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주의에 빠진 별들 물갈이하고 40대 영관급으로 새 진용 짜야”
민병돈 전 육사교장“국가 간 전쟁은 지도자 간 격투의 확대판 김정일이 이명박 대통령 만만하게 본 것”
“요즘 장교들 군인이 아닌 군복 입은 샐러리맨 같아 천지개벽할 각오로 영관장교들 사단장·여단장에 앉혀야”
“윗사람 눈치보고 말 잘하는 사람들만 출세 진짜 싸움꾼은 도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개혁이 아니라 혁명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 발가락이 시릴 만큼 실내는 냉골이었지만 노(老) 장군의 입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난 12월 1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3동 경민대학 소석관 3층의 한 교수 연구실. 올해부터 이 학교에서 전임 석좌교수로 강의하고 있는 민병돈(75)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예비역 중장)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질타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군을 향해 격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엔 “후배들이 망령이 들었다고 할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워하던 그는 연평도 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문제삼다가 급기야 군을 향해 비수 같은 말들을 날렸다. “지금은 직업군인들이 아니라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처럼 보인다” “진짜 군인들은 다 도태된다” “군의 상부 구조를 완전히 집 허물듯이 바꿔버려야 한다”…. 평생 긍지와 애정의 대상으로 삼아온 군과 후배들을 향해 마치 자기 발을 찍는 심정으로 토해내는 얘기들처럼 들렸다. - 북한의 연평 포격 뉴스를 어디서 처음 접했나. “그날 하루 종일 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집에 돌아가 저녁 9시 뉴스에서 처음 도발 장면을 봤다.” - 무슨 생각이 들었나. “나는 북한이 포를 쏘든 기관총을 쏘든 어디선가 또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저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도록 길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 때만 해도 물밑에서 쏘고 자기들이 한 게 아니라고 발뺌했는데 이번에는 대낮에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해놓고 대놓고 자기들이 했다고 한다.” - 우리의 첫 대응이 적절했다고 보나.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청와대 측의 지시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왕좌왕이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잘못이다.” -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가. “남북대치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북한처럼 호전적인 정권을 상대할 대통령이라면 자리를 맡기 전부터 저들이 도발해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줄 테니까 제발 건드리지만 말아달라’고 하지 않을 바에야 도발할 경우 저들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응징을 하겠다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 전면전도 불사하자는 얘긴가. “우리도 그렇고 북한의 인민들도 그렇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의식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우리가 아무도 안 다치고, 맛있는 것 다 먹고, 따뜻하고 시원한 데서 살면서 저들을 극복하겠다? 그건 말이 안된다. 결정타를 때리려면 우리도 몇 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떻게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서 저쪽을 응징할 수 있나. 우리도 계산된 리스크를 걸어야 저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무모한 게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고 맞는 것과 계산하고 맞는 것과는 충격이 다르다. 하지만 경험상 저쪽도 생사를 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전면전은 벌이기 어렵다고 본다.” - 북한이 쉽게 전면전을 각오하지 못한다는 얘긴가. “북한이 아니라 김정일이다. 전면전을 벌이려면 김정일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김정일은 김일성과는 다르다. 김일성은 처절한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지만 김정일은 6·25 때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였다. 미군의 폭격과 불바다만 봤을 것이다. 김정일은 겁이 많다. 특히 건강이 나쁘면 생각도 위축되고, 사치와 호사를 누리면 전쟁 같은 엄청난 일은 피하게 된다. 김정일이 말로는 떵떵거리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 그럼에도 저들은 도발을 해오고 있고 추가 도발 전망도 높다. “상당 부분 우리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다. 김정일이 우리 대통령을 우습게 본 것이다. 저들도 천안함 같은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계산과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이후 우리 정부는 저들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질 못했다. 나는 당시 대통령의 첫 반응을 아직도 기억한다. ‘북한에서 했다는 증거는 발견된 것이 없다.’ 김정일이 그 뉴스를 보면서 뭘 생각했겠나. ‘이럴 줄 알았다’며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말만 있었지 직접적 응징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더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전쟁론’을 쓴 독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Clauzewitz)의 말을 인용해 “국가 간 전쟁은 지도자 개인 간 격투의 확대판”이라고 강조했다. 호전적인 북한 정권과 맞서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그 누구도 아닌 김정일을 적으로 삼아 끊임없이 섀도(shadow) 복싱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일은 반응을 떠보기 위해 어디를 칠지 모르는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라며 끊임없이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차 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의 전쟁은 처칠과 히틀러의 전쟁이었는데 결국 단수가 더 높고 더 끈질긴 처칠이 승리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이런저런 세력을 끌어들여 표를 만드는 연구는 많이 한 것 같은데 대통령이 된 후 김정일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 이번에 대통령이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 해안포에 대해 폭격을 명령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았다. “아마 그랬으면 이 대통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CEO 출신답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대통령은 이번에 대기업인이 아닌 소상인의 모습만 보여줬다. 