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다방
배용주
새벽보다 검푸른 샛개해변
모시 천을 깔아 놓은 듯
밀려오던 파도가 히얀 잇몸을 드러내고
햇살을 깨물어댄다
노을 젖은 해변은 붉은 눈물을 받아내고
갯바람에 하늘거리던 동백 가지 끝자락부터
꽃잎이 툭툭, 시간을 멈춰 세운다
해무가 한다령을 가벼이 넘는
동백숲 끝에는 여우다방이 있었다
안개비에 젖은 사내들이모여 앉아
달큰한 커피를 시켜놓고
진종일 시간을 집어낸다
홍어 잡으러 왔다는
콩고 사내 있었다
톡 쏘는 홍어 냄새 싫지만
한국 커피 맛있다는 그는
능숙한 사투리로 농담을 던진다
비 개인 동백숲 노을에 젖어
저녁 짓는 아내처럼 예쁘다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검붉은 몽돌 바닷가
홍어처럼 귀한 시절은 가고
동백 꽃잎 찧어다 손톱에 물들이고
난간에 다리 꼬고 앉아
여전히 여우는 꼬리를 친다
"오파앙 한 잔하고 가"
파시를 마친 사내들이
나비 같은 헛웃음만 날려 보낸다
벌초
머리가 많이 자라셨네요
터벅머리라 답답하셨죠
그곳에는 손님이 많다는 핑계로
대충 깎아줬는지 들쑥날쑥하네요
검은 머리 싫다고 하시더니
미장원에 다녀오셨어요
파랗게 염색도 하셨는데
내게는 좀 과해 보이네요
가을이니 갈색 머리가 좋겠어요
오랜만에 자식들이
머리 깎아주니 시원하시죠
지난봄 자두꽃은 볼만하던가요
꽃그늘에 앉아 많이 기다리셨지요
그늘에 앉아 술 한잔 드시고
며칠 후에 저녁 드시러 오세요
갈색 머리 휘날리며
술 한 잔 드시고
편히 쉬었다 가세요. 아버지,
시집 『여우다방』 2023년 이든북
배용주 시인
- 2004년 <한맥문학>시 부문 등단
- 대전문인협회 시 분과 이사
- 제1회 글벗문학상 수상
- 2020, 2023 대전문화재단 예술지원금 수혜
- 시집 <무등의 나비 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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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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