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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4년 1월 10일 토요정례법회 ○
청년강연
'정산종사님'을 주제로
일맥상통 1단의 중앙을 맡고 계신 황원공 교우님께서 강연해주셨습니다. (짝짝짝!)
질문과 답변
류현진 교우님 :
정산종사님께서 7세와 9세 때 세우신 서원을 듣고 충격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김제원교무님께 지도를 받고 지금 서른 살이 되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서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황원공 교우님 :
이번 훈련을 나면서 서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은 많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교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에게 역할이 있고, 교단에 공심으로 내 일 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이든 교법대로 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은 낮은 근기에서는 스승님 말씀을 받드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서원이다.
이현도 교우님 :
작년에 방황을 하셨다고 했는데 지금 방황하고 계시는 교우님들께 이 말은 꼭 전해 주고 싶다 등 간단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다.
황원공 교우님 :
그것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작년 한해를 돌이켜보면 입교한 이후부터 돌이켜 보아도 교무님 말씀을 따라서 손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정말 큰 이익이 되었다.
내가 교무님 말씀을 어긴 적이 많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땅을 치면서 후회할 정도의 손해와 안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 당시 교무님이 좋은 방편을 제공해 주셨을 때 제 사량으로 계산을 하고, 못할 거 같은데요 라면서 도려 설득하려 했었다.
방황기에 들을수록 교법과 가까이 있는 것이 빨리 방황기를 접는 것이고,
자기가 딱 문제가 있다 싶으면 스승님께 빨리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메일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거 같다.
김명선 교우님 :
정산종사님처럼 황원공 교우님도 중앙님이 되셨는데 신과 서원을 받치는 것은 다 비슷한 거 같은데
1단을 맡으신 포부와 정산종사님과 다른 그 부분을 어떻게 소화시킬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황원공 교우님 :
과분한 단에 과분한 중앙 자리를 맡게되서 시킨 것만 잘하자 였는데 시킨 것도 잘해야겠다.
시킨 것도 잘하고 그 외에 것도 연마 잘해서 잘하겠다. 단원불공 열심히 하겠다.
'안암교당 7일간의 출가여행' 감상담
사진(왼) : 남궁부 / 최성양 / 김호겸 교우님으로부터 훈련의 소중한 소득을 함께 나누는 시간 있었습니다.
인도 델리교당에서 오신 원현장 교무님과 함께
* 김제원 교무님으로 부터 소개 말씀
반갑습니다.
오늘 반찬이 많은 것 같다. 정산종사님에 대한 강연, 출가여행 감상담도 3분이나 해주셨다.
인도 출신으로 원불교학과를 졸업하시고 출가해 오셔서 현재 신림교당에 근무하시다가 인사이동이 되셔서 인도 델리에서 근무하신다.
외국인이 원불교 법명을 받을 때는 원씨가 된다. 그래서 독일 출가 교무님이 원법우,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이 원현장 교무님.
이번 8월 말에 우리가 인도에 가게 되지 않겠는가.
현장 교무님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잘 나가던 의대생이 느닷없이 한국에 간다는 것이다.
내가 부모 같으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좀 있다가 여동생도 출가하여 한겨레 학교에 근무하고 계신다.
네팔에서도 3형제가 출가하여 교무를 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공부하기가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아프면 의료보험도 안된다고 한다.
나 같으면 성질나서 가버릴 것도 같은데 원불교학과에서 가장 모범적 삶을 사셨다.
내가 후배지만 참으로 존경하는 분이시다. 이런 분들이 어떻게 우리 대종사님 법을 멀리서 알아보시고 오셨을까.
박청수 교무님과 인연관계가 있으시지만 타국까지 오셨는데 가장 모범이셨으며 적극적이셨다.
어떻게 보면 전생의 인연, 인도를 교화하기 위해 태어나셨다가 다시 인도로 가신 분이신 것 같다.
우리는 한국에 있으면서 원불교를 모르기도 하고, 부모가 가라는데도 전무출신을 못하는데
외국까지 와서 전무출신 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모시고 이야기 들어보겠다.
* 원현장 교무님 말씀
반갑습니다.
교무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는 인도 출신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도사람들이라고 하면 검은 피부를 생각하는데, 나는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피부가 하얘졌다.
내가 2004년에 인도 델리교당에 발령받아 개척교화를 시작했다.
