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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군대만 말이되는 조직일 수는 없는 것이며
말이 되지 않는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카페의 여러분들은 한국군이
좋아 지기를 소원하는 분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회의 하부 조직인 군대가 말이 되는 군대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사회가 말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군대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말이 되는 사회를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결국 승리하는 군대가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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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카페에 실려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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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글>>
<< 2. 북구식 사회보장을 구걸식 사회보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충성스러운 사고방식으로 세뇌된 사람들이 비판한다?
우리 헌법에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생존권' 에 대하여
어느 사회보장 제도가 좋은 가에 대하여 헌법학자들이 구걸식 사회보장이라고 비판합니다.
특히 허영교수가 그런데 허교수는 독일에서 오랜 연구와 강의를 한 분이라
미국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 여기에 엉뚱한 이념을 갔다 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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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나는 이 카페를 자주 들러 글을 접하면서 광토님께서
아주 성실하게 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고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광토님께서 허영교수가 독일에서 연구 강의 했고
미국하고는 관계가 없으며 허영교수가
북구식 사회보장을 구걸식 사회보장 라고 비판했다는 정보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 허영선생의 주장은
내가 한번 그 근거를 살펴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광토님을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광토님께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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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확인사항>>
우선 인터넷에서 왜 허영선생이 그렇게 주장을 했는지
그 근거를 알아 보려고 찾아 보았습니다.
우선 인물 정보를 찾으니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 원장, 법무부 헌법 자문 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함을 보았습니다.
박영사에서 한국 헌법학 이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그리고 ‘구걸식 복지’ 라고 타자하니
헌법이론과 헌법(신정 9판)이라는 책 “120페이지, 사회국가원리” 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찾을 수있었습니다.
나는 아래의 글을 음미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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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본문에서>
국민의 일상생활이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히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규율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복지국가는
국민 각자의 자율적인 생활설계를 그 근본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국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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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생활질서를 스스로의 책임하에 결정할 수있는
모든 자유의 핵심을 뜻하기 때문에
‘자유의 조건’을 뜻하는 사회국가는 결코 복지 국가와는 같을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이 자기 수입의 절반이상을 세금 기타 부담금의 형태로
국가에 납부하고
그 대가로 일상생할에서 발생하는
모든 모험(질병, 사고, 실업,재해,폐질, 노령 등) 을
국가에 전가시킴으로서
국민의 일상생활이 철저히 국가 기관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조종되는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형태의 복지국가는 외형상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나,
자율적인 생활설계의 자유를 상실한 채,
언제나 국가에 의존해서 빵을 달라고 손을 벌려야 되는
구걸식 생활(almosendasein) 을 불가피하게 하기 때문에,
빵과 자유와 재난으로부터의 해방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감각에 맞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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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국민의 일상생활이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히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규율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복지국가는
호호>> 위의 글 밑에
“ 이 모든 국민이 자기 수입의 절반이상을
세금 기타 부담금의 형태로 국가에 납부하고”
라는 표현의 글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절반이상이라고 표현했지
100%하고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위의 주장에서는
“하나부터 열
까지 철저히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규율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복지 국가”하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면 100%를 의미합니다.
절반이상은 100%다 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이
이 사회의 주요 의사 결정 지위에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 사회가 엉망진창인 사회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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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국민 각자의 자율적인 생활설계를 그 근본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국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호호>>
진정한 의미의 사회국가는 무엇인가?
국민 각자의 자율적인 생활설계가 꼭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사회국다 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북 유럽 나라 사람들은
각자의 자율적 생활 설계가 없이
- 모든 것을 국가 가 명령하는 것인가?
위 표현에서 절반 이상을 걷어 가면
절반 이하는 적어도 자율적 생활 설계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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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스스로의 생활질서를 스스로의 책임 아래 결정할 수있는 것이야 말로
모든 자유의 핵심을 뜻하기 때문에
‘자유의 조건’을 뜻하는 사회국가는 결코 복지 국가와는 같을 수는 없다.
호호>>
솔직히 윗글은 문장이 매끄럽지를 못하지요.
자유의 핵심은 자율에 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자유의 핵심은 자율에 있기 때문에
자유의 조건을 뜻하는 사회국가는 결코 복지국가와 같을 수는없다.
말이 꼬여 있지요???
허선생이 학부생이 레포트 낸 것도 아니고
내가 이 사람 지도교수도 아닌데 문장까지
고쳐 줄 수도 없고 참 딱하지요.
사실 문장이 꼬인 것이 아니고 허영선생의 사고 수준이 꼬여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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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모든 국민이 자기 수입의 절반이상을
세금 기타 부담금의 형태로 국가에 납부하고
그 대가로 일상생할에서 발생하는 모든 모험(질병, 사고, 실업,재해,폐질, 노령 등) 을
국가에 전가시킴으로서
국민의 일상생활이 철저히 국가 기관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조종되는 이른바
호호>>
“자기 수입의 절반 이상을 국가에 납부하면
국민의 일상생활이
철저히 국가 기관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조종된다.” 고 주장하네요
솔직히 이 글이 내게 낸 레포트이면 나는 F 학점 줘요.
