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쯤..꼬박 기내에 갖혀 도착한 샤를 드골 공항..
출발 전까지 한국에선 눈을 못봤던 터라,
마치 성탄 카드 표지처럼 솜뭉치같은 눈이 내리는 전경을 보고서야
'드디어 파리에 왔구나..' 실감할 수 있었어요..
기내에선 금연이라는 것을 알기에
잠으로 흡연불가의 고통을 인내하려
이틀 밤을 새고 비행기에 올랐건만,
간간히 제공되는 와인은 잠들기엔 돗수가 넘 낮더군요 ㅡ.,ㅡ;
불편한 곳에선 쉽게 잠을 못이루는 유한 성격에,
더더군다나 맨정신으로 잠든다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작업였어요..-.-;;
이렇게 피곤함으로 제 겁없는 파리 여행은 시작되었답니다..
삶의 템포가 느려질 즈음,
여행은 그 템포를 찾을 수 있는 괜찮은 도구인 것 같아요..
특히,혼자 멀리 나가보는 건 첨이라,
조금 겁나고 두렵기도 했지만
나름 성공적인 여행이라 자찬하고 있어요..ㅎㅎㅎ
어렸을 적 마냥 동경했던 루브르와 몽마르뜨는
언제부턴가 혼자 파리를 여행하겠단 계획을 세우게 했어요..
어려운 살림을 쪼개어 간 거라 많은 곳을 다니진 못했지만
많은 생각과 더 많은 모티브들을 얻을 수 있는 여행였어요..
개선문,샹제리제,노트르담,에펠탑 등 명소도 좋았지만
전 역시 몽마르뜨와 루브르에서 많은 감흥을 얻은 것 같아요..
몽마르뜨르..
거기에 가면,자유로이 살다간 그들의 혼이 아직 머무를 것 같았어요
갖힌 내 심장에 뭔가 salida를 제시해 줄 것만 같았어요
사실,관광지로 전락해버린 몽마르뜨 초입을 걸으며 많이도 실망했었어요
여기에 무슨 위트리요가,고흐가,피카소의 영혼이 노닐겠는가...
그러나 푸른 잔디 비탈길 샤크레 쾨르 사원을 오르며
차차 실망감은 안도감으로 바뀌었어요
마치 고고한 성녀같은 당당함과 기품..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이라는 돔은
그야말로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극치였어요
그에 비해 바로 옆 자리한 생 피에르 교회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라 그런지
비교적 초라하고 낡아 보였어요
그러나 전 이곳에 더 정감이 가더라구요
옆 샤크레 쾨르에 비해 관광객도 훨씬 적었지만,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는 이 교회는 훨씬 진실해 보였거든요
떼르뜨르 광장의 화가들을 보며 식사를 하고
오랫동안 그 곳에 앉아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예인들의 에너지..
하루를 걱정하는 그들의 깊은 주름과,
자존심 잃은 호객 행위가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몽마르뜨 곳곳의 변하지 않은 옛 거리와 풍경들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는 듯 날 앉혀 두었어요
살바토르 달리의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이 휴관여서 못본 게 아쉬웠는데,
저녁 때 들른 퐁피두 센터(국립 근대 미술관)에서
달리의 작품을 몇점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이틀을 둘러본 루브르는 너무나 거대하고 수많은 전시물들을 보유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듯한 느낌였어요
그 유명한 모나리자나,이삭줍기,
네로와 파트라슈가 죽기 전 보았다던 루벤스의 그림들은
기대보다 큰 감흥을 얻진 못했어요
대신 그리스 로마 신화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고대,중세 그리스 로마 이집트 조각들은
훔치고 싶을 만큼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특히 나비를 좋아하는 저로썬,
'에로스와 프시케' 조각이 젤로 멋지더군요
19세기 유화나 나폴레옹 아파트,왕정 복고와 7월 왕정의 유물들은
굉장히 화려하고 근엄했어요..
아침부터 하루 종일 루브르에서 발품을 팔고도
채 1/6도 못봤단 걸 알고는 계획을 수정,
하루를 할당한 옛 시댁(^^;;) 베르사유를 포기하고
이틀째는 보고 싶은 것만 체크해서 루브르를 다시 함 공략했죠..
엄청난 보유량에 놀랍기도 하고 큰 감흥을 얻기도 했지만
약탈의 역사를 둘러보는 듯도 해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더라구요
이렇게 파리까지 온 이상 아니 들를 수 없는 곳,
마침 토욜 저녁,밀롱가를 찾았어요
Alfredo & Isabelle(?)가 개최한 Bistrot latin 였는데
오나다만한 홀을 가진 라티나라는 바였어요
이곳도 토요일엔 밤11시 정도 되니까 땅게로스들이 몰리더군요
오기 전 한국에서 왼발을 좀 다쳐서
파리의 밀롱가를 위해 조신히 지내다 왔건만
루브르 등에서 혹사당한 탓인지 채 몇곡을 추지도 않았는데
유리 파편 위를 걷듯 통증이 느껴지더라구요
라이브 연주에다 파리의 땅게로스는 몰려들고..
