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이 물든 단풍마
그제 가뭄 해갈해 도움 될 가을비가 내리고 입동이 지나 고온은 수그러들었다. 우리 지역은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아 시야에 들어온 주변 산은 단풍이 완연하게 물들지 않은 상태다. 그러함에도 도심 거리 가로수나 공원 조경수들은 울긋불긋해져 낙엽이 되어 거리에 뒹굴었다. 가을이면 환경미화원들이 보도의 낙엽을 치워야 하는 수고를 더하기에 보고 지나치기에 마음이 쓰였다.
십일월 둘째 금요일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대학 동기와 동행한 산행을 나섰다. 작년 여름 퇴직과 동시에 의령 가례 처가 동네로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해 농부가 된 친구다. 시내 아파트는 비우질 못해 혼기가 꽉 찬 자제를 머물게 했다. 친구 내외는 시골에서 본인은 농사일과 처는 요양보호사 역할 틈새 간간이 시간을 내어 도시 나들이를 나왔다. 나하고는 석 달 만에 만났다.
동기가 시내에 거주할 때는 주기적인 산행을 같이 다녔는데 귀촌한 이후는 농사일로 틈을 내지 못했다. 동기는 예전 근무지 동료들과 회식 자리 참석 건으로 전날 창원으로 와서 본가에 머물렀다. 이튿날 이른 아침 산행 차림으로 나와 접선하기로 한 동정동으로 나왔다. 우리는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굴현고개를 넘어 감계 신도시로 가서 신설 중학교 근처에서 내렸다.
둘은 작대산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작년 이맘때 봐둔 단풍마를 캐오기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높은 아파트가 들어선 조롱산 기슭 등산로를 따라 산마루에서 작대산 북향 기슭 임도로 들었다. 임도를 경계로 해서 꽤 넓은 골짜기는 골프장이 조성되어 여기를 즐기는 이들이 찾는 데다. 산중에 들어선 골프장인지라 멧돼지 접근을 막고자 울타리를 철조망으로 둘러쳐 놓아 이채로웠다.
임도 길섶의 풀들은 시들어가는데 가을을 장식했던 야생화들도 함께 퇴장하는 즈음이었다. 하얀 구절초는 꽃잎이 거의 저물었고 연보라 쑥부쟁이는 그나마 꽃잎이 조금 남은 편이었다. 노란 꽃으로는 이고들빼기가 시들었고 산국은 진한 향기를 아직 뿜었다. 산이 겹겹 에워싼 북쪽으로는 멀리 마금산 온천장이 아스라했다. 이른 아침이라 엷은 안개가 피어오르다가 점차 사그라졌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디 전망이 탁 트인 정자에 올라 한동안 앉아 환담을 나누었다. 친구의 여름 농사일과 가을걷이 후일담에서 어느새 진정한 농부로 바뀐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귀촌한 동네가 고령의 장모와 함께 기거하는 처가여서 지역민들과도 잘 어울렸다. 여름에 캔 감자와 가을의 고구마 뿌리를 마을 경로당으로 보내 할머니들의 간식거리로 쪄 먹게 하는 친화력도 돋보였다.
정자에서 내려와 길고 긴 임도를 따라가니 건너편은 무릉산이 마주했는데 활엽수림은 단풍이 짙게 물들지 않음에서 된서리가 내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갈 산모롱이가 한참 남은 지점에서 단풍마가 보여 넝쿨이 뻗어 내린 언덕의 흙을 호미로 헤집었더니 생강처럼 생긴 뿌리가 불거져 나왔다. 잎이 단풍잎처럼 생긴 단풍마의 뿌리는 가을 산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약재다.
인적 없는 산모롱이를 돌아가자 멀리 떨어진 골프장 입구 식당에서 성량을 높여 튼 스피커에서 대중가요가 들려 산중의 적막을 깨트렸다. 전망 트인 곳을 지나다 암자 소개 안내가 붙은 정자에 배낭을 벗어두고 단감을 꺼내 먹고 작년 그 쉼터에서 가까운 언덕에 봐둔 단풍마 뿌리를 캤다. 흙살이 적어 단풍마 뿌리 양은 많지 않아도 토복령으로 불리는 망개나무 뿌리는 덤으로 캤다.
단풍마는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사포닌이 함유되어 약차로 끓여 마시면 건강에 도움을 준다. 단풍마처럼 생긴 토복령도 야산에서 쉽게 구하는 뿌리 약재다. 배낭을 추슬러 임도를 따라가다 단풍마를 한 무더기 더 캐 산기슭으로 내려갔다. 덕촌에서 운곡을 지나다 길가에 중식집이 보여 들었다.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친구에게 맑은 술을 잔에 채워 권해도 나는 잔을 사양했다. 2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