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볕이 머무는 집
원래부터 모자란 집은 없다. 다만 쓰임과 꾸밈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줄 뿐이다. 여기 독특한 평면과 다소 부족했던 채광을 지녔던 집을 새로 단장한 가족이 있다. 가족의 대화가 깊어지고, 더 많은 웃음이 머무는 이곳에서는 한 조각 봄볕조차도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시간을 끈다.
살던 집 인테리어
김숙희 씨와 그의 가족이 서울에 위치한 한 주상복합 아파트로 거주를 옮긴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부부는 두 아이가 자라날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갖춘 데다 그의 다른 가족들이 가까이 살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상황이 곧 달라졌다. 가족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애정 깊은 집이지만 10여 년의 시간은 강산뿐 아니라 사람의 라이프스타일도 바꿔놓았다.
“아이들이 먼저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중학생이 된 두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집의 기본 평면상 방이 작았으니까요. 그에 비해 안방과 가족실은 별 쓰임 없이 비대했죠. 용도가 모호한 곳엔 짐이 쌓이고, 짐이 쌓인 집은 어두워 보일 수밖에 없었어요.” 이사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살던 집에서 인테리어를 감행한다는 것은 용단이 필요한 일이다. 가진 짐을 모두 빼고 두어 달을 가족의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불편도 따른다. 그로서는 큰 결정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기에 그게 힘이 됐다.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집을 떠나기보다는 고쳐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결정을 내린 후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다음의 10년을 보낼 수 있도록 집을 고쳐줄 디자이너를 결정하는 것. 집을 고치고자 하는 모든 이가 그렇듯 그 역시 몇 명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났다.
“달앤스타일 박지현 대표가 공간을 보는 감각이 남다르다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삶의 불편을 정확히 이해했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결정해 곧바로 솔루션을 내놓더군요. 그의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그렇게 마감재부터 공간 구획까지 집의 쓰임과 표정을 완전히 바꾸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구조 수정으로 실현한 로망
이 주상복합 아파트는 독특한 입면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입면의 일부는 뾰족한 삼각형의 형태를 지녔거나 비정형의 도형을 떠올리게 한다. 길을 지나는 이의 입장에서는 독특한 건축 디자인을 지닌 곳이라 탄성을 내뱉지만 그 안에 사는 이들에겐 외려 그게 고민이었다. 비정형의 평면은 필연적으로 데드스페이스가 생겨 공간의 효율을 낮출뿐더러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 역시 까다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 집을 고치는 디자이너로서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숙제였다. 이 집에 기능적인 쓰임을 더하면서 시각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더 넓게 하는 데 신경을 쏟았습니다.” 박지현 디자이너의 말처럼 시작은 구획이었다. 박지현 디자이너는 그의 두 아이가 원하던 대로 현관을 면하고 있는 복도에 위치한 아이들의 방을 넓혀 구획하는 과정에서 이들 벽면과 면해 있던 거실을 대폭 줄이는 선택을 감행했다. “기존 거실의 위치에 의문이 들었어요. 훌륭한 채광과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만 오른편으로 주방이 있었으니까요. 주방에 큰 상판의 아일랜드를 두고 기존의 가족실을 다이닝 공간으로 쓴다면 그의 동선은 한결 편해질 거고 공간이 지닌 역할도 명확해질 거란 확신이 들었죠.” 넓고 간결한 구조의 주방과 다이닝룸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집주인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해 멋진 상차림을 선보이기를 즐기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구조였기 때문. 그는 새로운 주방 구성을 위해 그가 평소 소망하던 시크릿 후드를 아일랜드에 설치하고 주방에 어울리는 모던한 수전을 선택해 디자이너와 함께 주방을 완성했다. 화룡점정으로 그의 맘에 쏙 들었던 소벳 이탈리아(SOVET ITALIA)의 디자인 체어까지 들여놓았다. 집의 단점이었던 평면의 한계를 커버하는 동시에 가족이 소통할 수 있는 구조와 꿈꾸던 공간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자연 채광이 모든 것을 바꾼다
‘빛이 없으면 색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명제를 주거 공간에 적용해보자. 자연 채광을 극대화한 집에선 생기가 느껴진다는 말로 읽힌다. 그로 인해 집에 사는 이들이 받게 되는 긍정적 에너지는 그 어떤 값비싼 인테리어로도 채울 수 없는 선물이다. 김숙희 씨와 박지현 대표가 기존에 있던 방 하나를 없애는 과감한 결정을 한 이유다. “기존에 다이닝룸으로 쓰던 공간을 중심으로 두 개의 방이 있었어요. 하나는 마스터 베드룸이고 하나는 ‘가족실’이라는 이름의 모호한 방이었죠. 채광이 좋고 주변부의 녹지 전경이 보이는 훌륭한 곳이었지만,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방에는 짐이 쌓이기 마련이지요.” 벽을 철거하자 그곳으로 볕이 쏟아져내려왔다. 두 사람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컸던 마스터 베드룸의 벽면까지 철거하고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자 자연히 가족의 싱그러운 거실이 마련됐다. 구조를 확실히 잡아둔 집에 차곡차곡 삶의 디테일을 고려한 스타일링이 채워졌다. 필요에 따라 위치와 조도를 변경할 수 있는 라인 조명등으로 앞으로 일어날 삶의 변화에 대비했고, 반려견 ‘잭’의 건강을 고려해 미끄러운 마루 대신 논슬립 기능을 갖춘 타일을 깔았다. 거실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지닌 볼리아(BOLIA)의 패브릭 소파와 이스턴 에디션의 커피테이블, 마멜의 디자인 러그를 배치해 한층 탁 트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후 4~5시쯤 학교에 갔던 아이들이 귀가해요.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시간에는 숙제도 하는 그런 일상이 더 특별해졌어요. 집 안 구석구석 마련한 수납공간 덕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욱 여유롭게 느껴져요. 내가 알지 못했던 필요까지 채워주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봄볕이 집에 머무는 어느 오후, 생기로 빛나는 집을 둘러보며 김숙희 씨가 말을 맺었다. 새로운 표정을 갖게 된 이 집에서 가족의 삶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인테리어 시공 달앤스타일(www.dallstyle.com)
출처 여성조선 박민정 기자, 사진(제공) : 이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