학부 졸업도 시키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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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스칸디나비아 형태의 복지국가는
외형상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나,
자율적인 생활설계의 자유를 상실한 채,
언제나 국가에 의존해서 빵을 달라고 손을 벌려야 되는
구걸식 생활(almosendasein) 을 불가피하게 하기 때문에,
빵과 자유와 재난으로부터의 해방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감각에 맞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호호>>
현대인은 빵과 자유와 재난을 한꺼번에 요구한다.
자기 수입의 반 이상을 국가에 납부하면
자율적인 생활설계가 불가능하고 구걸식 생활이 불가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빵과 자유와 재난으로부터의 해방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대한민국은 몇 퍼센트를 세금으로 내고 있나요
- 그러면 대한민국은 빵과 자유와 재난으로부터 해방이 이루어 졌나요?
도대체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학부는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인가 의심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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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
결론적으로 내가 총평을 하면
허영선생은 “구걸식 복지” 라는 의미의 용어가 유행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표현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유 공간 속에서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의 가치관 즉 믿음을 근거로 제시했을 뿐입니다.
고대에나 중세에는 자기의 믿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기의 믿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유명한 삼국지의 조조 이전에는
군대를 출동시킬 때 항상 점괴에 의지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조가 처음으로 현상을 보고 현상에 의해 판단을 내려
군대를 출동시켰고
그 이후로는 누구도 점괴에 의해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현상에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또 서양에서는 그 유명한 갈릴레오의 지동설 재판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는 말씀은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이 재판 조차도
내가 기억하기에 이번 교황 바로 전 교황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과를 했었습니다.
갈릴레오의 재판은 카토릭의 잘못이라고 시인한 것입니다.
즉 믿음과 현상이 다를 때
"믿음을 버리고 현상을 선택해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소속의
헌법재판연구원 이사장,
원장,
법무부 헌법 자문 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학부도 졸업하지 못할 레포트 수준의 글을
책으로 써내는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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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의 마음으로 후배님들에게 조금 보태드린다면
학문이란 첫째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
“왜 그렇게 되어 있지?” 하고 의문을 던지고
마지막으로 셋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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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서는 첫째
“어떻게 되어 있나?” 즉 상황이 어떤가를 파악할 때에
원시시절 사람들이 나무 열매를 따 먹을 때 조차도
단순히 혼자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조그만 무리가 아침은 여기서 열매를 따 먹고,
점심은 저곳으로 이동해서 열매를 따 먹고 하는 식으로
허영선생 표현대로 자율적인 생활설계를
개인이 아니고 집단이 했을 것입니다.
더우기 현대에는 인간의 집단이 커지면서
여러 분야로 더 세분하여 분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일을 할 때에
한 사람이 모든 것에 다 정통할 수는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설사 모든 일에 다 정통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을 다 혼자서는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본업 이외의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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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왜 이렇게 되어 있나?
사람이 많아지고 산업이 복잡해지다 보니
분업은 더 세분화 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분야에는 세부 전문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미사일을 개발하는 총 책임을 맡았다고 가정한다면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 해야 하는 사이에
언제 부동산 가격을 알아 보러 다니면서
언제 증권 사고 팔고 관리를 할 것인가?
재산관리 잘못하면 노숙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누구에게 대신 시켜야 하는데 생존에 관련된 문제이니
99% 공신력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니 100%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기관은
정부나 정부 산하 기관일 것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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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100% 공신력을 담보할 수있는
정부나 정부 산하 기관에게
내 수입의 60% 를 납부한다면
정부 나 산하 기관에서 그 돈을 관리해서 기금을 크게 만들고
그 기금으로 내 기초생계와 교육 의료 등등의 책임을 맡기고
나는 내 수입의 40%로 현재의 생활은
자율적인 생활설계를 통한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면 될 것이고
혹 있을지도 모를 질병, 사고, 실업, 재해, 또는 노령 등은
국가에 위탁해서 국가가 관리하는 우리의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임은 명백한 일입니다.
사회 현상이던 자연현상이던 현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없는 현상을
내 믿음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중국에서는
조조 이전의 사람들의 생각 수준이고
유럽에서는 갈리레오의 지동설 재판 이전의 사고방식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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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을 하자면 계속되겠으나 여기서 끊기로 하겠습니다.
혹 광토님께서
허영선생을 접할 수 있는 위치면
이 글을 그대로 전해 드려도 좋을 것입니다.
혹 헌법재판소 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릴 수있다면 올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첫댓글 이 글의 촛점은 대통령도 탄핵재판에서 쫓아낼 수있는 막강한 헌법재판소 그 바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 원장이라는 고관께서
주장하셨습니다.
-복지는 구걸식입니다. 구걸식 복지란 말입니다.
저는 여쭈어 보았습니다. : 그렇게 주장하시는 근거는요?
고관께서
: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다시 여쭈었지요: 그렇게 믿는 근거가 뭐에요?
고관님 :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 소리 듣고 웃지 않는 놈은 - 배꼽이 이미 빠져 나가서 없는
뭔가 부족한 놈이지요!!
자기가 믿는 것이 근거인 사람이 고관을 지낼 수 있는 나라 -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이런 고관에게 엄청난 등록금 내고 강의 들었던 불쌍한 한국의 새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