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나한전 수미단 중앙에 봉안된 석조나한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석조 나한상으로
2011년 3월 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한상은 현재 삼성각에 봉안된 지장보살상과 같이 1873년에 제작되었다.
나한전 중앙 수미단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이 나한상은
『봉선사 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고적편(1873)에
한봉창엽(漢峰瑲曄)과 금곡영환(金谷永煥)이 제작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높이 60cm 이며,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을 하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 위에 오른손을 위로하고,
왼손은 아래로 한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근 형태로 가는 눈과 뭉뚝한 코를 가지고 있으며,
입술은 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머리는 승형(僧形)으로 나한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양어깨에는 가사(袈裟)가 둘려져 있고, 대의 안에는 복견의(覆肩衣: 승가사)를 입고 있다.
대의 깃 안쪽에는 수평 형태의 묶음띠가 가슴까지 올라와 있는 내의가 단정해 보인다.
얼굴과 손발은 호분(胡粉)으로 칠해져 있고,대의는 옻칠이 두껍게 되어 있다.
어깨는 빈약하고 어깨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무릎 높이가 상체에 비해 높은 편이다.
뒷면은 왼쪽 어깨에 전면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덮여 있다.
불상 바닥 면에 복장구가 마련되어 있다.
양주 석굴암 석조 나한상은 사적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전국 사찰에 산재한 석조불상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불화승이 제작한 기년명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나한전의 이 탱화는 탑과 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금강역사로 보기보다는 사천왕 중 서방 광목천왕으로 보인다.
삼성각
삼성각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전각 앞에는 삼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 산신, 독성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석굴암의 삼성각에는 지장보살상이 중앙에 봉안되어 있고
산신탱과 칠성탱은 보이는데 독성탱은 보이지 않는다.
지장보살상 뒤 탱화는 약사여래 탱으로 보인다.
1985년에 조성된 산신탱과 칠성탱과 함께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석조지장보살좌상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 시대의 석불이다.
2011년 3월 8일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이 석조지장보살좌상은
佛石(慶州石)이라 부르는 활석을 쪼아 만든 것으로,
머리 위에 두건을 두른 피건형으로 양어깨에 두건 자락이 늘어져 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봉선사본말사지』에 1873년 戊子生 李氏 進明行이 발원하여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이 나한상과 같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불상을 만든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은 19세기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의 흐름을 살펴보면,18세기 중반부터 불화승에 의하여
불화의 제작과 더불어 불상 제작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댓글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