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에 장가가서 스물다섯에 띠동갑 아들을 두었고 시방까지 살아오다보니 내 나이가 예순여덜? 그런 내가 이제와서 눈치를 생각하고 눈치가 무엇인지 검색을 해야 한다는겨? 이전에는, 절머서는, 누구가 머시라 하거나 말거나 내 마음에 합한데로 시방까지 살아 왔는데 이제와서 마누라의 행동거지를 살피며 마누라의 말투를 살피며 마누라의 눈빛을 살피며 마누라의 걸음 걸이까지 살피며 사라가고 이따는걸 알게된건? 이게 합리적이고 합당 한 것인가?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의 의지적 놀이와 감성적 베려와 철학적 깨달음? 차므로 알 수 없는 나의 속내를 내가 디다보아도 아리송송한데 마누라도 내와 가튼 생각으로 고희를 맞이하고 보내쓰까?
불편하다... 마누라의 눈치가 보인다는 그 자체가... 왜 이러까? 머시 어쩐다고 이런 현상이 내게 당도하는 거실까? 가끔은 마누라로부터 다라나는 거시나 도망치는 것을 생각 하게 되는 때도 이써찌만 지금 이런 눈치보기를 헤아리며 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째꺼나 그건 그런 거시라고 치부해 두고 이건 어떠까? 이 저네도 마음에 스치우고 머물기도 하면서 나로 곤고하게 한 적도 이써찌만 마누라로부터 다라나는 것을 집중적으로 생각해 볼 이유가 생겨난 것일까?
부부라는거... 절머서는 뜨거운 피와 살을 섞으며 노니는 그 맛으로 함께 살아 냈는데 시방은? 뜨겁게 용솟음치는 피의 요동침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가끔 생각이 날때는 살을 섞고 시픈 정욕으로 인하여 곤고함이 더하고 더해지나 모든 것을 싸그리 피하고픈 마음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에 순응이나 순종으로 나아가면 어쩌까?
싫다는데... 싫다는 마눌을 끄러앙꼬 실랑이를 하고나면 짜증은 더해만 가는데 이를 피할수 있는 방법이나 방편은 무엇일까? 그 어떤 아낙도 적당히 늘근 내게 몸을 내어주며 기뻐 하기를 바라는 아낙은 없을 터인데 이눔의 육체는 수시로 간절해 지는 것을 자위로 달래야 한다는건???? 이게 머야? 이게 사는 거신가? 싶을때는....확실히 아무런 생각이 없이 다라나고 싶은것도 사실이고 현실인데 그런 내가 또 다른 것에 이끌리어 "눈치" 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쓰니...ㅜㅠㅠ
눈을 들어 하늘보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를 지으신 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거 아니면 내게 무엇이 이쓰리요? 그러메도 주 하나님이 간여 하시는 것은 내 영이 주 앞에 서는 것 그것 말고는 내 피에 속하고 육신에 속한 일들은 내게 맞기셨기에 간여하지 아니하신다고 믿어지는 내 육체의 놀이... 세상과 나는 간곳이 없노라는 것은 무엇으로 변명을 할까?
어두운 밤 쉬 되리니 너의 삶을 다하여 더 늙고 늘거서 다윗이 이불을 덮어도 그 몸이 따스해 지지 아니하는 그 때가 임하기 저네 너는 너의 삶을 엔조이하여 뜨겁게 즐기거라. 사랑이다 그거시 사랑이요 은혜이며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님의 사역임을 알거든 너는 주 안에서 자유함으로 평안하라. 마음의 근심 근심을 겸한 염려 곧 오실 이를 기다리는 그 "아기다리고기다리" 는 여전한데 확실하고 분명한 그 때가 임하는 이 시대적 흐름에 내어 맞기지 아니하고 종말을 생각하며 남은 날들 속에서 시한부를 생각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는 종말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졌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믿을찐데 어찌하야 정녕 어쩌자고 허둥데는고?... 믿음이 있노라 하는 내는 곧 오실 이가 오시리니 그 날과 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할 찌라도 그 때를 알기에 "시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