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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도의 복
본 문 : 민 23:13-26
요 절 : (민23:20)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발람은 악한 사람이었고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발람이 발락의 초청에 응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발락이 제시한 재물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적당히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 대가로 재물과 영화를 얻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사로잠아 당신의 도구로 쓰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임에 강력한 말씀을 주시어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심히 부패한 발람이지만 전능자의 권능으로 악한 자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꺾으시고 그를 통해 주께서 이루고자 하는 뜻을 이루셨다. 할 수 있었다면 발람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커다란 대가가 그가 그렇게 행하는 것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제지당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이 너무 강하게 달려와 그가 막아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전능자의 권능으로 성도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1. 변함 없는 복.
(민23:20)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복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복이었다. 발람이 오히려 축복을 계속하자 발락은 장소를 옮겨가며 저주를 종용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발람은 마지막 예언으로 메시아 예언까지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내리기를 원하시는 복은 그 누구도 변개시킬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며 영원히 변함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 분의 이름이 우리에게 지명되었으며, 그 분의 인격이 악으로부터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과 찬미 속에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도 사탄 마귀는 그의 택함 받은 백성을 넘어뜨리고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 시키고, 축복을 저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탄이 족장 욥에게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우리를 불신하게 하고 우리를 저주로 인도하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구리고 확고하게 결합된 구원의 복을 파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신다.
2. 함께하시는 복.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하여 "(민23:21)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 4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불의를 당신이 영영히 진노하실 심판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벌하지 않으시고 다른 열방들과는 달리 흠 없고 의로운 민족으로 간주하셨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끝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곳마다 함께하며 사랑과 은총을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백성과 함께하시어 영원토록 그들의 주가 되신다.
3. 양자의 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다. 과거에 우리가 누려야 했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상속자로 선정된 것이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직위는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 우리는 유혹당하거나 정복당할지도 모르며 잠시 동안 먼 나라로 떠날지도 모른다. 또 가문에 모욕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묶어놓으신 양자의 매듭을 풀지 못한다.
적용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백성에게 영원토록 복을 내리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때때로 의심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곤고히 하자.
2)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자.
3)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선택해 당신의 양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결심하자.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
오덕호 목사 / 주님의 사랑과 축복은 변함이 없습니다 (민 23:16-26)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서로 축복해주실까요? “주님은 변함없이 성도님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한 가지 여쭤볼까요? 우리가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어떤 유형의 거짓선지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 유형의 거짓선지자가 나옵니다.
첫째, 전하는 말씀의 내용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거짓선지자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신을 믿어도 구원을 받는다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하게만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의 내용 자체가 잘못된 거짓선지자입니다.
둘째, 말씀의 내용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만 그 말씀을 잘못 적용해서 결과적으로 잘못 가르치는 거짓선지자입니다. 예를 들어,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어서 십일조를 바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주신다는 말씀만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불법적인 사업을 중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열심히 하며 십일조만 부지런히 바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원하신다고 하며 십일조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옳은 말씀을 전했지만 적용을 잘못해서 거짓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셋째, 전하는 말씀은 내용도 맞고 적용도 맞는 바른 가르침이지만 자기의 삶이 악한 거짓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5-16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여기서 열매는 삶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았느냐 악하게 살았느냐입니다. 만일 이런 사람의 말씀에서만 배우면 선을 배우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배우면 악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보다 행동에서 더 많이 배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옳은 말씀을 전해도 자신이 악하게 살면 악을 가르치는 거짓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선지자의 경우에는 그 말을 듣고 따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다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 이들의 행동을 본받으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3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오늘 읽은 말씀은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한 말인데 발람이 바로 이런 유형의 거짓선지자였습니다. 발람은 참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데 하나님을 믿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과 저주도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축복과 저주는 능력이 있어 주위에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와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약속된 가나안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 전에 아모리족속을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압땅에 가까이 왔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두려웠습니다.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자기들의 힘으로는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사신들에게 돈을 주며 발람을 찾아가서 부탁하도록 했습니다. 발람은 사신들에게 하룻밤 기다리라고 하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봐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을 따라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모압왕은 더 높은 귀족들에게 더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다시 부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발람이 뭐라고 대답해야겠습니까? 가지 않겠다고 해야지요. 지난번에 가르쳐주셨잖아요?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더 하실지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가라고 하시면서 꼭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발람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통해 발람을 꾸짖으셨습니다. 발람은 놀라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 후에 보내십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발람이 모압왕 발락에게 가자 발락은 심히 반가워하면서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보고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합니다. 발락은 화를 내면서 혹시라도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할까 하여 장소를 바꿔가면서 세 번이나 저주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세 번 모두 저주 대신 축복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발람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축복해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이루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실행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약속한 축복을 반드시 실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내가 자꾸 죄를 짓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취소될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으시지요?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해도 축복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당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속을 썩였습니까? 하나님도 화를 많이 내셨지요. 이것만 보면 하나님이 후회하실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죄를 안타까워하시는 것이지 실제로 후회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약속대로 가나안땅을 주실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나중에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이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1:25-26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구원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축복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십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짝이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축복을 이루어주십니다.
