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이외수도 못 피한 '외압역사'.. '유퀴즈' 걱정된다박정훈 입력 2022. 04. 27. 20:39 댓글 137개
윤석열 당선인 출연 관련 의혹 일파만파.. 의혹이 줄을 잇는데, CJ는 여전히 침묵
[박정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아래 유퀴즈) 출연 파문이 일주일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김지호 전 경기도 비서관이 SNS를 통해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지사 시절부터 대선 후보 때까지 '유퀴즈'에 출연 의사를 전했음에도 거절당했다고 밝히고, 이를 "선택적 정치 중립"이라고 지적하면서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이재명 고문까지 여권 인사들이 '유퀴즈'로부터 출연을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제작진은 '진행자가 정치인 출연을 부담스러워한다'라며 거절한 걸로 알려졌다. 다수의 정치인들이 같은 이유로 출연을 거절 당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갑작스런 윤석열 당선인의 출연을 두고 여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2018년부터 꾸준히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유퀴즈'의 위상도 추락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국민MC로 높은 신뢰도를 쌓아온 유재석씨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유씨는 지난해 <시사IN>이 조사한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의 '유퀴즈' 출연 후 유재석씨를 향한 악플이 줄을 이었고,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소속사 안테나는 지난 25일 "악플에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에 이어 예능에도 '입맛대로' 요구한 보수정권
|
▲ 김태호 MBC PD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21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고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
ⓒ 권우성 |
윤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에 벌어진 '유퀴즈 사태'는, 국민으로 하여금 뉴스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시사, 예능 프로그램 제작까지 정부나 정치권의 손길이 미쳤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실제로 MBC의 간판 예능이었던 <무한도전>를 제작한 김태호 PD는 보수정권이 <무한도전>을 통해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싶어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특히나 '박근혜 청와대'에서 창조경제를 아이템으로 다루라고 주문했지만, 약 1년 동안 버티면서 징계까지 각오했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이 CP(책임 프로듀서)에게 '창조경제' 아이템을 다루라고 줄기차게 주문했어요. 우리는 '못한다'며 1년을 버텼죠. 하지만 끝내 말을 안 들으면 예능본부 선배들이 다칠 것 같았어요. 저는 제가 회사 명령을 거역한 것으로 하고 징계를 받으면 이 일이 무마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그 행정관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어요."(경향신문,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근혜 청와대가 '창조경제 다루라' 압력... 시청자만 보고 버텼죠" 중)
심지어 이명박 정부 당시 KBS <아침마당>은 '국정홍보마당'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당시 KBS 노조가 밝힌 것에 따르면 2010년 한 해에만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 출연을 포함해 관제기획 및 여권 인사 출연 방송분만 13건에 달했다. G20 기획 다섯 편에, 새마을 운동 40주년 방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압 의혹'으로 코너가 폐지되거나 방영분이 편집된 경우도 있었다. tvN에서 방영되던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 등 정치권을 신랄하게 풍자하던 코너 등이 폐지되면서 '외압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이외수씨 역시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자신이 출연한 부분이 '통편집' 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지난 2013년 11월 이씨가 <진짜 사나이>의 초청을 받아 천안함 선체가 있는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강의한 것에 대해, 하태경 의원과 여당 지도부가 '촬영분 편집'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씨가 2010년 천안함 침몰에 대한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트윗을 남긴 것이 '편집'을 요구한 근거였다. 결국 <진짜 사나이> 제작진은 이씨의 출연 분량을 편집한 뒤 방송을 내보냈다.
윤석열 정부와 CJ에 드는 의구심
|
▲ tvN <유 퀴즈 온더 블럭> 한 장면. |
ⓒ tvN |
김태호 PD부터 이외수 작가까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때의 경험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국민으로선, 이번 '유퀴즈 사태'를 보며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일이 터지고 난 뒤에 드러난 사실은 이런 우려가 기우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강호성 CJ ENM 대표 이사가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윤 당선인의 대학 후배이며, 사법 연수원 1기 선배인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또 박근혜 국정원이 'CJ의 좌편향 문화사업 확장 및 인물 영입여론'이란 청와대 보고서를 통해 CJ 관련 여러 의혹은 제기하면서 CJ가 외압에 시달린 전력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2018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연해 "이(미경) 부회장이 애국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어가려고 했다"라며 "(박 전 대통령과의) 어색한 관계를 개선하길 원해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출연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과거 보수정권에서 자행된 언론 장악 등의 의혹으로 이어지는 등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CJ ENM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적지 않은 대중이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기지 않고 깊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에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보인 언론관 탓도 있다. 윤 당선인은 선거 유세에서 언론노조에 대해 "민주당 정권이 강성노조를 앞세우는데, 그 첨병 중에 첨병이 언론노조다", "말도 안 되는 허위 보도를 일삼고 국민 속이고 거짓 공작으로 세뇌해왔다. 정치개혁에 앞서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또 '공영방송의 민영화'라든지 '허위 기사를 쓴 언론사를 파산시킬 수 있는 시스템' 등을 거론해 우려를 낳았다.
윤 당선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지난 15일 <뉴스타파>는 2009~2011년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사실상 언론 통제 정황이 담긴 '문제보도 조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뒤, 문건 작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맡거나 춘추관에 있었던 네 명의 고위공직자들이 '윤석열 선대위'에 참여했고, 세 명은 인수위에 관여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당선인의 '유퀴즈' 출연은 애초 의도, 그리고 목적과 달리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윤 당선인 측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인이 예능 출연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절감했길 바란다. 더불어 국민은 보수정권 9년간 언론과 문화예술계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