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특히 거기서 만난 브루노(철자상은 브루노지만 그는 브후그노?라
발음했다 서투른 내 무성음 발음에 그는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쓰러질 듯 웃곤 했다 -.-;;)라는 땅게로와는
처음 몇곡과 마지막 열곡 정도를 같이 췄어요..
외국에선 절대 땅게라가 먼저 청하지 않는게 에티켓이란 소릴 듣고
눈치만 보고 있는 제게 유쾌하게 손을 내민 그는,
영어는 잘 못했지만 둘다 일본어를 할줄 알아서 대화도 좀 나눴어요
그는 마치 다른 세계로 절 인도하듯 부드럽고 섬세했어요
때론 진지하게 때로 장난스럽게..
잘 모르겠지만 그는 누에보 동작에도 능한 듯 했어요
왼발이 아프다고 하자 더 깊게 아브라소를 하며
안무거우니 자신에게 기대라는 그의 말에 전 정말 감동였어요..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마지막 몇곡을 출 때는,
'그래,난 인어공주고 오늘 그리던 왕자님을 만난거야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고 생각하자' 란 심정였어요..
그날 이 후 베네치아를 들러 로마에 오기까지 전 내내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어요 ㅜ.ㅠ
참,거기서 미국춤님 부탁으로 '엘 사로리토'란 땅고 잡지를 가져왔는데 '다미안&셀린느'.'세바스찬&마리아나'등의 단과 레슨 광고를 볼 수 있어 반가웠어요
아마 제가 발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머지 여행 포기하고 레슨을 들었을 지도 몰라요 ㅎㅎㅎ
로마에서의 여행도 끝나가고 발도 나아질 무렵,
방앗간 들르듯,다시 밀롱가를 찾았죠
로마에선 파리보다 정보 얻기가 훨씬 어려웠는데
안통하는 영어로 3군데나 전화로 물어물어
간신히 로마 근교에서 열리는 밀롱가를 찾았어요
(이탈리아는 프랑스보다 영어가 안통하는 듯 해요
간단한 단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L'arca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로마 근교였는데
파리나 우리 나라보다 훨씬 럭셔리하고 여유로워 보였어요
중심가보다 땅값이 싸서 그런지,-.-aa
홀도 훨씬 넓었고 연령대도 폭넓은 편였어요..
복층으로 된 넓은 건물엔 여러 스튜디오와,
땅고 외에 살사나 바차타,룸바 등의 레슨 안내를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사설 복합 댄스 스쿨 같은 곳이었나봐요..
60,70대 연령대와 부부끼리 온 커플들도 심심찮게 봤는데
왠지 우리 나라보단 춤이 더 생활화되고 여유롭단 느낌였어요..
춤 중간중간 마이크로 머라머라 소리치며 흥을 돋구던,
디제이 할아버지도 못해도 예순은 넘어 보이시더라구요
거기서 아시아계는 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제가 춤출 때면 종종 디제이 할아버지가
'세울~꼬레아~~레이디~ 그라지에~'를 외쳐 주셨어요
서비스로 받은 와인 한잔이 무척 고맙더라구요..
참,거기서 마우리시오도 봤어요
그 외 몇몇 유명한 사람들이 온 듯 했는데
당췌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있을 때 유명한 사람들 사진 좀 익히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특히,밀롱가가 진행되는 중간에
이른 가까이 되어보이는 왠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디제이 할아버지도,홀 매니져 할아버지도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춤을 멈추고 고개숙여 그를 맞이했는데
그 할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아직도 무척 궁금해요
밀롱가는 4시까지 진행되지만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전 2시에 나와야만 했어요..
아,거기선 리마리오 닮은 땅게로와 많이 췄는데
그는 세번이나 제게 신청을 해서 무척 고마웠어요..
잘 못알아들었지만 그도 어디선가 레슨을 여는 것 같더라구요..
아마 그날은 파트너가 같이 못온 모양예요..^^;;
그 이후로 전 한국에 올 때까지 다시 절룩거려야만 했어요..
여행 도중, 큰일날뻔한 적도 있어요
로마엔 소매치기나 강도가 많다고 들었지만
제 핸드백은 어깨에 딱 달라붙는 거라 좀 안심했죠..
팔을 뽑지 않는 한 가져갈 수 없을 테니..
그럭저럭 별탈없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로마에서 마지막 날 공항까지 연결되는 열차를 타는데,
그때 전 엄청 큰 트렁크와 중간 사이즈 기내 가방을 끌고
왼쪽엔 핸드백과 펜* 종이가방을 메고 테잌아웃한 커피까지 들고
암튼 정신없이 짐을 열차로 올리려는데
아랍계 미모의 두 여자가 다가와 짐 싣기를 도와주더군요
전 첨에 멍청히도 철도청 도우미들인 줄 알고 고마워 했는데,
그녀들은 유독 제 핸드백을 맨 왼팔에 집착하는 거예요
'그라지에' 인사했건만 좌석까지 부딪히듯 따라오길래
느낌이 안좋아서 "논 미 피아체"(좋아하지 않아요)하고 떨쳐냈더니
부딪혀 들고있던 커피를 떨어뜨리게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제 앞좌석에 앉아 있던 '조니'라 부르라는 이태리 청년과,
그 후에 더 두명의 청년이 소릴 지르며 뛰쳐 나갔어요..
