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달 선생은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출신이다. 1919년 1월21일 갑작스러운 고종의 서거로 인해 국민들이 크게 동요했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만세 시위가 결의돼 그해 3월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과 함께 첫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신학제) 3학년이던 노예달 선생은 이화학당으로 들어온 만세 행렬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함께 만세를 불렀다. 3월5일엔 남대문역 앞 광장에서 강기덕, 김원벽 등이 주도하는 학생연합 만세시위가 열렸다. 노예달 선생은 이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학교 담장을 넘었고, 남대문역에서 ‘독립기’를 인쇄하고 붉은 천을 휘두르며 군중 1만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노예달 선생은 시위대와 함께 종로까지 행진하다 체포돼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의 모든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정부는 이러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첫댓글 머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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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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