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버릇이 되어 안 할레야 안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로 ‘배운 도둑질’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마치 배운 도둑질 써먹듯이 거침없고도 익숙하게 그 더러운 방법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예감이란 빗나갈 때보다 적중할 때에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난다.
8월 28일 아침 희대의 정치공작으로 수세에 몰린 국정원이 난데없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실과 이 의원의 자택, 우위영 수석보좌관 자택, 박민정 통합진보당 청년위원장 자택, 김홍렬 경기도당 위원장, 김근래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장,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 지부장 등의 자택과 사무실 등 12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최소한 박정희 시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너무도 흔해 빠진 일이기 때문이다. 약간 놀라운 일이다. 박근혜 정권이 예상보다 다소 일찍 ‘배운 도둑질’을 써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란음모’라는 무서운 단어도 헛소리로 들리고 ‘공안탄압’이라는 심각한 단어도 심드렁하게 들린다.
“지난 대선 부정선거 의혹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책임지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색깔론과 공안탄압이라는 녹슨 칼을 빼들었다. 현재 진행되는 모든 공안탄압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곧 가장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정권을 겨냥할 것”이라는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의 긴급 브리핑도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언어들로 점철되어 있다. 최소한 박정희 시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께서 저지른 부지기수의 용공조작, 그것은 위기를 타개하는 전가의 보도였지 않은가? 보고 배운 게 많은, 아니 보고 배운 게 단일한 그 아버지의 따님이 아니던가? 모래 위 ‘저도의 추억’이 파도에 휩쓸리기도 전에 상경한 그가 유신의 충복 겸 용공조작의 핵심인물을 비서실장으로 끌어올릴 때부터 우리는 알아보았다. 주지하듯이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신헌법의 기안자이며 용공조작의 기술자였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이 있었다. 1975년 11월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등에 재학 중이던 16명의 학생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로부터 35년이 경과한 2010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작된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조작의 핵심인사가 바로 김기춘 비서실장 아니었던가?
역사는 불꽃회 조작사건, 1차 인혁당 조작사건, 동백림 조작사건, 통혁당 조작사건, 민청학련 조작사건, 2차 인혁당 조작사건, 크리스찬 아카데미 조작사건 등을 기록해 놓고 있다. 물론 용공조작은 이 사건들 말고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 모두가 오늘의 대통령께서 체득한 ‘배운 도둑질들’일 거라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왜 유독 통합진보당인지도 잘 안다. 통합진보당은 공작선거 항전에서 가장 진지하게 분투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대통령에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던진 정치인이 대표로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거리투쟁도 불사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통합진보당의 여론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연 더 확실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통합진보당을 공안사건에 가장 정합성이 있는 정당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아무렇든지 통합진보당의 10만 당원을 비롯한 전 국민의 6% 대 지지자들은 끝까지 지혜롭게 싸워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