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밥주걱만 푸던 아줌마가 바람이 났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났다.
다음 주에 설악산에 간댄다.
이 아줌마가 설악산을 첨 가는 건 물론 아니다.
애들 어려서 5살 8살 때, 대승령에서 올라 12선녀탕을 지나 남교리로 내려간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벌써 20여 년 전의 일 아닌가.
그렇게 치면 30여 년 전, 신혼여행도 우리는 청바지 입고 설악산으로 가서 울산바위 주변을 헤매다니긴 했다.
호랭이 담뱃불 찾던 시절에.
암튼 바람이 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디서 불어온 바람일까.
중부지부 산행도 더 이상 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도 이제 그나마 근근히 해 오던 중거리 산행마저 귀찮아지려는 타임에.
혹시, 한 가정내 산행 총량의 법칙?
설악산 산행을 1주일 남겨둔 시점.
아내의 무사안전 산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리허설을 했다.
설악의 험준한 바위와 가파른 경사를 염두에 두고
거리와 소모열량 등을 계산하여 가장 근접하는 '갈월부자천' 종주를 선택하였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두건님이 개척한 길이니 을매나 믓찌것나, 싶기도 하고. ^^
원래 두건님은 '갈영부자천'이라 하였던 것을
그냥 이 길에 있는 굵직한 산이름 앞글자를 따서 그리 고쳐불렀다.
영국사 전방 500m 지점에서 옥새봉(갈림길에서 750m)으로 오르느라 영국사엔 안 갔으니까.
일시: 9월 25일(일) 07:20~18:20 (휴식: 대략 2시간 - 이 가운데 절반은 아내를 잠깐씩 기다려주는 시간이었다.)
코스: 충남 금산군과 충북 영동군에 걸쳐 있는
갈기산 주차장 - 갈기산 - (말갈기능선-차갑고개) - 성인봉 - 자사봉 - 안자봉 - 월영봉 - 월영산 (-월영산출렁다리-)
- 부엉산 - 자지산(왕복) - 천태산 - 옥새봉 - 수양봉 - 수양교 - 갈기산 주차장
거리: 대략 25km 내외.
(도중에 예기치 않게 전화기 전원이 나가버렸으므로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다. 보조배터리, 무거워서 빼놨더니. ㅋ)
사진의 중앙에 있는 산이 천태산. 뒤로 보이는 산이 투구봉.
오후에 천태산 왼쪽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금강의 상류 지류.
강을 끼고 있는 산들이 대개 그러하듯 경사가 매우 심하고 돌이나 바위가 많다.
아주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줄기가 서봉과 남덕유, 가운데 멀리 머리만 내민 것이 덕유산 향적봉.
속리산으로부터 여기까지의 산줄기와
덕유산에서 오는 산줄기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갈기산. 장관이다.
왼쪽 뒤가 천태산. 가운데 산줄기가 이 산행의 대미를 장식할 옥새봉과 수양봉 줄기.
왼쪽 멀리 아주 조금 보이는 것이 속리산 구병산, 오른쪽이 속리산 상모봉-상학봉-묘봉-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 줄기.
아내가 갈기산 오르막에서 잠시 쉬고 있다.
왼쪽 멀리 보이는 산이 속리산 주능선. 그리고 이어지는 백두대간.
잠시 후에 걷게 될 성인봉 줄기
갈기산 정상을 지나 말갈기 능선으로 접어든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부분도 있어서 바람이 심할 때는 위험하겠다.
막 지나온 갈기산.
말갈기 능선에서 속리산 방면을 바라보며.
이때 아내는 날카로운 능선을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멋지지 않습니까?
저 뒤로 흘러가는 백두대간길.
속리산 방면에 내 시선이 계속 머문다. '공림사환종주'를 하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와 나를 감싼다.
생각보다 잘 걷는다.
여기 산들은 거의 다 아래로 쳐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바위산들이 대개 이러하긴 하지만 체력이 많이 필요한 코스다.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구간이 없다.
아직은 쌩쌩한 걸음이다.
이게 말갈기능선.
성인봉을 까칠하게 오르는 중이었다.
