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안익태부인 애국가 저작권 기증
아무런 조건없이 2005년 우리 정부에 기증했다.
본 애국가 곡은 안익태 선생이 미국에서 음악활동 하다가 애국가를 남의 나라 민요곡으로(올드렝사인곡)불러 안타까워 195년에 작곡했다.
1936년 구라파로 건너와서 1937년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표를 하였다.
1945년8.15. 광복으로 미군정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국가로 채택하여 정식 우리나라 애국가로 자리잡있다.
[리 이종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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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돌로레스 탈라베라(로리타 안) 여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1906∼1965년) 선생의 부인 마리아 돌로레스 탈라베라(로리타 안) 여사가 16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4세.
스페인 출신인 고인은 1946년 마요르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부임한 안익태 선생과 결혼했으며, 1965년 선생이 59세를 일기로 작고한 뒤에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휴양지 마요르카에서 외손자와 함께 지내온 고인은 생전 한국사랑이 각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인 한국-스페인전을 앞두고는 “나는 한국사람이고 스페인전에서 한국팀이 (스페인팀에)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팀이 한 경기 한 경기 이길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
남편의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지난 2005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당시까지 논란을 빚고 있던 ‘애국가’의 저작권을 한국 정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당시 한국을 찾은 고인은 “애국가는 한국인의 것”이라면서 애국가의 저작권을 조건없이 무상으로 한국 국민에게 양도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남편의 업적을 길이길이 추모하려는 고인의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6년에는 안익태 선생이 생전에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편지를 포함한 유품 15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안 선생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안익태기념재단을 통해 피아노 1대와 가구들을 비롯해 지휘봉과 볼펜, 시계, 다이어리, 훈장 등 남편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을 흔쾌히 고국의 후손들을 위해 전달한 것.
당시 셋째딸과 함께 방한한 고인은 “남편이 그랬듯 우리도 늘 한국을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안익태 선생은 1946년 마요르카 섬에 정착해 로리타 여사와 결혼한 뒤 스페인으로 국적을 바꿔 유럽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아나 세실리아, 엘레나, 레오노르 등 세 딸이 있다.
애국가 1~4절의 음악파일과 영상파일은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서
감상·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애국가를 들으며 애국심을 키우는 건 어떨까요?
애국가(합창)-제1절
애국가 (어린이 목소리) 제1절
안익태(安益泰, 1906년 12월 5일 평양 ~ 1965년 9월 16일 바르셀로나)는
한국의 작곡가, 지휘자이다. 대한민국의 국가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한국환상곡이 있다.
일생
안익태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보통학교와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친일 교사 추방 운동을 벌이다 무기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1921년에 일본으로 유학, 세소쿠가쿠엔 고등학교에 음악특기자로 입학하였다.
1926년에는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전공했고,
1930년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했다.
신시내티 음악원과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첼로와 지휘 등을 배웠고 한인 교회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6년에 처음 유럽을 방문했고, 이 때 파울 힌데미트와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를 만나 음악 활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1937년에 템플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한 뒤 1938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방송 교향악단을 객원지휘했다. 이후 헝가리에 머물면서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졸탄 코다이와 에르뇌 도흐나니 등에게 작곡을 배웠고, 종전 직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에스파냐 등지에서 지휘 활동을 했다.
전황이 악화되자 1944년 4월에 파리에서 베토벤 축제 연주회를 마친 직후 에스파냐로 피난했으며, 그 해 12월에는 그의 대표작인 한국 환상곡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필 악보를 완성했다. 1946년에는 에스파냐 여성 롤리타 탈라베라와 결혼했고,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스위스,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서 지휘했고, 1955년 3월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1962-64년까지 3년간 서울에서 국제음악제를 주관했고, 런던 교향악단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했다.
1965년 7월 4일에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 직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9월 16일에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타계했다.
애국가와 표절 의혹
안익태의 작품 중 '애국가' 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식 국가로 쓰이고 있지만, 그
작곡 연도와 장소에 대한 이견이 많다.
1964년 제 3회 서울 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 지휘자 페터 니콜로프는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O! Dobrujanski Krai)' 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안익태의 활동에 대해 독재적이라고 비판하던 국내 음악계의 질시와 맞물려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음악학자 허영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국가는 안익태가 유럽을 방문하기 전인 1935년 11월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작곡되었다고 하고 있어서
1936년에 베를린에서 작곡되었다는 설이 수정되기도 했다.
허영한의 연구가 표절이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는 아니지만,
그 동안의 유럽 작곡설을 뒤집었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신빙성이
강화되었다는 주장이 많다.
애국가 외에도 '강천성악' 에 나오는 선율이 일본의 궁중 음악인 '에텐라쿠' 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최근에 안익태의 유럽 체류 시절 연구에서 발견된 작품인 환상곡 '에텐라쿠' 가 원본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안익태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안익태는 1930년대 후반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밝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1942년경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시기의 안익태 공연 프로그램에 '슈트라우스의 제자' 라는 내용이 실리기 시작했고,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작품인 '일본 축전 음악' 을 지휘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작성해준 추천장이 남아 있다.
안익태는 2차대전 종전 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며, 일본의 옹가쿠노토모샤(음악지우사)에서 슈트라우스의 전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1940년대 활동에 대한 의혹과 문제 제기
안익태의 1940년대 유럽 활동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경래와 롤리타 탈라베라의 전기에 기록된 자료로 전해져 왔으나, 최근에 진행된 연구들에서 이들 자료의 오류와 왜곡 사례를 지적하고 있어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유럽 체류 시절 안익태가 관변 단체였던 '일본-독일 협회' 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일본의 가가쿠를 주제로 한 '에텐라쿠' 와 만주국 건국 기념 음악인 '만주국 축전곡' 등을 작곡했다는 기록도 발표되었다.
2000년에는 음악잡지 '객석' 의 베를린 통신원이었던 진화영이 안익태의 베를린 필 지휘 기록이 종전의 1940년이 아닌 1943년이며, 단 한 차례 뿐이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같은 해 발굴되었다는 안익태의 지휘 모습이 담긴 기록 영화는 2006년에 독일 유학중인 음악학도 송병욱에 의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실황 녹화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내 음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6년 11월 19일에 송병욱의 강연회를 통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기록 영화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되었으며,
2007년에는 음악학자 이경분이 독일과 스위스 등지의 문서 보관소 등에서 찾아낸 자료들로 안익태의 1938-44년 활동상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안익태기념재단 측은 "당시 본인 선택과 상관없이 국적을 잃은 안 선생은 일본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1] 이 명단의 군 부문에는 형인 안익조도 포함되어 있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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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리고 게시판에맞게올려주시면감사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