전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곧 창 밖으로 세명의 청년들이 그녀들을 따라잡아
조니가 제 지갑을 낚아채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곧 역무관인 듯한 남자가 달려왔고
그는 제게 와서 신상을 묻고 전 여권을 확인했어요
정말 알면서도 당할 뻔 했지 머예요..
다행히 지갑은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전 '조니'라고 부르라는 그에게 눈과 맘을 잃었답니다..^^;;
오기 전 이태리 남자들은 걸어다니는 조각같이 생겼다고 들었건만,
제가 본 조각들은 성당이나 미술관에만 있던데요 -.-aa
그런데,내 앞에 앉은,지갑까지 찾아준 이 은인이,
환생한 다비드 상같더라구요..ㅎㅎㅎ
언젠가 '비퍼 선 라이즈'의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를 꿈꾸기도 했지만 눈감으면 코 베어갈라 혼자하는 여행이기에 눈인사도 무서웠던 저였습니다..ㅡ.,ㅡ
하필이면 마지막 날 만날 게 뭐람..
그의 얘기론, 열차를 타기 전에 내 바로 뒤에 그가 따라왔는데
그녀들이 다가와 "꼼미 치까(?)"라 물었답니다
잘 몰겠지만 대충 "With the child?"(저 어린애랑 일행야?)라는
뜻으로 그에게 물어봤다나 봐요
(날 표적으로 삼은 것도 기분 나쁘지만 내 키가 작긴 해도
저 '치까'라 표현도 무척 맘상했음..)
빨랫거리 밖에 안들었던 펜* 가방을 보고 표적으로 삼은 듯 해요
'조니'라는 친구랑은 공항 흡연실까지 함께 했어요..
담부터 혼자 여행할 땐 오픈 티켓을 끊어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길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보니
암담하고 갑갑한 현실은 그대로였어요..
장담할만한 제길도 아직 모르겠고..
하지만 뭐 어때요..
제겐 땅고를 출 수 있는 두발과,
아직 젊은 시간과,
절 아끼는 몇몇 사람과,
제가 밥 안주면 굶어죽을 고양이가 있는데..
이젠 혼자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는데..
* 여행의 교훈-유럽은 역시 남자들이 친절하다
혼자 여행은 오픈 티켓을 끊어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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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밍, 잘 다녀왔구나. (여행 안가도 얻을 수 있는 교훈 - 한국남자도 미인에겐 친절하다..ㅋ)
전 미인이 아니라 그런지 별루 안친절들 하시던데요..-.-a
좋은데 갔다왔네. 부럽당.(여행 안가도 얻은 깨달음 - 그래서 내 주위의 남자들이 다들 친절하구낭.. 오호홍^^)
언니 땜에 미치겠삼~~ ㅋㅋㅋ
드리밍님 잘 다녀왔어요?? 넘 부럽삼.. 마치 내가 여행을 다녀온듯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담에 뵈면 더 좋은얘기 들려주3~ 오늘동 행복한 하루가 되길..
냥냥님 꼭 설에 계신 듯해요..솔땅 게시판에서 자주 뵙는 듯..ㅎㅎㅎ
우와..재미있는 여행기 잘 읽었어요. 드리밍님 왜 안보이시나 했어요..여행 가시느라 뜸하셨군요!! 전에 오나다 앞에서 밤 새고 같이 설렁탕 먹었던 거 기억하시죠?^^
오호~ 솔직히 닉넴보고 뉘신가 했어요 담에 또 설렁탕 한그릇..^^ 아니 그때 멤버 다시 모아서 못먹었던 떡볶이 먹죠 ^^;
선물은 준비했겠지...^^
혼자여행은 오픈티켓을 끊어라~ 매우 유용한 팁이네요.^^ 시간과 비용부담만 없다면 오픈티켓끊어 여행 함 가보고 싶네요 ㅋㅋ근데 이태리여자들은 어떻던가요?
어째.. 통 안보인다 했더니..좋은 경험 많이 하고 왔네^^
파리, 로마를 유익하게 섭렵하고 밀롱가도 가 보시고 잘 다녀오셨네요^. Paris Tango Magazine -Farolito http://www.paristangomag.com/eng/frame.htm
에궁, 부러워라~~ 정말 좋으셨겠네요. ( 귀국 티켓을 포기하는 수도 있었겠삼~ ㅋ)
어제 산.. 로또만.. 당첨된다면.. 나도..나도.. 밍님~ 보고싶어용~ ^^;;
치카라는 말 소녀란 뜻이지만 젊은 여자한테 다 쓰던걸요. (30 넘은 여자한테도 나이먹은 분들은 치카라고 부르더이다 ^^) 어린애라기 보다는 젊은이 란 뜻으로 받아들이세요. ^^ 그나저나 부러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