누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시편 121:6에서 이렇게 가르쳐주십니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요? 해는 일사병을 일으킵니다. 당시에 광야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달도 우리를 상하게 합니까?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당대인들은 달이 영기로 사람에게 정신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달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의 lunatic이나 moonstruck이라는 말은 정신이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히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자연재해에서도 지켜주시고 영적인 존재로부터도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모압의 군사력도 이스라엘을 해치지 못합니다. 선지자의 저주도 이스라엘을 해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이 저주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은 절대 우리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람도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참된 사역자는 오직 우리를 축복만 합니다. 혹시 경고를 한다고 해도 축복으로 하지 저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종교지도자의 저주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종교지도자가 만일 여러분을 저주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종을 시켜 당신의 자녀를 저주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 한 분이 교회를 옮겨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염려하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성도가 교회를 옮기면 벌을 받는다는 담임목사의 말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교회를 옮겼다가 해를 당한 성도들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으로 교회를 옮기는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은 그를 바로 잡아주지 저주하시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자식이 죄를 지으면 저주합니까? 혹시 말로는 할지도 모르지요. “이 망할 녀석” 그러나 진심으로 저주합니까? 아니지요. 우리는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잘되기를 바라지 잘못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욱 축복하십니다. 다만 그 축복 속에 우리를 바로 잡아주려고 고통을 주실 때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의 고난이지 저주가 아닙니다.
이것을 본문은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21절입니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그것을 보고 우리를 저주하시는 게 아니라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도우십니다. 다만 우리의 악한 관습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까봐 우리의 악한 모습을 고쳐주실 뿐입니다.
이것은 본문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돌아올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작은 저주 하나라도 우리에게 돌아온다면 예수님은 진짜 구주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대 저주가 없습니다. 축복만 있습니다. 평강의 축복, 훈련의 축복, 징계의 축복 같은 축복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축복을 반드시 주신다는 오늘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저주하지 않고 축복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 같습니까? 우선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항상 소망과 기쁨이 넘칩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성공을 바라보며 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40:30-31이 생각나십니까? 암송성구였지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왜 새 힘이 납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 절대 하나님의 자녀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를 축복하며 도와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을 저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서운 벌을 받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를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발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려고 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것은 참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발람 자신이 절대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안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을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스라엘을 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발람을 거짓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전했지만 행동은 악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좀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했지만 그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위한 일을 한 것입니다.
모압왕 발락이 발람에게 많은 돈을 줄 테니 제발 이스라엘을 격파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발람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줬습니다. 어떤 죄를 짓게 하라고 가르쳐줬느냐 하면 우상숭배와 음행을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인들과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을 하게 하라고 알려줬습니다. 요한계시록 2:14입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모압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들이 이대로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들에게 속아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물론 저주를 받아 망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염병으로 24,000명이 죽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것을 민수기 31:16은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면 이런 악한 짓을 한 발람은 어떻게 됩니까? 민수기 31:7-8은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스라엘을 해치는 방법을 발락에게 알려줬습니다. 이것을 보면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를 줍니다. 아무리 말씀을 알고 말씀을 전해도 정말 우리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통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도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했습니다. 심지어 저주와 축복을 하면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해를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직 축복만 해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꼭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받을 일만 하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받지 못할 일을 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바로 잡아주십니다.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십니다. 우리가 쓰러지면 일으켜주십니다. 슬퍼하면 위로해주십니다. 낙심하면 격려해주십니다. 이런 것은 너무나 좋지요.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악한 길로 가면 못 가게 하십니다. 못된 습관이 있으면 그것을 끊도록 고통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것에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축복의 길이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이웃도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우리가 그를 해치면 하나님이 우리를 무섭게 벌하실 것입니다. 물론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그러시는 거지만 우리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이웃이 불신자라고 해도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불신자를 해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을 축복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로만 축복하고 행동으로는 망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오직 축복의 길로만 이끄십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도 축복을 전하며 우리 자신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풍성히 받는 귀한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