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얍복강의 밤을 지난 자만이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소발은 욥에게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 죄를 회개하여 어두움의 날을 통과한 사람에게 있을 밝은 내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이것은 마치 얍복강의 길고 지루하며 처절한 밤을 지냈던 야곱이 브니엘의 새 아침을 맞이했던 것을 생각나게 해 주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얍복강에서 맞이한 밤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얍복 나루에서의 밤은 그 때까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듯한 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어둡고 칙칙한 인생이었습니다.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홀로 먼 곳을 여행해야 하는 불행한 밤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밧단아람에서도 그의 어둠은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뎌내야 했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창 31:40). 그렇게 하고도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아무런 삯도 받지 못한 것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실로 이러한 삶을 어떻게 어둠의 삶, 밤의 인생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얍복의 밤을 지난 후의 그의 인생을 보십시오. 확실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그는 원수 사이로 돌변했던 형과 무사히 화해했습니다(창 33:4). 이러한 화해는 오히려 약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했습니다(창3:18-20). 그리고 항상 낮과 같은 보호 속에 살았습니다.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연이어 시므온과 레위가 다나를 강간한 하몰 일가를 몰살하는 등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 역시 벧엘로 올라가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창35:1-8). 말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는 불행을 겪었지만, 그 역시 온 가족이 7년 대기근에서 구원을 얻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얍복의 혹독한 밤, 자기가 깨어지는 밤을 지난 자에게는 이처럼 찬란한 브니엘의 아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이들이 우리가 그렇게 경멸하듯 이야기하는 그 야곱조차 받아 누린 브니엘의 찬란한 아침을 누리지 못합니까? 마치 자신은 야곱보다는 나은 듯 얍곡의 밤을 지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 지냈던 것과 같은 벧엘의 밤, 그리고 밧단아람에서의 그 무수했던 고독과 고생과 눈물의 밤을 보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의롭ㅈ다고 하는 욥조차 이러한 혹독한 밤을 지나서 영구히 어두워지지 않는 아침 인생을 맞이했습니다. 어디 욥뿐입니까? 인생에서 길고 긴 터널 같은 어둠을 지나지 않고 찬란한 영광의 아침을 맞이 하지 아니한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한 믿음의 위인, 교회 역사의 위인들이 어디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설령 그것이 기쁘지 않다 해도 당당하게 맞이하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 앞에는 머지않아 브니엘의 찬란한 아침, 결코 어둠이 넘볼 수 없는 그 아침이 도래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