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5일
반쪽의 승리
: 대한민국 국회의 제 1당이 된 정치세력은 정체성과 다양성의 두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인들은 순종이나 순수성을 지키려는 분위기와 압력이 센 곳이다. 그게 정도를 지나쳐서 오만가지에서 순종과 순수성을 찾는다. 또한 1500년전의 신라시대의 성골이니 진골이니 하고 성분과 계급과 족벌을 구별짓는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경향이 아주 협소해 지면 지역주의(regionalism)로 번져버리는 것이다. 순수성을 자신이 나고 삶을 영위하는 지역으로 국한 시키면서 정치적 정체성을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한국의 온 지역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면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직도 동서의 분열은 정치적 분열, 하나의 정당색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사리에 맞지 않는 탄핵에 대한 시민들의 매서운 맛이 제대로 발현되었다. 새천년 민주당의 추풍(秋風)은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낙엽(落葉)으로 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남과 호남의 분할 구도는 또 다시 재현되었다. 박풍(朴風)이라는 이미지와 거대담론이 주효하게 작용한 것이다. 열린 우리당에서 우려하던 대로 호남이 열린 우리당 일색이 되니까 이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게 드리워진 것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지역구도를 깨기 위한 노력이 이른바 박풍에 의해 좌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열린 우리당의 전국정당화라는 목표가 좌절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른바 박풍(朴風)은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가 혹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하는 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난 35년 정도를 영남을 지역적 정치기반으로 하는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을 주도하였고, 이제 겨우 6년 정도를 호남을 지역적 정치기반으로 하는 세력들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 하고 있다. 영남의 민심은 호남일색의 한국 사회의 주도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국회 제 1당으로 올라간 열린 우리당은 더욱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탄핵심판이 어떻게 귀결될 지는 모르겠지만 ‘올바른 큰 정치’를 하지 못하고 코드적인 소수파정치를 일삼아온 것에서 탈피하여 대통령이 말한 바대로의 ‘상생의 정치’를 제대로 해 나가야 한다. 35년 정도 한국의 사회를 주도하던 습속(habitus)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남의 나이든 세대들을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남의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쉬운 말로 영남의 민심도 휘어잡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다음 번의 정치적 판갈이를 올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소위 박풍(朴風)이라고 하는 바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혹은 그리 오래 가지 않게 혹은 다른 말로 박명(薄命)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있어서의 올바른 궤도에 올라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동시에 민생의 경제를 풀어내는 곳에 국회 제1당이 된 정치세력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이나 거대 기업들과의 유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의 개발과 실행을 통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된 시대에 올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경제행위만을 일삼는 재벌이나 거대 기업들, 혹은 심지어는 중소기업들을 혼을 내서라도 깨끗하고 올바른 경제행위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시장중심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만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견 순수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좌우의 양세력들과 마찰도 유발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지역에 근거를 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이라는 상위의 정체성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통합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에는 아마도 국제적 시각과 안목을 견지하는 선에서 한국 사회 전체를 보는 시각을 일반 시민들에게 사회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를 보고 전지구를 보는 안목과 식견을 기르게 해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 정체성에 머물게 된 이유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근본적으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러한 경향을 이용하고 그에 기생하는 치세력들에게 문제가 많다.
한국 사회 안에 영남인, 호남인, 충청인, 제주인, 강원인, 서울인, 경기인 들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사회적 변화나 주도에 있어서 탕평(蕩平)이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이 해온 스타일은 분명히 이러한 탕평의 이상과는 배치되는 면이 많았다. 그리고 소수파적인 생가과 행동이 지나치게 많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탕평은 인사등용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넓은 가슴으로 한국 사회내에 존재하는 넓은 다양성을 포괄하고 결속을 강화해 나가는 방향에 관한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점은 당의장과 원내대표가 이끄는 열린 우리당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아주 경계해야 하고 근본적으로 제대로 풀어가지 못할 경우 다음번 선거에서 열린 우리당은 별로 큰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정치 판갈이를 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판갈이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은 친일-반공-숭미(崇美) 네트워크가 수구라는 거대한 실체로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처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빨갱이에다가 북한나부랭이들의 지령을 받는 것으로 몰아부치는 수구적인 '반공분자들'을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무력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의 지령이나 받는 진보를 가장한 ‘숭공(崇共)/숭북(崇北)분자들'도 철저하게 가려내고 색출내지는 퇴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배경위에서 통일을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정풍(鄭風)은 단풍(短風)일 수 있다.
‘과거를 묻지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다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지역정서를 힘입고 말이다. 이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수구세력들에 대한 입법-행정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지 않을까? 열린 우리당이 제 1 당이 되면서 이제 상당부분 입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사법부이 노력은 지켜볼 일이라고 본다.
통합적 정체성속의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은 멋있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