땅함을 따른다.
法者所以同出, 不得不然者也.
법이란 다른 것을 같이 하는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故殺僇禁誅以一之也.
죽이고 금하고 베는 것으로 통일한다.
故事督乎法.
그러므로 모든 일은 법으로 감독하고,
法出乎權.
법은 권형(權衡)에서 나오며,
權出乎道.
권형은 도에서 나온다.
道也者, 動不見其形.
도란 움직여도 그 형태를 보지 못하고,
施不見其德.
베풀어도 그 덕을 보지 못하며,
萬物皆以得, 然莫知其極.
만물이 모드 그 혜택을 입지만 그 오묘함을 알 수 없다.
故曰可以安而不可說也.
그러므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莫人, 言至也.
‘막인(莫人)’은 최고의 경지를 말한다.
不宜, 言應也.
‘불의(不宜)’란 응함을 말한다.
應也者, 非吾所設, 故能無宜也.
응함이란 내가 인위적으로 설정한 바가 아니기 때문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不顧, 言因也.
‘불고(不顧)’란 순리를 따름을 말한다.
因也者, 非吾所顧, 故無顧也.
순리에 따름이란 내가 고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돌림이 없는 것이다.
不出於口, 不見於色, 言無形也.
입으로 내놓을 수도 없고 얼굴빛으로 보일 수도 없다는 것은 형태가 없음을 말한다.
四海之人, 庸知其則, 言深囿也。.
세상 사람이 또한 누가 그 법칙을 알겠는가?는 것은 깊고 넓은 숲처럼 오묘한 진리를 말한다.
天之道虛, 地之道靜.
하늘의 도는 텅 비고, 땅의 도는 고요하다.
虛則不屈, 靜則不變.
텅 비면 다하지 않고, 고요하면 변하지 않는다.
不變則無過, 故曰不伐.
변하지 않으면 잘못이 없기 때문에 잘못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潔其宮, 闕其門, 宮者, 謂心也.
그 집을 깨끗이 하고 그 문을 연다고 했는데, 집이란 마음을 말한다.
心也者, 智之舍也, 故曰宮.
마음이란 지혜의 집이기 때문에 ‘집’이라고 하는 것이다.
潔之者, 去好過也.
깨끗이 함이란 욕심의 잘못을 없애는 것이다.
門者, 謂耳目也.
耳目者, 所以聞見也.
문이란 이목을 말한다.
이목이란 보고 듣는 것이다.
物固有形, 形固有名.
사물은 고유한 형태가 있고 형태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
此言不得過實, 實不得延名.
이것은 이름이 실제를 벗어나지 못하며, 실제가 이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姑形以形, 以形務名, 督言正名.
우선 형태로 나타나고, 형태로 이름을 정하며, 언어로 이름을 바로잡기 때문에
故曰聖人.
‘성인’이라 한다.
不言之言, 應也.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란 응함이다.
應也者, 以其為之人者也.
응함이란 그것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다.
執其名, 務其應, 所以成, 之應之道也.
그 이름을 가지고 그 응함에 힘쓰며,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응함의 원리다.
無為之道因也,
因也者, 無益無損也.
‘무위의 도’란 (그대로) 따름이다. (그대로) 따름이란 더함도 없고 줄임도 없는 것이다.
以其形, 因為之名, 此因之術也.
그 형태에 따라 이름을 짓는 것, 이것이 (그대로) 따름의 법칙이다.
名者, 聖人之所以紀萬物也.
이름이란 성인이 만물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人者立於強, 務於善, 未於能, 動於故者也.
사람은 억지로 구하는 데 뜻을 세우고, 꾸미는 데 힘쓰고, 능력에 의미를 두고, 인위적으로 움직이는데,
聖人無之, 無之, 則與物異矣.
성인은 인위적으로 하려고 함이 없다. 인위적으로 하려고 함이 없으면 사물의 차이를 인정한다.
異則虛, 虛者萬物之始也.
故曰可以為天下始.
사물의 차이를 인정하면 텅 빈다. 텅 빔이란 만물의 시작이기 때문에 천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人迫於惡, 則失其所好.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면 좋아하는 것을 잃고,
怵於好, 則忘其所惡, 非道也.
좋아하는 것에 유혹되면 싫어하는 것을 잊으니, 도가 아니다.
故曰: 不怵乎好, 不迫乎惡.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에 유혹 당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지 않는다고 한다.
