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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탄생은 1776년인가? 아니면 1619년인가? 트럼프가 '1619파'를 적대시하는 이유 / 10/8(수) / 다이아몬드 온라인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 모든 인간은 평등이라고 높이 치켜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깨끗이 끝나지 않는 현실이 있었다. 초대부터 12대까지 대통령 중 10명이 노예 소유자였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미국 건국의 부정적 역사란?
※ 본고는, 이노우에 히로키『미국의 새로운 우익:트럼프를 낳은 사상가들』(신초샤)의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 미국 탄생의 해를 1776년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고 신구 대통령 간 인수인계가 직접 이뤄지지 않은 채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이틀 전 ―― 지난 2021년 1월 18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공휴일이었다 ―― 한 보고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됐다.
그 보고서는 1776위원회(The 1776 Commission)가 정리한 「1776년 리포트」이다(주1).
1776년은 미국사를 다소나마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연호다. 미국 독립선언이 나온 해로, 그 시점에서 13개 식민지는 영국군과의 교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제정될 합중국 헌법 하에서 연방국가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국의 탄생의 해로서 세계사에 새겨져 있다.
2020년 11월 2일 대통령 선거 전날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된 이 1776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문을 받아 미국에서의 '애국교육'의 기본방향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1776위원회와 「1776년 리포트」가, 주된 적으로서 상정하고 있던 것이 「1619 프로젝트(The 1619 Project)」이다.
(주1) 이하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https://trumpwhitehouse.archives.gov/wp-content/uploads/2021/01/The-Presidents-Advisory-1776-Commission-Final-Report.pdf
1619년이라는 해는 1776년에 비해 미국사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즉각적으로 상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른다.
1619년은 버지니아 식민지에 20명에서 30명의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온 해다. 즉 미국에서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한 노예해방선언까지 이어지게 되는 노예제의 시작의 해이다.
2019년 버지니아 식민지에 흑인 노예가 처음 끌려온 지 400년 만인 그해 더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8월 18일자로 1619 프로젝트라는 특집을 꾸몄다.
이 1619 프로젝트는 미국이 탄생한 것은 1776년이 아니라 1619년이라고 호소해 큰 반향과 찬반을 일으켰다.
1619 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의 본질은 노예제를 안으로 끌어안으며 자유와 평등을 선언한 그 기만에 있었고, 억압되어 온 흑인들에 의해 이 기만이 극복되어 온 과정에 있었다.
● 점점 더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는 미국
반면 이런 역사관을 부정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만든 것이 1776위원회였다.
1776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국의 본질은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고 있음을 내건 독립선언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선언에 담긴 자연권이 상실되어 가는 위기의 과정이야말로 미국의 역사였다(편집부 주/미국 독립선언은 불가침·불가양의 자연권으로서 「생존,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내걸고, 이를 위협하는 위기와 미국은 계속 싸워 왔다고 하는 역사관).
1776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사람은 미시간 주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힐스데일 칼리지의 학장을 맡은 래리 P. 안(1952)이었다. 이 앤은 서해안 슈트라우스 학파의 창시자인 해리 V. 자파(편집부 주/1918~2015. 미국 땅에서 자연권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고 해서 린칸을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했다)의 제자로 알려졌다.
1776위원회의 18명 위원 중에는 자파와 오랜 세월 행동을 함께 했으며 클레어몬트 리뷰 오브 북스지의 편집인을 맡고 있는 찰스 케슬러의 이름도 있었다.
바이든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바로 이 1776위원회를 해산시켰다.
미국 사회의 분극화라는 상황이 개선될 전망이 없는 가운데, 오늘날 미국의 역사관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분극화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1619프로젝트와 1776위원회의 대립은 그 상징이었다.
●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흑인들이 미국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이 1619 프로젝트의 특집에는 많은 아프리카계 작가와 칼럼니스트들이 기고했다. 그 중 특집의 중심을 이루는 니콜 한나=존스의 논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프로젝트 주장의 골자를 꺼내보자.
1976년 아이오와 주 워털루에서 태어난 한나=존스는 인종차별 문제를 보도해 온 언론인이자 더 뉴욕타임스지 기자였다. 그녀는 이 1619 프로젝트에 의해 2020년에 퓰리처상 논설 부문을 획득했다.
한나=존스의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어머니는 체코와 영국에 뿌리를 둔 백인이다. 오바마가 그렇듯 흑인과 백인 모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는 정체성 측면에서 스스로를 흑인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뿌리를 밟은 한나=존스의 논고는 더 큰 뿌리로서의 미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지극히 단도직입적으로, 미국의 건국이 흑인들을 그 이상의 외부에 묶어두고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짓된 이상을 진짜 이상으로 바꾸어 온 것은, 그 흑인들이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미국은 이상과 거짓 모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나라다. 1776년 7월 4일 서명된 우리의 독립선언은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고 있다고 선언하고 불가침의 권리를 자신들의 창조주에 의해 부여받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구를 기초한 백인 남성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수십만의 흑인 사람들에게도 그것들이 들어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는 이 나라의 전체의 5분의 1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인에게 약속된 자유와 정의가 폭력적으로 부정됐음에도 흑인 미국인들은 미국의 신조(the American creed)를 열렬히 믿었다. 흑인들의 반항과 저항의 수세기를 통해 우리는 이 나라가 건국의 여러 이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흑인의 권리 투쟁은 여성의 권리, 게이의 권리, 이민이나 장애인의 권리를 포함한 모든 다른 사람들의 권리 투쟁에 길을 열어 왔다.