원근에 따른 명도의 차이에 잠시 황홀하다.
바위와 그 바위에서 잘라져나간 돌덩이들과
그 돌덩이들에서 부서진 돌멩이들로 걸음이 팍팍해진다.
나는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가.
방금 전에 넘어온 봉우리를 돌아보면 아찔하면서도 뿌듯해진다. ㅋ
2차원 평면에서 살다가
산에 오면 3차원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왼쪽이 갈기산, 오른쪽 봉우리가 성인봉.
월영산에 발을 대 보려고. ^^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대둔산 줄기. 천태산에서 저기까지 대략 70km.
월영봉이 있고, 이어 월영산이 있다. 월영봉에는 삼각점이 정상석을 대신한다. 월영산에는 정상석이 있다.
월영산 내려가면서 보이는 출렁다리.
저멀리 이쁘장하게 보이는 산이 서대산. 천태산에서 북서쪽으로 대략 25km 거리에 있다.
월영산 출렁다리.
뒤에 보이는 산이 잠시 후에 오를 부엉산. 쉽지 않은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월영산 출렁다리에서 올려다 본 월영산. 여기서 오르는 건 사양하고 싶다. 매우 가파르고 재미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따라 여러 산악회에서들 오셔서
우리는 내려오는 좁은 길에서 아주 곤혹스러웠고,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었다.
사람들의 행렬은 이후 자지산까지 이어진다. 인파를 뚫고 진행하는 일이 암릉보다 힘들다.
힘들어도 억지로 웃어보이는 티가 난다. 이 다리 건너가서 점심 먹자고.
이름도 고약스런 자지산.
한자로는 紫芝山이라 쓴다. 영지와 유사한 의미다.
인파 속을 뚫고 가다 들으니, 이름 때문에 많이들 찾는다나 뭐라나. ㅋ
부엉산에서 천태산 가는 길에 다녀와야 하는 산이어서 사실은 나 혼자 후딱 뛰어갔다 오려고 했는데...
작은 봉우리에 있는 갈림길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드만...
돌아나오는데 아내가 어느새 가파른 오르막을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흐마, 이 아줌마가 으쩌려고.
반갑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중간에 탈출로도 읍자너.
천태산에서 건너다 보니 오전에 걸었던 갈기산-성인봉-월영산 줄기가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서대산이 멀지 않게 보인다.
저길 가려면 신음산-투구봉-대성산-매봉산-장령산-제비봉을 거친다. 겨울철에 한번 걸어보고 싶다.
천태산 오르는 길에서 아득히 대둔산이 보이고, 희미하지만 계룡산도 보일듯말듯하다.
천태산에서 바라보는 속리산 방면의 줄기.
천태산에서 건너다 보는 갈기산. 저길 초반에 오른 게 다행이다. 지친 상태에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울 산이다.
정말 힘들게 오른 천태산.
올라보니 올라온 길은 아무래도 비탐구역이었던 것 같다. 여기 오니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A등산로를 따라 다소 가파르게 내려온다.
영국사에 거의 다 내려와야 옥새봉 가는 길이 나온다. 옥새봉에서 수양봉을 거쳐 내려가면 수양교로 내려선다.
전화기 전원이 나간 지 오래다.
아내의 전화기에 깔려있는 램블러 지도를 통해 등고선을 보면서 이동한다. 지도만 있으면 별 어려움은 없다.
첫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친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설악산 다녀올 능력이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판단된다. ^^ 등산화나 하나 골라줘야겠다.
첫댓글 또다른 행복 찾아 나서는길 응원 보기 좋습니다 완주의 열매를 맛 보시길 응원합니다
지부장님, 꼭 뵙고 싶었는데...
응원 감사드리고요, 집사람에게 지부장님의 응원 대신 전해주겠습니다. 늘 무위장려하소서.
아참, 그리고 대구쪽으로 몇 번 갈 것 같습니다.
@팔개 대구 오시면 방장님하고 같이 한번 보입시더010-3529-2575. 나학택
팔개 대장님 얼굴 본지가 가물 갈물 하네요.
