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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좋아하는 옷 남자가 싫어하는 옷
자신의 취향이 아니어도 연인을 위해 내키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여자들의 강박관념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 남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의식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옷을 입는다고 생각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누군가에게 보일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도, 옷에 대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접근하기도 대화하기도 쉽게 마련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문득 지금껏 만난 여자친구들 생각이 났다. 오래 만난 어떤 그녀는 관심사가 비슷해진 것인지 처음 만났을 때와 나중의 옷차림이 꽤 달라졌고, 덕분에 서로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또 다른 그녀는 한마디로 정숙했는데, 대중에게 인기 있는 스커트라든가, 시계라든가, 특정 브랜드의 가방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꼭 하나쯤 걸치고 다녔다. 그간 그녀들을 변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던 부분에 나라는 남자는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까?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패션이 있다고 생각할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몇 개월 전부터 광화문에 본사가 있는 언론사에서 인턴십을 하는 친구 A(여자)는 매력적인 문장의 글을 쓸 줄 아는 여성으로, 패션에선 유행을 급히 따르려 하거나 열정이 많지는 않다. 그런 그녀는, ‘쇼핑할 때 남자친구를 의식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조금 생각하더니 이내 그렇다고 한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니트와 미니스커트에 부츠를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쇼핑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시기에 만난 남자는 소위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꾸미는 데 익숙한 사내였는데, 그는 딱히 A가 무슨 옷을 입길 바라기보단 그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걸 좋아했다. 그녀도 어떤 재킷을 입었을 때의 그에게 ‘그때 멋있었어.’라고 말해주면서 서로 옷을 입는 것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얘기를 들으니 불특정 이성의 취향에 대한 무모한 추측보다는 누군가와 만나면서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도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취업에 성공한 고등학교 동창 B(남자)는 ‘여자가 부츠 신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고 했다. 이유는 무려 ‘비위생적으로 보여서’. 실제 그런 내용의 뉴스를 본 것이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내가 아는 여자들 대부분이 부츠와 하이힐을 가진 구두를 편애하는데,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또한 그가 오래 만난 동갑내기 여자친구는 플랫 슈즈에 스커트를 신거나 스트레이트 핏의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이니셜을 새긴 L 브랜드의 지갑이라든가, 금장 로고가 박힌 F 브랜드 로퍼를 선물해주는 등 친구를 위한 선물에도 인색하지 않아 친구 역시 그녀에게 베풀어야 했다. 그런 취향을 가진 커플과 걸을 때 항상 길거리에 잘 동화된 걸 생각하면, 친구 커플이 입은 옷차림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환영받는 튀지 않고도 단정한 룩이었나 싶었다. 끝으로 여자의 룩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혀보면, 단 하나 싫어하는 스타일이 있다. 과도한 레이스를 남발하는 블라우스나 스커트를 함께 입어 어딘가 과포화된 스타일로, 이제 막 사회에 진출했거나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무렵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색한 화장을 한 고등학생이 나이를 들고 보면 전혀 예쁘지 않은 것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는 어색함은 소싯적 고등학생이 나이트클럽에 갈 때 입는 정장처럼 안쓰럽기 그지없다. 아니면 너무 패션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한 차림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하나하나가 모두 비싸거나 희귀하지만 무언가 너무 꽉 차서 부담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며 나도 종종 반성하고 무언가 덜어내는데, 너무 멋지게 보이려다가 의욕이 과한 이들에게도 이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반대로 내게 매력적인 옷차림은 어딘가 ‘여백이 있는’ 여성이다. 한두 곳 빈 듯한 느낌을 주며, 유행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 어딘가 무심한 듯하지만 그 무심함이 패션으로서의 무심한 콘셉트가 아니라 정말 그럴듯한 자연스러운 스타일. 뭐랄까, 딱히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또한 너무 변형된 디자인의 화려한 옷 대신 기본을 잘 지키고 좋은 소재와 단정한 디자인을 가진 아이템을 조합한 옷차림도 좋아한다. 한 시즌 잘 쓰고 다시는 들 것 같지 않은 가방이나 재킷 대신 일견 밋밋해 보일지 모르나 좋은 소재와 평범하면서도 진득한 디자인의 옷을 선호하는 여성에게는 나도 모르게 끌려버리고 만다.
이거는 뭐 쓰다보니 줏대도 취향도 없어 보이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낸 결론은 딱히 남자로서 여자의 특정한 취향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한눈에 호감이 가는 룩, 첫인상이란 건 분명 있지만 그것들을 불변의 원칙으로 세우기에는 스스로 곧잘 바뀌어버림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취향 이야기에서 여론조사처럼 어떤 공식이 있는 통계학을 적용한다면 다수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가를 수 있을지 모른다. 얘기를 나눈 친구들에게 다수의 이성을 상대로 좋아할 것 같은 옷차림을 물었더니 대체로 평범하고 무난한 옷차림을 얘기했고, 그것을 파고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1 더하기 1이 반드시 2가 아닌 게 사람의 만남이 주는 묘미 아닌가. 주위만 둘러봐도 같은 아이템만큼 다른 아이템을 걸친 사람들이 길을 활보하는데, 그들이 입은 것이나 자신이 입은 것을 누가 좋아할까 아닐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가는 가뜩이나 여러 눈치 보게 만드는 요즘 세상에 또 다른 스트레스성 눈칫밥만 늘어날 것이다. 패션은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 맞추는 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취향이자 자신감이다.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에게 맞추기 위한 도구로써 옷을 입기보다는, 자신이 즐겁기 위해 입는 게 정신 건강상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여자들이여, 그대들의 선입견과 남자의 시선에서 조금씩이라도 자유롭기를 바란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도 좋아할 것이고, 그게 주위와 다르다고 해서 그대가 잘못한 것은 결코 아니니까. 그저 오늘도 내일도, 그대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즐기시길.
첫댓글 오호~
내 남친은 내 취향데로 옷을 입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