●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노예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한나=존스가 미국사의 비판적 이해라는 점에서 첫째, 이 논고에서 강조하는 것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 건국의 부조들이 노예 소유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나=존스는 제퍼슨이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기초하던 중 자신의 장인과 노예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헤밍스를 시종으로 대동하고 자신의 주변을 돌보던 일화를 언급하고 있다.
한나=존스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미국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결정한 주된 이유의 하나는, 노예제 폐지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던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떼어냄으로써, 노예제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된다(편집부 주/미국 독립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1773년의 보스턴 다과회 사건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 본국에 의한 부당한 과세에의 반발이 반영 운동의 에너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 전 해, 영국 본국에서 「노예제는 위법」이라고 하는 판결이 나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지만 초기 12명의 대통령 중 10명까지 노예 소유자였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이 아니라고 한나=존스는 주장한다.
그래서 미국은 민주주의(민중의 지배)가 아니라 노예소유자에 의한 지배(slavocracy)에 기초했다는 것이 한나=존스가 강조하는 점이었다.
그런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미국의 민주주의를, 그 후의 역사 속에서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온 사람들이야말로 흑인들이다. 한나=존스의 논고 역점은 거기에 집약돼 있다.
이노우에 히로키
アメリカの誕生は1776年か?それとも1619年か?トランプ氏が「1619派」を敵視する理由
アメリカの誕生は1776年か?それとも1619年か?トランプ氏が「1619派」を敵視する理由
10/8(水) 7:01配信
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ドナルド・トランプ米大統領 Photo:Win McNamee/gettyimages
英国の植民地だったアメリカが、独立を宣言した1776年。「すべての人間は平等」と高らかに謳ったが、その裏には綺麗事では済まない現実があった。初代から12代目までの大統領のうち、10人が奴隷所有者であったという事実が示す、アメリカ建国における負の歴史とは?※本稿は、井上弘貴『アメリカの新右翼:トランプを生み出した思想家たち』(新潮社)の一部を抜粋・編集した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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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アメリカ誕生の年を 1776年と認めない勢力
トランプがホワイトハウスを去り、新旧大統領間での引継ぎが直接なされぬままバイデンの大統領就任式がおこなわれた2日前――この2021年1月18日はマーティン・ルーサー・キング牧師を記念する祝日だった――ある報告書がトランプ大統領に提出された。
その報告書は1776委員会(The 1776 Commission)がとりまとめた『1776年レポート』である(注1)。
1776年は、アメリカ史を多少なりとも勉強した者であれば、馴染みのある年号である。アメリカ独立宣言が出された年であり、その時点で13の植民地は英国軍との交戦の只中にあったとはいえ、のちに制定される合衆国憲法のもとで連邦国家として姿をあらわすアメリカの誕生の年として世界史に刻まれている。
2020年11月2日、大統領選挙の前日に大統領令によって設置されたこの1776委員会は、トランプ大統領の諮問を受け、アメリカにおける「愛国教育」のあり方を検討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ものだった。
その1776委員会と『1776年レポート』が、主たる敵として想定していたのが「1619プロジェクト(The 1619 Project)」である。
(注1)以下からダウンロード可能である。https://trumpwhitehouse.archives.gov/wp-content/uploads/2021/01/The-Presidents-Advisory-1776-Commission-Final-Report.pdf
1619年という年は、1776年に比較して、アメリカ史におけるその重要性を即座に想起できる者は少ないかもしれない。
1619年は、ヴァージニア植民地に20名から30名の黒人たちが奴隷として連れてこられた年である。すなわちアメリカにおいて1863年のエイブラハム・リンカン大統領による奴隷解放宣言まで続くことになる奴隷制の始まりの年である。