4년만에 오는데, 그것도 짧은 시간이다. 이렇게 교당에 와서 기쁘다.
법명은 원현장이다. 둥글 원. 검을 현. 글 장 자이다.
고향은 히말라야 라닥에서 태어나서 그리고 인도에 IT본부로 알려져 있는 벵갈로에서 교육을 받고 원불교 쪽으로 넘어왔다.
강남교당에서 간사공부를 했다. 그리고 학교를 똑같이 다녔다.
인도에서 학교를 다녀서 2학년에 편입하여 대학원까지 해서 졸업하고, 신림교당에서 2년을 근무한 후 인도에 가서 개척교화를 시작하였다.
인도를 아는가?
우리 원불교 쪽으로 보면, 인도는 어떻게 관계가 있는가.
석가모니불이 나신 곳이다. 그리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면 석가모니는 연원불이며 인도는 연원지가 된다.
서품 2장에 보면 부처님은 성인 중의 성인이라, 내가 앞으로 회상을 열 때에도 부처님의 법문을 중심으로 해서 하겠다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불교가 사람들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는 종교인데 2500년 역사 속에서 흘러오며 지금 그만큼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조금 변화를 시켜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한 종교로 만든 것이 바로 원불교이다.
사실 한국말이 어려운가, 아니면 쉬운가?
어렵다. 단어 앞뒤만 바뀌어도 의미가 달라진다.
‘선생’ 바꾸면 ‘생선’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는데 한 친구는 ‘생선님’ 이라고 하더라.
한문을 모르면 더 힘들다.
우리 교전은 다른 종교와 달리 대종사님께서 직접 편찬하셨다. 그런 경전이 없다.
불경을 보아도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적었다. 그래서 다 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셨다. 이 정도만 하면 다른 거 안해도 된다.
팔만사천경도 부처님께서 설하셨을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위치에 맞게 설하셨지만, 사실 내용적으로 보면 다 마음공부하여 대각의 경지까지 도달하자 한 것이다.
인도는 엄청나게 큰 나라이며, 쓰는 언어가 800개 이상 된다. 그리고 35개 주가 있다.
35개 나라가 모여서 한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된다. 교육부장관도 36명, 교통부장관도 36명이 된다.
35개 주에 중앙정부 포함하여 36개이다.
그만큼 인도는 음식도 말도 다르다. 지역마다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인도는 참 재미가 있다. 가는 곳마다 다르다.
과일도 북쪽 동쪽 서쪽이 다르다. 인도인이 영어도 잘 하고 자원도 많고 그러니 경제적인 부문에도 발전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모든 사람들이 인도에 오고 있다.
그리고 인도하면 생각나는 것?
계급사회? 카레? 종교있죠.
인도에 가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고, 거지들도 많다. 서양인들이 지쳐서 지쳐서 다 던지고 찾아오는 나라가 인도이다.
그런 나라에서 원불교 교법을 잘 전파하면 전 세계에 대종사님 법문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으로 보면 80%가 힌두교. 12%가 이슬람교, 그 외에 기독교가 2%, 불교는 0.7%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기회다. 왜냐면 불교에서 받는 혜택 우리가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앞으로 10~20년 더 투자해야 한다.
연원지이고 지금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리고 세계적으로 교화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인도이다.
지금 인도 라닥에 교당이 생겼고, 델리에도 생겼다.
인도 델리에서는 2007년 11월 16일에 봉불식하고 교화를 시작하였다.
일요일에 법회 보는 인도인이 많을 때는 30명까지 나온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오면 원불교가 생소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리고 일요일에 꼭 법회를 본다는 것을 가장 즐거워한다.
그리고 아침에 선을 하고 저녁에 기도를 하니 사람들이 계속 찾아온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공부를 잘 하셔야 한다.
대종사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금강산의 주인은 어디서 나온다 하셨죠? 한국이죠.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금은 청년이지만 10-20년 후에는 교당을 이끌어가는 중심 재가분들이 되신다.
인도에서 하나 배울 것은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됐지만 지금 13억 인구 중에 0.7%이면 아무것도 아니죠. 왜 그렇게 됐느냐.
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국에서 가지와 나무 잎만 뻗다가 뿌리가 마르니 다 없어지는 것이다.
대종사님 법은 한국이 아주 중요하다.