기회는 잡을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온다. 아무나 움켜쥐지 못하는 것이다.” - 이번에 복잡한 교전규칙이 우리 군의 손발을 묶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나는 현역일 때 교전규칙 따위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군인으로서 내 나름대로의 철학만 지켰다. 어차피 북한에 대해 우리는 선공을 못한다. 미군이 있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저쪽에서 우리를 먼저 공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저들이 다시는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한다는 철학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좌파 정권에서는 최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우리가 교전을 하다 북한에 혹시 피해라도 줄까봐 몸둘 바 몰라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이 바뀌질 않았나. 과거의 관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지금은 저들이 도발을 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두들겨 놓아야 옛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직업군인은 프로다. 다른 것이 필요없다. 자나 깨나 싸울 준비를 하면 된다.” -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군과 정보기관 등도 이번에 허점을 많이 드러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싸울 수 있는 군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야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다 아는데 전쟁터 지휘관에게는 승기(勝機)라는 게 찾아온다. 이걸 잡는 군인들은 싸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군인들은 말도 잘 못하고 학식도 높지 않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상황을 접하면 반사적, 본능적으로 행동이 나온다. 지금 우리 문제는 그런 타고난 싸움꾼들이 군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싸울 줄 아는 군인’의 전형으로 베트남전에서 1966년 둑코(Duc Co)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춘근 예비역 중령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맹호기갑연대 3대대 9중대를 이끌던 이 중령(당시 대위)은 캄보디아 국경 인근 둑코에서 베트민 정규군 1개 대대의 야간 기습 공격을 받았다. 당시 이 중령은 신임 중대장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이임을 앞두고 있었으나 중대원들의 만류로 하루를 진지에서 더 묵다가 적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함께 취침하다 적의 포 소리를 듣고 먼저 뛰어나간 신임 중대장이 전사하면서 전장에서 자동으로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교통호로 뛰어나가며 이 중령이 던진 첫 명령은 “내가 지휘한다. 준비한 대로 싸워라”였다. “이 중령은 짧고 간단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명령으로 긴박한 순간 상황을 장악했다. 누가 지휘하는지를 명확히 하면서 함께 진지를 구축한 중대원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결국 베트민군은 한국군을 혼내주겠다며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했지만 참패했다. 내 육사 동기인 이 중령은 언론과 인터뷰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말주변이 없다. 하지만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나중에 그에게 승리 비결을 물어보니 ‘철통같이 준비했고 적을 먼저 발견해 확신을 갖고 훈련한 대로 싸우게 했다. 나는 그것밖에 한 게 없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런 싸움꾼은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서 윗사람들 눈에 잘 띄질 않는다. 대신 빠릿빠릿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출세한다. 싸움꾼들은 대체로 중견 간부 정도 올라가다 도태된다. 지금 그게 문제가 되고 있다.” - 현재 군 지휘부에 실전 경험이 있는 장교들이 없는 게 문제라는 말인가. “꼭 실전 경험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베트남전 이후 20여년간 이렇다할 실전 경험이 없었다는 건 다 안다. 문제는 적재적소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군 최고 수뇌부까지 오른 모 장군 중 육군대학에서 나와 함께 교편을 잡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교관으로서는 최고였다. 하지만 전방 대대장으로 부임한 후에는 큰 상황이 벌어지면 매번 실기를 했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결심을 못했다. 옆 부대 대대장이 나를 찾아와 ‘무능 지휘관’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최고 자리까지 올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제발 그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전쟁이 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 현재 대통령도 군 개혁에 대한 의지가 높다고 한다. “대통령이 장관한테 강군을 만들고 개혁을 하라고 했다는데 어떤 개혁이냐가 문제다. 장비 개선이 아니라 장비를 사용할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다. 아무리 장비가 좋으면 뭐하나. 책임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책임지는 걸 두려워하고 목숨을 걸지 않는데. 직업군인이라면 ‘이순신 식’으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죽지 않고 명예만 지키며 더 오래 더 높이 올라갈 생각들만 한다. 야전이건 기획부서건 똑같다.” - 우리 군 지휘관들이 그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보나. “별 단 후배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쓸 만한 후배들이 얼마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문제는 진짜 군인이 도태된다는 점이다. 우리 군도 이제 젊은 군인들 중에서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우리 군 지휘관들은 인사권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다. 