2019年、ヴァージニア植民地に黒人奴隷がはじめて連れてこられてから400年後のその年、『ザ・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マガジン』は、8月18日付で1619プロジェクトという特集を組んだ。
この1619プロジェクトは、アメリカが誕生したのは1776年ではなく1619年であると訴え、大きな反響と賛否を引き起こした。
1619プロジェクトによれば、アメリカの本質は、奴隷制を内に抱え込みながら自由と平等を宣言したその欺瞞にあり、抑圧されてきた黒人たちによってこの欺瞞が克服されてきた過程にこそあった。
● イデオロギーの対立が ますます深まるアメリカ
それにたいして、このような歴史観を否定するためにトランプ政権が立ち上げたのが、1776委員会だった。
1776委員会の委員に任命された人びとにとって、アメリカの本質は、万人は平等に創造されていることを掲げた独立宣言にこそあり、この宣言にこめられた自然権が喪失していく危機の過程こそがアメリカの歴史だった(編集部注/アメリカ独立宣言は、不可侵・不可譲の自然権として「生存、自由、幸福追求の権利」を掲げ、これを脅かす危機とアメリカは戦い続けてきたという歴史観)。
1776委員会の委員長を務めたのは、ミシガン州のリベラルアーツ・カレッジであるヒルズデール・カレッジの学長を務めるラリー・P・アーン(1952〜)だった。このアーンは、西海岸シュトラウス学派の創始者であるハリー・V・ジャファ(編集部注/1918〜2015。アメリカの地で自然権を最終的に完成させたとして、リンカンを偉大な政治家として評価した)の弟子として知られる。
1776委員会の18名の委員のなかには、ジャファと長年にわたり行動をともにし、『クレアモント・レヴュー・オブ・ブックス』誌の編集人を務めているチャールズ・ケスラーの名もあった。
バイデンは大統領に就任すると、すぐさまこの1776委員会を解散させた。
アメリカ社会の分極化という状況が改善に向かう見通しが得られないなか、今日、アメリカの歴史観という側面においても、この分極化はこれまでにも増して先鋭化しつつある。1619プロジェクトと1776委員会の対立は、その象徴だった。
● いないものとされていた黒人たちが アメリカの理想を実現している
この1619プロジェクトの特集には、多くのアフリカ系のライターやコラムニストらが寄稿した。そのなかで、特集の中心をなすニコル・ハンナ=ジョーンズの論考に焦点を当てることで、このプロジェクトの主張の骨子を取り出してみよう。
1976年にアイオワ州のウォータールーで生まれたハンナ=ジョーンズは、人種差別をめぐる問題を報道してきたジャーナリストであり、『ザ・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紙の記者だった。彼女はこの1619プロジェクトによって、2020年にピューリッツァー賞論説部門を獲得した。
ハンナ=ジョーンズの父親はアフリカ系、母親はチェコと英国にルーツをもつ白人である。オバマがそうであるように、黒人と白人の双方にルーツをもつ彼女は、アイデンティティの点で、みずからを黒人であると考えてきたと語っている。
みずからのルーツを辿ったハンナ=ジョーンズの論考は、より大きなルーツとしてのアメリカ史を遡っていく。
彼女はきわめて直截に、アメリカの建国が黒人たちをその理想の外部に留め置いて始められたこと、それにもかかわらずその偽りの理想を本物の理想へと変えてきたのは、その黒人たちであったことをつぎのように訴えている。
合衆国は、理想と嘘の両方によって基礎づけられている国である。1776年7月4日に署名されたわたしたちの独立宣言は、「万人は平等に創造されている」と宣言し、「不可侵の権利を自分たちの創造主によって与えられている」と宣言している。しかしこれらの文言を起草した白人男性たちは、自分たちのなかにいる数十万の黒人の人びとにとってもそれらがあてはまる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生命、自由、および幸福の追求」はこの国のまるまる5分の1には適用されなかった。
だが、万人に約束された自由と正義が暴力的に否定されたにもかかわらず、黒人のアメリカ人たちは、アメリカの信条(the American creed)を熱烈に信じた。黒人たちの反抗と抵抗の数世紀をつうじて、わたしたちはこの国が、建国の諸々の理想をかなえるのを助けてきた。
しかもそれは私たち自身のために限らない。黒人の諸権利の闘争は、女性の権利、ゲイの権利、移民や障がい者の権利を含めた、あらゆる他の人びとの権利の闘争に道を開いてきた。
● イギリスから独立したのは 奴隷制度を守るため?
ハンナ=ジョーンズがアメリカ史の批判的理解という点で第一にこの論考で強調しているのは、ジョージ・ワシントン、トマス・ジェファソン、ジェイムズ・マディソンといった建国の父祖たちは、奴隷所有者でもあったという事実である。
とくにハンナ=ジョーンズは、ジェファソンがフィラデルフィアで独立宣言を起草していたまさにその際、自分の義理の父親と奴隷の女性のあいだに生まれたロバート・ヘミングスを従者として帯同させ、身の回りの世話をさせていたエピソードに触れている。
ハンナ=ジョーンズの歴史理解にしたがえば、アメリカの植民地が英国からの独立を決めた主たる理由のひとつは、奴隷制廃止の機運が高まっていた英国から自分たちを切り離すことによって、奴隷制を守りたかったからということになる(編集部注/アメリカ独立戦争の直接のきっかけは1773年のボストン茶会事件とするのが一般的。イギリス本国による不当な課税への反発が反英運動のエネルギーとなったとされる。だが、その前年、イギリス本国で「奴隷制は違法」との判決が出ているのも事実である)。
論争の余地がある解釈だが、初期の12人の大統領のうち10人までが奴隷所有者であったのは、その意味で偶然ではないとハンナ=ジョーンズは主張する。
それゆえにアメリカは、民主主義(民衆の支配)にではなく、奴隷所有者による支配(slavocracy)に基礎をおいていたというのが、ハンナ=ジョーンズが強調する点だった。
そのような空疎なものでしかなかったアメリカの民主主義を、その後の歴史のなかで実質的なものにしてきた人びとこそ黒人たちである。ハンナ=ジョーンズの論考の力点はそこに集約されている。
井上弘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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