산행기 속에 옛추억이 떠오르네요.
20살때 친구들 하고 쓔래빠 끓고 치악산 오르던 기억들~~
ㅎㅎ 아줌마 걸음 걸이가 많이 녹쓸어 있네요.
언제나 즐산요~~
인저 대장 아니어유. 뭇생겼다구 짤린 실직자유.
그래, 뒷산 언저리서 도토리나 주우러 어슬렁거리는 처집니다.
아줌마에게 녹이 슬 구석이라도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것지만
가끔 짤다란 길 같이 걸어보려고요. ^^
응원, 감사혀구요,
도깨비님도 행복한 걸음 이어가셔유~~
아주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안전산행이어가시고요
화이팅 응원합니다
맥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응원 감사하고요. ^^
이번 설악단풍이 10일빠른듯합니다
대청봉쪽은 이번주말부터
중청대피소 몇시에도착하시는지오
컵라면이라도
대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맥님을 뵐 수 있다면 제가 영광입니다.
2일(일) 03시 오색 출발인데 집사람 걸음으로 4시간은 걸릴듯해요.
공주 지역에서 산 다니는 사람 죄다 모아서 가는 바람에 일행이 40여 명이나 돼요. 그러니 호의는 이미 받은 걸로 하면 어떨까요. ^^
즐거운 산행기 잘보았습니다 ^^
설악. 잘 다녀 오시고 ~
팔개대장님 화이팅 ~^^
누님도 참. ㅋ
언제나 다정하게 저를 안아주심에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언제나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기회 되면 산행 한번 추진해 봅시다. ^^
부부가 함께 하는 산행은 멋 !!! 입니다
반갑고 감사해요.
유나님과 함께 걸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런 기회가 또 오겠죠?
항상 안전하면서도 멋지신 걸음, 축원합니다.
두분 산행하는모습 보기좋네요 자주 함산하세요~~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진작 이렇게 할껄,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ㅋ
대간길 이제 졸업식만 남으셨네요.
사당지맥은 대간 후에도 건재할 듯하지만요.
정말 수고 많으시고요, 멀리서 존경을 담아 절 올립니다.
^^ 사모님 중부지부 들어오실 듯...
산 엄청 잘 타실 듯한 외모~이신데...
좋으셨겠어요.
두분이서 산에서의 맑은 시간~
아~ 후기 보니 저도 산에서 바람나고 싶어지네요.
반가움 댓글로 전해봅니다.
반가워요~~.
겨울이 다가오면 서해안 엄청 추울텐데 좀 쉬는 기간도 있으시려나.
그동안 깽이님 후기로 공부 많이 했는데...
제 처의 주특기는 지원인 거 같아요. ^^
오~ 팔개대장님
사모님이랑 멋지게 다녀오셨네요~
갈영부자천의 영은 영국사가 아니라 월영산의 영자입니다~ㅎㅎ
어감이 더 좋아서 ~~
천성장마가 대성산의 성자를 쓰는것 처럼요~
이쪽은 금강을 끼고 있어서
운해가 자주 끼는곳인데
날좋은 가을날 한번더 오셔서
맛좋은 도리뱅뱅이도 드시고 가셔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길 걸으며 아내와 나눈 대화 가운데 두건님 자랑이 상당량을 차지했습니다. 아무리 자랑해도 두건님의 멋을 표현할 길이 없지만요. ^^
(첨언) 길을 만드신 분이 붙인 이름을 제 멋대로 고쳐쓴 무례를 탓하지 않으시고
친절히 일러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갈영'이 '갈월'보다 어감이 좋다 하시는 데에 별 이의는 없습니다만,
'葛月'은 예로부터 그림이나 시에서, 그리고 여러 지역의 지명에서 종종 써 온 말이고
그 나름의 운치도 있어서 버리기는 아까운 이름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대청봉이 눈앞이겠네요
혼자 간다고 구박 받으면서 산행을 다니는데 .....
멋진 시간 이겠네요 즐산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까지 마음써주시니...
오늘 공룡능선 재밌게 걸었습니다.
산 안 다니던 아줌마가 일을 내기 시작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