밖에서 보니까 안암교당 처음 왔는데 교당이 일원상 모양으로 되어있고, 다 일원상이 모셔져 있다.
여러분들도 다 얼굴이 동글동글하다. 공부를 잘 하니 여러분들도 다 닮아가는구나 싶다.
원불교에서 청년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교당이 없을 것이다.
내가 신림동에서 보니, 청년들은 10명 정도 나오니 재미있게 법회 볼 수 있더라.
여러분은 법회 볼 수 있는 조건이 잘 되어있다.
특히 교무님같이 훌륭한 스승님 모시기가 참 어려우니, 계실 때에 옆에서 많이 배워야 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어야 한다.
또 대종사님께서 한국말로 밝혀주셨으니, 여러분들은 시간만 내서 마음만 챙기면 충분히 읽을 수가 있다.
인도에서는 영어로 배우는데, 영어로 배우는 것과 한국말은 차이가 있다. 여러분들은 한국말로 배우니 충분히 배우고 실행할 수 있다.
한국말이 한문을 모르면 배우기가 어렵다. 여러분들은 아는데, 외국인들은 그것을 잘 모를 수 있다.
여러분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종사님의 법을 쉽게 배울 수가 있다.
내가 처음 배울 때 한문을 하나도 몰라서 어려웠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종사님이 너무나 상세하게 밝혀놓으신 것이다.
우리는 따라서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가끔씩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요란해져서 교전과 점점 멀어진다.
이 두 가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복을 많이 받으셨다.
교무님도 계시고 3시간이나 법회 보는 것도 즐겁다.
우리가 일주일에 2시간 정도는 마음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는데 시대가 점점 밝아지면서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인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러분들도 인도에 오신다니 환영한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질문과 답변
김명선 교우님 :
어떤 고민이 있으셨을 때 출가하겠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하다.
원현장 교무님 :
고향이 히말라야였어요. 남쪽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인도는 지역마다 다 다르다.
문화가 다르고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생겼다. 같은 나라인데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생기고, 왜 이렇게 됐을까.
남녀평등 때문에 만나게 됐다.
찾다찾다 보니 한국에 있는 원불교에서 이렇게 한다.
마침 박청수 교무님께서 세계 불교대회가 있어서 그분이 오셨다.
참석하시는 것 보고, 영어는 모르셨는데 하실 것은 다 하시더라.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여기는 다르겠다.
또 이스라엘 출신 한 분이 계셨다.
옛날에 승산스님 제자셨는데 박청수 교무님이 도와주시니까 원불교 중앙총부도 가보고 그러다가 그 분이 인도에 왔었다.
그 분도 원불교를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세웠는데 영어로 안되고 한국말로 공부해야하니깐 법명까지 받았는데 나갔던 걸로 알고 있다.
그 분이 왔는데 원불교에 대한 이렇다 저렇다 하며 많은 걸 알려주셨다.
특히 동남아쪽을 보면 여자들은 항상 억압을 당하죠.
남녀차별이 심해서. 그런데 원불교에 와보니깐 남녀차별이 아니라 여남차별이 있어요. ^^
박순명 교우님:
원현장 교무님을 저희 고모가 원광어린이집에 근무하실 때 뵌 적이 있다.
그리고 신림교당에 근무하실 때 찾아가 뵌 적이 있는데,
법회를 보는데 청년들이 10명 남짓이 늦게 와서 시간 길다고 하고,
또 그날 단편성을 하는데 교무님이 단편성 이상하다고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성직자를 우대를 하고 현장교무님도 인도에서 최고 계급에서 태어나시고 교육도 받으셨는데,
한국에 와서 청년들에게 존경도 못 받으시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원현장 교무님 :
원불교와 대종사님 교법과 다른 종교를 보면, 다른 종교 성직자들은 항상 위로 받들고 그러는데,
제가 신림교당에 부임해서 갔는데 거기 법사님들이 계시더라.
그런데 그분들이 부교무님 커피타다 주세요, 물 갖다주세요. 과일 갖다 주세요 하더라. 근데 그게 맞다.
물론 교무가 되었지만 우리가 함께 공부한다고 해서 출가한 것 아닌가. 받들고 이런 거 받을려고 출가한 것 아니다.
원불교 교무님들을 보면 항상 일을 하고 계시고 바쁘시다.
