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고난의 바다를 믿음으로 항해하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욥은 인생을 가리켜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정의합니다. 사는 날이 적으면 괴로움이라도 함께 적든가, 괴로움이 가득하면 사는 날이라도 많아서 괴로뭉이 분산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야곱도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이와 유사한 말을 한 바 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고백들을 통해 오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인생에서 괴로움이란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에 지혜롭게 산다면 고난을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믿음으로 산다면 더욱 피해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세상에는 고난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실제 세상을 고난 없이 살아가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고난은 피해 가지 못합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피해가지 못했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고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떠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아주 특별한 위인이고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었기 때문에 고난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것보다 훨씬 극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시 55:1-7 ; 고후 1:8; 11:23-27), 그들이 당한 고난을 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오늘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극한 고난을 받았으면서도 위대하게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철두철미하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남보다 극한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을 우리보다 더한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이 세상을 자기 지혜와 자기 용기와 자기 실력으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속에서 약해집니까? 왜 원망의 마음이 생깁니까? 왜 그렇게 견디기가 어렵습니까? 잘 살펴 보십시오. 원인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살기가 좋아도 믿음이 약화되어 보십시오. 사는 것은 여전히 짜증스럽습니다. 불만족스러운 것은 오히려 더 늘어납니다. 하지만 여러분, 믿음이 있어 보십시오. 여러분 안에 믿음으로 가득해 보십시오. 감옥에 들어가서도 찬송이 나옵니다(행 17:25), 밭에 소출이 없고,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게 되어 있습니다(합 3:17.18), 비록 오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내일 사자굴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고마워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단6: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만 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의 내면을 믿음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살 길입니다. 믿음만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