惡不失其理, 欲不過其情, 故曰君子.
싫어하되 그 원리를 잃지 않고, 좋아하되 그 실정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군자’라고 한다.
恬愉無為, 去智與故, 言虛素也.
편안함과 고요함으로 꾀와 속임을 버린다는 것은, 비움과 질박함을 말한다.
其應非所設也.
만물에 응함은 자연스러울 뿐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에 따르지 않으며,
其動非所取也.
그 거동은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꼭 취하려는 것이 아니다는 것은
此言因也.
(사물의 흐름에 그대로) 따름을 말한다.
因也者, 舍己而以物為法者也.
(사물의 흐름에 그대로) 따름이란 자기를 버리고 사물 그 자체로 법을 삼는 것이다.
感而後應, 非所設也.
감지한 다음에 응하기에 인위적으로 미리 설정된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緣理而動, 非所取也.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에 무엇을 꼭 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過在自用, 罪在變化.
과실을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데 있고, 죄는 멋대로 변화하는 데 있다고 했는데,
自用則不虛, 不虛則仵於物矣.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 비우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면 사물에 맞선다.
變化則為生, 為生則亂矣.
멋대로 변화하면 허위가 생기고, 허위가 생기면 혼란하다.
故道貴因.
그러므로 도는 (사물의 원리에 그대로) 따름을 귀하게 여긴다.
因者, 因其能者, 言所用也.
(사물의 원리에 그대로) 따름이란 사물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작용하는 것이다.
君子之處也若無知, 言至虛也.
군주의 처함은 무지한 듯하다는 것은 지극한 비움을 말한다.
其應物也若偶之, 言時適也.
응함은 배합한 듯하다는 것은 언제나 적합하여
若影之象形, 響之應聲也.
마치 그림자가 형태와 같고, 메아리가 소리에 호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故物至則應, 過則舍矣.
그러므로 사물이 이르면 응하고, 지나가면 놓아둔다.
舍矣者, 言復返於虛也.
놓아둔다는 것은 다시 비움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일컫는 말을 심광체반(心廣體胖),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느냐는 맹자의 언질에서 비롯된 말로 학업을 닦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씀을 일컫는 말을 심재홍곡(心在鴻鵠),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높은 산속의 깊은 골짜기를 일컫는 말을 심산계곡(心山溪谷), 심술꾸러기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심술거복(心術去福),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마음에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심무소주(心無所主),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어떤 일을 함 또는 그 일을 일컫는 말을 심심소일(心心消日),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함을 일컫는 말을 심동신피(心動神疲),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르는 말을 심중소회(心中所懷),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심행소멸(心行消滅),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심복수사(心腹輸寫), 마음을 다하여 도를 구함을 일컫는 말을 심성구지(心誠求之), 심두 즉 마음을 멸각하면 불 또한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잡념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불 속에서도 오히려 시원함을 느낀다는 말을 심두멸각(心頭滅却),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없다는 말을 심원의마(心猿意馬) 등에 쓰인다.
▶️ 術(재주 술, 취락 이름 수)은 ❶형성문자로 术(술)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다닐 행(行; 다니다, 길의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朮(출, 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朮(출)은 차조, 짝 달라붙다, 뒤따라 가는 일 등의 뜻, 行(행)은 길의 뜻, 그러므로 術(술)은 사람이 모여서 생긴 마을안의 길, 모든 사람이 따르는 길, 일을 하는 법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術자는 '꾀'나 '재주', '수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術자는 行(다닐 행)자와 朮(차조 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術자를 보면 '손'을 뜻하는 又(또 우)자 주위로 획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朮자이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朮자가 '꾀'나 '재주'를 뜻한 것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재주를 부리고 있는 장소를 뜻하기 위해 여기에 行(다닐 행)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은 術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術(술, 수)은 어떤 명사(名詞)에 붙어 그 기술(技術)이나 재주를 나타내는 말로 ①재주, 꾀 ②방법(方法), 수단(手段) ③계략(計略) ④술수(術數), 책략(策略) ⑤길 ⑥사업(事業), 일 ⑦기교(技巧), 기예(技藝) ⑧학문(學問), 학술(學術) ⑨성(姓)의 하나 ⑩짓다 ⑪서술(敍述)하다, 그리고 ⓐ취락의 이름(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재간 기(伎), 재주 량(倆), 재주 재(才), 재주 기(技), 재주 