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C
도매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올해만 해도 30년이 훌쩍 넘는 업력의 두배, 명성약품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다. 이는 OTC도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 빨리 위기가 찾아왔을 뿐이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주로 일반약을 취급하면서 국내 의약품 유통 시장을 이끌었던 OTC도매상.
그러나 OTC도매는 의약분업 시작과 함께 국내 의약품 시장 무게 중심이 병원으로 재편됨에 따라 위기에 처하게 됐다.
OTC도매들 또한 전문약을 취급해야 생존이 가능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에 따라 순수 OTC도매상들은 자취를 감춰야 했고, 이른바 종합도매가 출현했다. OTC와 ETC도매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굳이 OTC도매상을 분류한다면, 종합도매 가운데 약국을 주 거래처로 하는 도매상이 과거 OTC도매상(이하 약국주력 도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주력 도매업체 한 인사는 "의약분업 이후 에치칼 도매업소들도 약국시장에 폭넓게 진출해 있는 등 영역 구분이 없어졌다"며 "급변하는 제약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할 수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종로·영등포 등 '일반약 성지' 경영악화…OTC도매 몰락 촉진"이처럼 도매업계 지각변동은 의약분업에 따른 국내 OTC시장 침체에 기인한다.
일례로 '약국 1번가'로 통했던 종로 4가와 5가 약국 수가 분업 10년사이 70여곳에서 53곳으로 줄었고, 서울 소재 약국주력 도매 또한 2010년 현재 단 16곳(1999년 기준 60여 곳)만이 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분업 전 '일반약 성지'로 불렸던 종로와 영등포 일대 약국 경영악화가 자연스럽게 약국주력 도매 몰락을 이끈 것이다.
영등포 소재 도매업체 회장은 "과거 이웃 도매들이 현재는 자취를 감춘 상태"라면서 "영등포 시장 일대에 즐비했던 약국들이 문을 닫으면서 덩달아 도매업체들이 위기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약국주력 도매들도 분업 이후에는 전문약을 취급해야만 생존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전문약을 취급함에 따라 약국주력 도매는 극심한 경영난으로 인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특정 품목에 대한 제약사 오더권이 있으면, 입찰 시장에서 생존이 가능했던 병원주력 도매들과는 달리 약국주력 도매는 거래선이 약국 위주여서 폭넓게 의약품을 보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건비, 관리비용 증가, 담보 부담 등이 경영악화로 연결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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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기관의 회전기일 장기화로 인해 도매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 "상대적 저마진 경영악화 불렀다"= 제약사 마진축소정책, 특히 상대적 저마진 정책도 약국주력 도매상 몰락을 부채질했다.
A약국주력 도매업체 임원은 "분업 이후 제약사들은 병원에 마케팅을 집중해야했다"면서 "이는 병원주력 도매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국주력 도매상 마진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원내에서 소화됐던 약들이 의사 처방에 따라 원외(약국)로 이동, 즉 약 선택권이 의사권한으로 일원화됐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유통일원화로 인해 100병상 이상 병원과의 거래는 반드시 도매를 통해서만 가능했다"며 "때문에 제약사들은 자사 제품 원내코드 입성을 위해 병원주력 도매들에게 마진을 더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업체 제품을 특정 병원 및 약국에 납품하는 전납도매, 품목도매 등 도매상 난립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 "회전기일 장기화, 자금경색으로 연결"= 또 회전기일 장기화 등에 따른 자금경색도 약국주력 도매업체들을 어렵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타 업체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외형성장)가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B도매업체 관계자는 "외형을 키우기 위해서는 도매 부담이 늘어나기 마련"이라면서 "특히 담보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보통 담보는 재고물량과 향후 필요 물량에 대한 부분까지 제공해야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0% 이상 현금거래를 해야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보통 약국 회전기을 생각하면 턱도 없는 문제다"고 토론했다.
또 다른 약국주력 도매 사장은 "한달에 30억 가량 매출을 올리는 도매업체의 경우 25~30억정도는 미수금"이라며 "약국에 매월 고정적으로 미수금을 깔고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하지만 제약사에서는 100% 담보를 주거나 현금으로 약을 구입한다"면서 "이 같이 고정잔고가 유예되고 있어 여신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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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시행 이후 1원낙찰 등 덤핑낙찰 폐단이 악화되고 있다. |
◆ "1원낙찰, 업체간 진흙탕 싸움 불지펴"= 아울러 최근 몇년전부터 서울대병원과 보훈병원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1원낙찰 현상'은 유통시장에 또 다른 변화를 유도했다.
1원낙찰 등 덤핑낙찰이 속출하면 할 수록 병원주력과 약국주력간 유통마진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약국주력 관계자들은 1원낙찰 품목의 원외시장 유통과 높은 마진의 전납도매, 품목도매 난립으로 인해 외형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도매업체간 '할인율 경쟁' 등 진흙탕 싸움이 전개됐다고 주장했다.
B약국주력 도매업체 대표이사는 "보통 1원낙찰 품목은 문전약국에서만 소화됐던게 아니라 원외시장으로 유통되기도 했다"면서 "지금이라도 높은 마진의 의약품을 수급해 올 수있다"고 전했다.
통상 약국주력 도매업체에는 5~8%가량의 유통마진이 주어지는데 1원낙찰 품목이나 전납도매, 품목도매 마진은 이를 훨씬 초월한다는 말이다.
그는 "약국주력 등 종합도매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익이 유지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경쟁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손에남는 이익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시행초기부터 1원낙찰이 성행하고 있다"며 "그만큼 도매업계에 큰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도매업계 미래를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가 이를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