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공미술관(海公美術館)이 준공되었다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지난 12일 하남시 광암동에서 해공미술관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이 날 준공식에는 개관식 대회장을 맡은 노암(魯岩) 김문기 상지대 설립자를 비롯하여 해공기념사업회 류중석 이사장, 전 문공부장관 신락균, 이명박 후보를 대신하여 김충환의원, 한국미술협회 노재순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식전행사는 하남시 할머니 합창단이 대거 동원되었고 내로라하는 국악계의 거성들이 참여했으며 한류문화를 대표하고 있는 ‘난타’팀도 흥을 돋았다. 찬 바람이 몰아쳤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개관을 축하했고 전직 대통령 등이 보내온 화환과 화분이 눈길을 끌었다.
개관식 행사는 조촐하면서도 정중하게 거행되었다. 해공선생의 유덕을 추모하는 대회사와 축사들이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해공이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기리며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난한 사업을 성공시킨 해공일보사 발행인이기도 한 류중석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남모르는 애로를 이겨내고 일을 성취한 감회에 노안(老眼)을 적시기도 했다.
그의 박력과 추진력 그리고 성심성의를 다한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은 것이다. 미술관은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일반 갤러리와 달리 상업성을 배제한 곳이다. 미술관은 박물관과 함께 미술품만 전시하거나 소장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과학 등 모든 것을 수집하고 전시한다.
이를 통해서 외국인들에게도 나라의 문화척도를 가늠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장하는 문화 예술작품들은 하나같이 나라의 보물이고 보배다. 해공미술관이 앞으로 크게 발전하려면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여 좋은 작품들을 소장해야만 한다. 이번 개관을 통해서 전시된 작품들은 한국 서화계의 거목들이 총망라되었다.
그것은 한국미술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로 현대화들로 채워졌지만 앞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답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해공선생이 남기고 간 유덕 때문이다. 해공은 1956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하겠다는 전 국민의 여망을 안고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주당 구호는 우리나라 선거사상 가장 절묘한 구호로 평가받고 있지만 민주당이라는 간판 정당명칭도 정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이다. 수백개의 정당들이 점멸하면서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당명은 민주당뿐이다. 현재의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왜소한 정당이지만 해공 신익희의 민주당은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해공은 중후한 인품과 좋은 풍채를 지닌 인물로 천하제일의 웅변가였다. 그가 한강 백사장에서 유세를 할 때 몰려든 청중은 당시 서울 인구를 감안한다면 요즘 100만 명보다 훨씬 많았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김구선생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독립운동가로서 건국과 함께 제헌 국회의장을 맡아 국회의장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가 호남유세를 위해서 밤 기차로 전주를 향하는 중 현재의 익산역 못 미쳐 함열역 근처에서 뜻 아니 한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은 전국을 통곡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유세를 듣기 위해서 전주중앙초등학교 큰 운동장은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주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각지에서 어려운 교통편을 무릅쓰고 모두 참여했다.
당시 분위기는 해공의 유세장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어디 가서 화제에 낄 수도 없었다. 심지어 한강 백사장 유세를 다녀온 사람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것이 민심이었다. 자유당 일당독재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먹혀들 수 없었다. 무조건 새로운 세력으로 갈아보자는 풍조였고 그 중심에 민주당이 있었다.
요즘 대선 양상과 어쩌면 비슷하기도 하다. 이명박 후보에게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면서도 노무현정권의 재창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일방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것과 상통하는 바 있지 않은가. 해공은 그렇게도 많은 사람을 울리고 갔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일화와 덕성은 꾸준히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기에 불모의 땅을 일궈내듯 해공미술관이 건립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익산시에 해공도서관이 생긴다. 이미 서울 강동구에는 해공기념공원이 세워졌다. 그의 출생지와 관련된 지자체가 광주, 하남, 강동이기에 세 곳이 모두 해공을 경쟁적으로 기리는 사업을 한다. 참으로 보기 좋은 현상이다.
국가와 민족만을 위한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의 발자취를 후인들이 되새기며 뒤를 따르겠다는 의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을 느낀다. 우리 주위에는 해공처럼 많은 교훈을 남긴 선각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이 쏟아져 애국자를 잊지 않는 국민성이 크게 발양하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첫댓글 아이고오 언제 다 읽어보나요~~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