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전문가들 "한약사 일반약 판매는 약사법 위반"복지부의 모호한 입장과 달리 법률전문가들은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약사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앤팜법률사무소 박정일 변호사는 "한방원리에 의하지 않은 의약품, 즉 양약성분이 포함돼 있는 의약품은 비록 한약성분이 혼합돼 있다고 하더라도 한약제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약사법에서 한약제제 전체가 일반약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약사가 처방없이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에 해당한다는 의미일 뿐 한약사가 한약제제가 아닌 일반약까지 포함해 판매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박 변호사는 "한방분업이 실시되지 않아 한약사의 고유 업무인 한방조제 업무가 유명무실화돼 있는 현행 약사법은 한약사의 양성 과정에 비춰 볼 때 한약사가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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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로 인해 직능 갈등이 촉발될 것을 우려하는 모양새이다.(사진은 지난 1993년 한약분쟁 당시 과천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약사들의 모습.) |
가산종합법률사무소 정순철 변호사 역시 한약제제 여부는 구성성분이 한약으로 돼 있는지 여부,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해 제조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며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약제제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한약에 포함될 수 없는 다른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은 한약제제로 볼 수 없다"며 "한약제제와 양약성분의 결합 과정에서도 한방원리가 적용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약사 일반약 판매, 약사-한약사-한의사 갈등 폭발 뇌관법률전문가들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수 년째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논란을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외면하고 있는 것에는 관련 문제가 한약사와 약사, 한의사 간의 상당한 갈등을 폭발시킬 여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섣불리 건드릴 경우 한약사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또 다시 제기되면서 자칫 지난 90년대 한약분쟁에 버금가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약사의 면허범위를 규명하기 위해 의약품을 한약제제와 양약제제로 구분하는 것은 분류 자체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 모든 일반약을 취급할 수 있는 약사의 업무 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비춰져 대한약사회 등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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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약청이 한약 용어 재정립 회의를 통해 제시한 안 |
더욱이 한방 복합과립제의 보험급여화를 비롯해 최근 한의계가 정부에 한방 의료기관에 처방할 수 있는 한약제제의 개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사회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할 한약제제 분류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중순까지 이어진 식약청의 한약 용어 재정립 논의 과정에서도 약사회는 현재 한약제제를 한의약품(혹은 한방의약품)이라는 용어로 정리하자는 식약청의 제안에 새로운 한약분쟁을 야기하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약사회 내에서는 식약청이 한의계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현행 전문약과 일반약으로 구분된 의약품 분류체계 이외의 분류를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약사회 김남주 한약정책이사는 "현재 한약제제는 일반약으로 분류돼 있어 약국에서 의사의 처방없이 판매할 수 있으나 새로운 한약의 개념에 한약제제가 포함될 경우 약사의 업무 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약사 일반약 판매, 통합약사로 해결"…한의협 "통합 불가"약사제도일원화가 추진된다면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논란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한의계의 반발을 우려해 선뜻 손을 들어주기 힘들 실정이다.
한약사 수가 부족하다는 점이 한방분업을 가로막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서 통합약사 추진은 당장 관련 업무를 수행할 인원을 대폭 늘려 한방분업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한 한의계는 통합약사에 대해 한약분쟁 당시의 합의사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수 차례에 걸쳐 통합약사 추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한의협 장동민 홍보이사는 "한약분쟁 과정에서 태동한 한약사는 약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통합약사는 사회적 합의 없이 간단히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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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규 한약사회 부회장 |
장 이사는 "통합약사에 대한 한의계의 반대를 한방분업에 대한 우려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통합약사는 이해단체와 관련 부처가 국민건강과 의료질서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한약사회는 현재 불거지고 있는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논란 자체가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범위가 중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약사법 자체가 통합약사를 염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약사회 이재규 상근 부회장은 "한약사회도 현행 의약품 분류를 다시 한약제제와 양약제제로 구분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논란을 가장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약사제도 일원화"라고 못박았다.
약사회, 한약사 일반약 판매 언급 기피…"통합약사 현실화 쉽지않다"한약사의 일반약 판매에 대해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약사회도 복지부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약사회 먼저 나서 공론화를 시도할 경우 논의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약사 사회 내부의 반발이나 한의계와의 대립을 협회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통합약사로 정리하는 방안은 약사가 한약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약사회의 입장이다.
약사회 내에서 일부 약사들이 한약사회와 연계해 공공연하게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공론화시키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반응까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약대 정원 증원 및 신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회원들의 불만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사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통합약사 카드를 꺼내들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약사회 내에서조차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논란을 통합약사 추진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약사회 김남주 한약정책이사는 "정책적으로 한약사를 통합약사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도 "이를 약사회가 먼저 나서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회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따지면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는 약사법 위반이 명백하다"며 "굳이 현재 시점에서 약사회가 나서 이를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한약사 일반약 판매 '골치 아픈 일'?…복지부 부서간 핑퐁결과적으로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파생될 상당한 진통을 우려해 관련 부처나 단체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는 복지부의 자세는 오히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언급하는 쪽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는 눈총을 받는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복지부 내 관련 부서인 의약품정책과와 한의약정책과도 책임 소재를 언급하며 상대부서에 문제를 떠넘기는 듯한 뉘앙스만을 풍기고 있다.
실제로 약사법을 관장하는 의약품정책과는 한약사 일반 판매 처분 가능 여부 질의를 지속적으로 한의약정책과로 이첩하고 있지만 정작 한의약정책과는 의약품정책과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약사법에 한약사가 규정돼 있지만 한약 정책을 다루는 한의약정책과가 있지 않느냐"며 "한약사 문제를 의약품정책과에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말했다.
반면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참고 의견 정도는 제시할 수 있지만 약사법을 관장하는 것은 의약품정책과"라며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문제는) 의약품정책과가 궁극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상반된 입장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