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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의 숨결]歷史(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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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후세의 귀감이다. 책도 많고 서술 체제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기전체 사서는 사실을 포괄적으로 전해주기에 좋은 방법이다. 반면 흐름을 살피는 데는 편년체 기술 방식을 따르는 게 낫다. 그러니 사서를 읽는 사람은 기전체 사서의 기(紀)와 전(傳), 표(表)와 지(志)에서 많은 사실을 얻고 편년체의 역사책으로 요약할 수 있으면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역사 속의 어떤 일에 대해 잘못을 나무라고 잘하는 것을 드러내 논평하는 것은 약간의 식견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일의 잘잘못을 구분하는 것은 당시의 제도와 위정자들의 마음을 읽고 이것 저것을 따져본 뒤에야 가능하다. 어찌 옛사람이 변명하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경솔하게 기술할 수 있으랴! 한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면 한나라 조정에 서 있는 듯이 하고, 당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면 당나라 조정에 들어간 듯이 해야 한다.
-혜강 최한기(1803~1877)의 ‘역사를 논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論史審愼, ‘기측체의’에서)
공자 이전에도 역사책이 있었다. 진나라의 ‘승’(乘), 초나라는 ‘도올’(도 兀), 제·송·노나라의 ‘춘추’(春秋)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서는 자국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치적을 미화하고 왜곡까지 자행했다. 이러한 혼란을 바로잡고자 새로 쓴 사서가 바로 공자의 ‘춘추’다. 이 책이 뒷날 사서의 전범이 된 것은 객관적 사실을 비판적으로 기술하려 했던 ‘필법’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대안 역사교과서’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여느 역사서와 달리 동학농민운동을 ‘복고적 개혁’으로 기술하고 ‘명성황후’를 ‘민황후’로 고쳐불러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클리오(Clio:역사의 신)’가 따로 없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역사 해석은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정파적 이해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 생명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최한기는 “한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면 한나라의 조정에 서 있는 듯”[讀漢史則如身立漢帝之廷] 역사를 쓰라고 했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역사 집필자들은 과연 ‘명성황후 시해나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에서 근대사를 바라보았는가.
출처:경향신문 글 조운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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