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성인 축구대표팀감독 경질이 초유의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이번 문제의 본질은 결국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 일인 독제 체제가 여전히 살아있는 축협 내부의 파행과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축구기자들의 문제, 그리고 방송계에 만연한 스포츠 상업주의가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1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조광래 감독 해임,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문제로 인해 한국 축구 행정이 감시받지 않는 상태로 무너지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희준 동아대 교수, 김강남 서울유나이티드 FC 감독,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김완 <미디어스> 기자가 참석했다.
이와 관련, 조광래 감독 해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해임 절차가 전혀 적법하지 않았던 데다 이른바 '스폰서 외압' 논란이 축협을 통해 공식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간 뉴스를 종합하면 조광래 감독의 해임 소식은 지난 7일 밤 KBS <스포츠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바로 다음 날 감독 인선 권한을 가진 기술위원회의 황보관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인정했는데, 조 감독의 인선 기준은 '회장단 회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술위는 꾸려지지 조차 않았다고 말했다. 적법한 절차가 완전히 무시되고 회장단의 뜻에 의해 감독 경질이 결정됐다는 얘기다.
황보 위원장은 또 방송사, 후원사의 압력 여부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계셨다. 그런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스폰서가 축구 감독 인선에 개입한, 한국 스포츠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7일 축구대표팀 감독 경질 통보를 받은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9일 오후 서울 역삼동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조 감독의 '만화 축구'가 옳았느냐 나빴느냐는 경질 과정의 불투명함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조 감독은 대표적인 '반 조중연파' 인사로 분류됐다.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은 정몽준 명예회장 인맥이다. ⓒ뉴시스
언론은 뭐하고 있나
그런데 조 감독 경질 이후 언론 보도를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떠오른다. 이런 초유의 일을 두고, 어느 언론도 스폰서의 정체를 캐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조 감독이 왜 해임돼야 했는지를 전술적으로 분석한 언론도 없었다. 조 감독 해임이 정당했다면 그의 어떤 전술이 문제가 있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문에 경쟁력이 있는 감독이 와야 하는지, 즉 '축구 전술 혹은 축구 인사'적인 본질적인 이야기가 전혀 거론되지 않는 이상한 일이 이어지는 셈이다.
김완 기자는 "당연히 후원사의 압력에 대한 후속취재가 병행돼야 함에도,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도 스폰서 관련 후속취재는 어느 언론사에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기자는 "축협이 전횡을 이어가는 중요한 배경은 '언론이 우리 편'이라는 점"이라며 "한국 언론 특유의 출입처 문화가 낳은 폐해가 특히 축구에서는 굉장히 심각하다. 오죽하면 '정몽준 장학생'이라는 얘기까지 나오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골적으로 말해 우리나라 축구 기사는 크게 스타 따라잡기와 스포츠 라이벌 관계에 대한 보도가 전부"라며 "하마평에 오르는 감독들의 전술적 특성은 무엇이고, 그가 선임될 경우 조 감독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극복 가능하다는 건지 전혀 비평되지 않는다. 축구 저널리즘이 굉장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다른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한 저널리스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K리그와 대표팀을 주로 취재하는 일간지 축구기자들 중 '저널리스트'라 부를만한 이는 거의 없다"며 "축구협회를 비토하는 순간 취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다, (축협의) 출입기자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지원이 축구 저널리즘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희준 교수도 "축협 출입 기자들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건 이미 과거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라며 "축협이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바깥에서 변화시켜야 하는데, 기자들이 이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승부조작 사건이 났을 때도 57명 영구제명만으로 문제를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방송사 상업주의가 스포츠 망친다
이와 관련, 이번 감독 인사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곳은 방송사라는 게 축구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김 기자는 "스폰서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축구기자들을 접촉한 결과, 다수 기자들이 (그 스폰서가) 방송사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방송사, 엄밀히 말해 공중파 3사가 국가대표 축구 중계에 목을 건 사실은 과거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된다. 지난 2010년 월드컵 중계 당시 방송 3사의 공동중계 카르텔이었던 '코리아 풀'을 SBS가 깨트리자, KBS는 장기간에 걸쳐 SBS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김 기자는 "당시 KBS에서 여러 기자들이 SBS 사주의 비리를 캐기 위해 이곳저곳을 훑고 다녔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축구 중계가 중요한 까닭은 당연히 돈이다. 현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방송광고요금은 15초 기준으로 6138만 원까지 치솟았다. 2006 독일월드컵 당시 방송 3사가 결과적으로 적자를 봤음에도 전체 방송시간의 70% 가까운 비율을 월드컵 콘텐츠로 도배한 까닭이다.
자존심 싸움도 걸려 있다. '영원한 3등'으로 여겨지던 SBS가 거액의 계약을 통해 차기 월드컵 중계권을 사들이자, 두 차례 연속 월드컵 생중계를 못하게 된 KBS, MBC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기자는 "방송 3사 사장이 모두취임 일성으로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하겠다는 주장을 했다"며 "방송 3사에 월드컵 중계는 사활을 건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김인규 KBS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SBS의 단독 중계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KBS맨이 아니"라고 했으며 김재철 MBC 사장도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 당시 "내가 중계권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월드컵 중계권이 단순히 방송사 간 자존심 싸움을 넘어, 내부 역학관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추론 가능한 대목이다. 이는 나아가,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중계권을 가진 SBS 등 국내 방송사의 이익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방증한다.
경기 중계와 관련 뉴스 보도를 해야 할 방송사가 축구협회 행정에 강력한 입김을 불어넣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 9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대한민국과 레바논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시작 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대표팀 주장 박주영 선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 명예회장 취임 이후 축구협회가 이른바 '현대가 라인'과 '고대 인맥'에 의존해 왔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뉴시스
축협 개혁 가능할까
이처럼 언론의 감시기능이 약화되고, 외부자의 입김까지 강화됨에 따라 축협 행정은 파행으로 치달았다고 토론자들은 분석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정몽준 명예회장(한나라당 의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토론자들은 지적했다. 그에 따라 축구가 사실상 정치적 거래물로 전락해버렸다는 얘기다.
김강남 감독은 "조 감독 해임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일부 사람에 의해 결정됐다"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검토하지 않고 말 잘 들을 인사들로 후임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축협 차기 회장 선거가 이슈화되면서 '선거를 통해 바꾸자'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특정 인맥으로 채워진 축협 선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많다. 외부의 감시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정희준 교수는 "A매치가 항상 서울에서만 열리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 명예회장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접대용으로 대표축구가 활용되기 때문"이라며 "지난 2004년 정몽준 당시 축협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고 2005년에도 두 차례 토론회가 열렸는데, 당시 거론된 문제가 지금도 하나도 개선도지 않았다. 1000억 원의 운영자금을 가진 축협이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동호 평론가는 "현실적으로 축협 개혁에서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게 외부개혁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스포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며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금메달 많이 땄는데 이번 국감은 쉬게 해주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왔다. 국가재정이 늘어난 만큼 국감도 더 치열하게 해야 하지만 현실적 인식 수준이 이렇다"고 개탄했다.
최 평론가는 "스포츠는 교육, 산업적으로도 아주 중요하다"며 "축구가 가진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스포츠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댓글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자, 부모덕에 지 잘난 줄 아는 팔푼이, 20억원으로 정치 노선을 바꾼 자, 이런 자들이 설치니까 그 모양 그 꼴이지... 언제 이런 인간들을 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