제대로 가혹하게 평가하면 서로 원수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때문에 개혁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 보신주의에 빠진 나이 든 군인들은 내보내고 젊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혀 전권을 줘야 한다. 니네들 마음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강한 군대를 만들라고 맡기고 훈련 중 인사사고가 나도 문책을 하면 안된다. 대통령한테 장관이 건의해 군의 상부구조를 완전히 집 허물듯이 바꿔버려야 한다.” 그는 무사안일에 빠진 우리 군 수뇌부의 치부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군 후배한테 전해 들은 일화를 꺼내기도 했다. “DJ(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 막 전역한 ROTC 출신 예비역 중령이 하소연한 얘기다. 그가 전방에 근무할 때 사단장이 추석 직전 전통을 내려보냈다. 전통 내용이 추석을 기해 포상휴가를 보내려고 하니 사고를 낼 위험이 있는 자들, 전과자 등을 골라서 포상휴가를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이 얘기를 해준 장교는 자기 부대에서는 그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상식대로 모범 사병들을 포상휴가 보냈다. 그런데 그후 사단 감찰 참모가 감찰을 나왔고 사단장한테 끌려가 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높은 자리에 있는 군인들이 절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단장이 자기 부대에서 사고가 나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니 기회만 되면 사고 낼 만한 놈들을 내보내려는 보신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해준 예비역 중령은 자기가 모셨던 사단장을 ‘똥별’이라고 부르며 얼마 못 가 옷을 벗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사단장은 한참을 더 승승장구했다.” - 지금도 군 상층부에 그런 문제가 여전하다고 보나. “지금도 그대로다. 점점 더 약아지고 머리만 좋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장교들을 보면 직업군인이 아니라 군복 입은 샐러리맨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혁명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 천지개벽을 한다고 각오하고 능력있는 영관장교들을 사단장, 여단장에 앉혀야 한다. 지금 영관장교들도 보통 40대다. 6·25 때는 30대 사단장도 있었고, 이스라엘이 치른 6일전쟁 때는 40대의 여단장이 영웅이 되기도 했다. 나도 6일전쟁 때 영관급이었는데 동료 영관급들끼리 모여 ‘싸울 수 있는 건 젊은 군인들’이라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밤낮 계산이나 하다 상황이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도 1975년쯤 공식적으로 ‘싸움은 젊은 간부들이 잘한다. 연령을 낮춰 젊은 간부들을 싸움꾼으로 만들라’는 교시를 내린 적도 있다.” - 우리도 본받을 만한 군 지휘관들이 많지 않나. “물론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 때 7사단장을 지낸 정봉욱 장군 같은 분이 대표적이다. 정 장군이 7사단장으로 있을 때 인민군이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에 들어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포병 출신인 정 장군은 전 사단 화력을 동원해 적 침투 지점을 때리도록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우리 쪽 비무장지대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저들이 시체와 총을 다 수습해 갔는데 급해서 버리고 간 총들도 있었다. 당시는 한미연합사가 있기 전이어서 미8군 사령관이 정 장군 옷을 벗기라며 노발대발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포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지 않고 우리 쪽 비무장지대에만 떨어졌다는 점을 이유로 정 장군의 보직만 바꿨다. 당시 정 장군은 포를 쏘고 나서 GP에 올라가 상대방 사단장을 향해 ‘다시 까불면 네 머리통을 겨누겠다’며 직접 대북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후 7사단에는 적의 도발 없이 상당 기간 잠잠했다. 7사단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나 3사단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때는 사단장인 박정인 장군이 한술 더 떠 비무장지대 저쪽 북한군 GP 벙커를 포로 때려 박살을 냈다. 그때는 8군 사령관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박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박 장군의 옷을 벗겼다. 요즘에는 이런 사단장들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독하게 응징하면 전부 미친 놈 취급하는 분위기다. 일례로 김영삼 정권 시절 잘나가던 모 장군은 군단장 때 북한군이 우리 쪽으로 넘어와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쥐고 흔드는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그걸 못 쏘게 했다. 나중에 합참에 올라와 ‘조용히 끝났는데 알고만 계시라’며 대면보고를 한 게 전부라고 들었다. 문제는 지난 문민정권을 거치며 그런 군인들이 다 승진하고 출세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후배들도 적이 도발해도 응징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는 게 잘하는 일이라고 보고 배운 것이다. 눈치 빠른 놈들일수록 그런 못된 길로 더 빨리 빠진다. 이러니 내가 개혁이 아닌 혁명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현재 군 엘리트를 키우는 사관학교 시스템은 문제가 없다고 보나. “내가 교장을 맡았던 육군사관학교도 요즘 보면 문제가 있다. 생도들이 군복 입은 대학생들 같다. 사관학교라기보다는 군사대학이다. 다른 군인에 비해 유식할지는 모르지만 싸울 줄 아는 장교를 키우는지 의문이다. 요즘은 대학원 다니고 학위 따면 승진도 유리하다고 해서 생도들이 대학원 다니는 것이 유행이다. 적하고 싸우는데 학위 증서를 깃발에 꽂고 싸우나. 전장에서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사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한다. 임관 선서를 하면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약속한 장교들이 목숨만은 못 내놓겠다는 태도를 보이면 어떻게 나라가 지켜지겠는가. 반면 북한은 군관학교 등에서 이념교육, 주체사상 교육에 전념하면서 ‘남조선의 형편없는 제국주의 앞잡이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장교들을 싸움꾼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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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으로 감사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