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가을 속으로
십일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금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하기주 소설 ‘목숨’ 3권을 펼쳐 읽었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마산을 근거로 살았던 양반가 강씨 집안 제례와 자손을 잇기 위해 애쓴 행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군국주의가 정점으로 치달은 대동아전쟁 말기 일본의 포악한 잔학성이 여실히 그려지고 학도병으로 만주로 끌려간 조선 청년들의 비분강개와 고뇌가 실감 났다.
날이 밝아와 지기들에게 아침 시조를 보내려니 어제 산행을 다녀와 남긴 ‘단풍철 단풍마’는 후일 보내기로 하고 앞서 창작된 ‘우곡사 약수터’를 보냈다. 이 작품은 지난여름 용추계곡으로 들어 우곡사를 찾아 받아 마신 약수의 청량함이다. ‘단풍마’를 미루고 ‘약수터’를 보냄에는 아침에 나설 걸음과 관련이 있어서다. 오늘도 용추계곡으로 들어 우곡사를 들리면 또 작품을 남길 듯했다.
아침 식후 산책을 겸한 산행을 나섰다. 간밤에 살짝 내렸던 비는 그쳐가고 날이 개는 즈음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상류로 올라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사림동의 느티나무 가로수는 자주색으로 물든 단풍이 낙엽이 져 보도에 깔려 있기도 했다. 창원천 냇바닥에는 이삭이 팬 물억새는 빛이 바래 은빛으로 바뀌었다. 무성했던 고마리는 꽃이 저무는 때였다.
도청 뒷길을 걸으니 시야에 들어온 날개봉과 정병산 활엽수림은 엷은 갈색으로 단풍이 물드는 기색이었다. 역세권 상가에서 창원중앙역으로 올라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향했다. 비가 그쳐가는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산행을 나선 이들은 아무도 없어 등산로가 호젓했다. 아카시는 진작 나목이 되었고 종이 다양한 활엽수는 단풍이 물들어 낙엽은 가랑잎이 되어 흩어졌다.
용추5교와 출렁다리를 지난 산허리 숲속 나들이 길 이정표에서 진례산성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갔다. 우곡사 갈림길 쉼터에서 고구마를 꺼내 먹으면서 늦가을 정취가 물씬한 용추계곡 풍경 사진을 지기들에게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쉼터에서 일어나 가파른 비탈을 따라 용추추고개로 오르다가 꽃향유가 저문 흔적을 만났다. 응달을 좋아하는 꽃향유는 숲 그늘에서 사그라졌다.
고갯마루로 오르면서 등산로에 깔린 떡갈나무와 신갈나무의 잎이 넓은 가랑잎을 디뎌가며 지났다. 용추고개에서 북향 비탈로 내려서니 중년 부부 두 쌍이 올라왔는데 산에 들어 처음으로 만난 이들이었다. 우곡사 가는 산비탈은 소사나무가 군락으로 자라는데 단풍이 물드는 순서로 낙엽이 졌다. 우곡사 주차장 약수터는 차를 몰아와 샘물을 받는 이들이 커다란 물통에다 채워 담았다.
주차장에서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 언덕에 자라는 고목 은행나무를 살펴봤다. 우리 지역에는 된서리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은행잎은 샛노랗게 물들지는 않았다. 예년 같으면 입동이 지나 우곡사를 찾으면 은행나무는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 일부는 지상에 낙엽이 쌓이기도 했는데 올해는 철이 늦은 편이었다. 돌층계 틈에 자라 노란 꽃을 피운 산국 무더기에서는 진한 향기가 번졌다.
법당 뜰에 오르니 화분에 키운 황국이 그득하게 펼쳐져 가을이 이슥함이 느껴졌다. 문이 닫힌 법당에서는 목탁 소리와 함께 비구의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뜰에 선 채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법당 축대 밑으로 다가가 약수터 샘물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뒤돌아서니 건너편은 진례산성이 진례 시례 노티재로 가는 산등선으로 낙엽활엽수림은 단풍빛은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절집을 나와 갯버들이 둘러쳐 자라는 저수지 둘레길을 걷다 쉼터에서 아까 그루터기 주변에서 서성였던 은행나무로 시조를 남겼다, “무염이 세웠다는 창건기 전해오나 / 이끼 낀 석탑이나 알려진 전각 없어 / 원근에 불심 두터운 신도들만 찾았다 // 수령을 가늠 못할 고사목 은행나무 / 밑둥치 다시 움터 솟구쳐 높이 자라 / 입동이 지나고 나면 샛노랗게 물든다” ‘우곡사 은행나무’ 23.11.10
첫댓글 우곡사 은행나무 단풍이 성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