예(藝)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을 꾸미는 꾀나 방법을 술책(術策), 어떤 일을 꾸미는 꾀나 방법을 술계(術計), 배워 얻음을 술득(術得), 술책을 잘 꾸미는 사람을 술사(術士), 술법에 관한 책을 술서(術書), 온당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술심(術心), 일을 교묘하게 잘 꾸미는 지혜를 술지(術知), 만들거나 짓거나 하는 재주 또는 솜씨 또는 사물을 잘 다루거나 부리는 꾀를 기술(技術),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공간 및 시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을 미술(美術),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적인 힘을 빌려 길흉을 점치고 화복을 비는 일 또는 그런 술법을 주술(呪術), 병을 고치는 기술을 의술(醫術), 침을 놓아 병을 다스리는 의술을 침술(鍼術), 의술이나 최면술 따위를 베푸는 일을 시술(施術), 칼을 잘 쓰는 수법을 검술(劍術), 점을 치는 술법으로 점을 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복술(卜術), 말하는 기교를 화술(話術), 장사하는 솜씨를 상술(商術), 사람의 눈을 어리게 하는 괴상한 술법 또는 그렇게 하는 일을 요술(妖術),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인정이나 도덕을 가리지 않고 권세와 모략 중상 등 갖은 방법과 수단을 쓰는 술책을 일컫는 말을 권모술수(權謀術數), 나라와 나라끼리 기업이나 특허나 기술 등을 서로 교환 제휴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기술제휴(技術提携), 여러 가지 방책을 깊이 생각한다는 말을 백술천려(百術千慮), 심술꾸러기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심술거복(心術去福), 남의 간악한 꾀에 넘어가거나 빠진다는 말을 타기술중(墮其術中)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動(움직일 동)은 ❶형성문자로 动(동)은 통자(通字), 动(동)은 간자(簡字), 㣫(동)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힘 력(力; 팔의 모양, 힘써 일을 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重(중;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움직이거나 할 때의 반응, 무게, 동)이 합(合)하여 움직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動자는 '움직이다'나 '옮기다',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動자는 重(무거울 중)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重자는 보따리를 매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무겁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무거운 보따리를 맨 사람을 그린 重자에 力자가 결합한 動자는 보따리를 옮기기 위해 힘을 쓴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動(동)은 (1)움직임 (2)변함 등의 뜻으로 ①움직이다 ②옮기다 ③흔들리다 ④동요하다 ⑤떨리다 ⑥느끼다 ⑦감응하다 ⑧일하다 ⑨변하다 ⑩일어나다 ⑪시작하다 ⑫나오다 ⑬나타나다 ⑭어지럽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할 위(爲), 옮길 이(移), 다닐 행(行)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그칠 지(止), 고요할 정(靜)이다. 용례로는 전쟁이나 반란 등으로 사회가 질서없이 소란해지는 일을 동란(動亂), 원동기에 의해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변형이나 발생시킨 것을 동력(動力),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동작(動作), 마음의 움직임을 동향(動向), 움직이는 듯함 또는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동감(動感), 마음이 움직임을 동심(動心), 흔들려 움직임을 동요(動搖), 움직이는 일과 멈추는 일을 동지(動止), 움직이는 상태를 동태(動態), 생물계를 식물과 함께 둘로 구분한 생물의 하나를 동물(動物), 움직이고 있는 모양을 동적(動的), 심장에서 혈액을 몸의 각 부분에 원심적으로 보내는 혈관을 동맥(動脈),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를 동사(動詞), 사람의 움직이는 상황을 동정(動靜), 하늘을 움직이게 하고 땅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세상을 놀라게 함을 이르는 말을 동천경지(動天驚地), 무엇을 하려고만 하면 남에게 비난을 받음을 이르는 말을 동첩득방(動輒得謗), 곤란한 지경에 빠져서 꼼짝할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동탄부득(動彈不得), 가볍고 망령되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도리나 사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경솔하게 행동한다는 말을 경거망동(輕擧妄動),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치켜들고 땅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큰 소리로 온 세상을 뒤흔듦 또는 천지를 뒤흔들 만하게 큰 세력을 떨침을 이르는 말을 흔천동지(掀天動地), 확고하여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을 확고부동(確固不動), 기운이 꺾이지 않고 본디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생생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생동생동(生動生動),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심동신피(心動神疲), 열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게을러서 조금도 일을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십지부동(十指不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