대종사님께서 우리도 될 수 있는 데까지 자력으로 해라. 자력을 강조하는 종교인데 거기서 대우 받는 것은 맞지 않다.
오히려 청년들과 같이 그러면서 마음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고생을 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그러지 않으면 정말 모른다.
경계 때문에 쓰러질 것 같다고 그러는데 저도 그랬다.
나도 2군데 교당을 설립하면서 보니 머리가 다 빠지더라.
교당 설립하신 교무님들 말씀 들어보면 삼세 억장이 다 녹는다고 하셨다.
인도에 계신 스님은 한 번 건물을 지으면 인생을 배운다고 하셨다.
내가 인도에서 교당 지을 때 하루에 한 번, 아니면 일주일에 서너 번은 경찰서에 끌려 갔었다.
갇혀있다 풀려나고 갇혀있다 풀려나고 그랬는데 그 과정에서 저절로 마음공부가 되었다.
경계라는 것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느낄 수 있는데,
경계가 있으니 내가 향상되고 발전되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겠다.
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낀다.
학교 다닐 때도 방에 같이 있는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안 돼서 일기를 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경계가 있으면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한다.
신림교당에서 있었던 것은 오히려 재미있었다.
권도훈 교우님 :
짧은 시간에서도 와 닿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좋은 조건이 있는데 속에서 공부도 못하고 놓치는 것도 많다.
현장교무님은 한국 분이 아니신데도 한국말 공부하면서 대단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시고 공부하시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한국에서도 교화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인도에서 교화하기 위한 노하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도에서 불교가 나왔는데 다른 나라에서 다시 들어오면 자존심도 상할 거 같다.
원현장 교무님 :
교화하기 위한 방식에 있어서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불교의 교화가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하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에 맞게 가야 원불교가 성공한다. 앞으로 그렇게 교화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인도는 선(禪) 위주로 하면 잘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법회 때 선을 하면 10분, 길게 해도 20분정도 한다. 인도에서 이렇게 하면 재미없다고 한다.
선을 3~40분 정도 해야 한다. 20분 정도 하면 재미없어 한다. 처음에 20분정도 하다가 지금은 3~40분정도 하고 있다.
즉 인도에서는 선이라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고, 모든 종교 가면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장소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그런 것을 해줘야 한다.
설교도 1시간하고 2시간하고 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5분도 하고 10분도 하고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 나는 교화를 한다는 생각을 안한다. 같이 공부할 뿐이다.
내가 교화를 한다고 하면 저도 힘들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도 힘들다.
같이 공부를 한다는 개념으로 가니까 사람들이 더 오는 것 같다.
델리교당에 큰교무님 길타원 윤순명 교무님이 계신다. 그분이 한국말로 설법하면 제가 영어와 힌디어로 같이 통역한다.
델리교당에서 법회 볼 때 쓰는 언어가 4~5개 정도 된다. 인도에서는 지역마다 교당마다 문화가 달라야한다.
인도에서는 델리교당에서 매일 법회가 있고, 매일 쓰는 언어가 다르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언어를 쓴다는 자존심 때문에 많이 온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힌디어로 교전을 출판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아타원 전팔근 선생님이 예전에 해외 쪽으로 교화를 많이 하셨다.
교전을 정역위원회에서 발간 이전에 그분 것을 사용했는데, 말이 잘 안 맞는 것이 있고 건너건너 하다보니 잘 안 맞는 것이 있다.
그것을 다시 발간을 해야하는데 델리교당에 그 정도 힘이 안 돼서 아직 못하고 있다.
힌디어 경전 하나만 있다. 영어로 하고 힌디어로 한 번 읽어주고 이정도 하는데, 언어마다 하면 아마 엄청나게 올 것이다.
인도에서 사람이 없어서 교화가 안 될 것이라는 걱정은 없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가끔씩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찌할까 하는 걱정은 된다.
지금 별로 홍보도 안하고 있는데 3~40명정도 본다.
지난 번에 상사님 오셨을 때 생각한 것이 있었다.
토요일 점심 때 시작해서 일요일날 법회까지. 저녁도 거기서 먹고 교당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선을 하면서 저녁에 원불교 법문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다.
선만 하니까, 그리고 예전에서는 동하선 3개월씩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 하니까, 상사님께 물어봤었다.
토요일에 오면 토요일 9시까지 선하고 10시에 잠 자고, 새벽 4시반에 깨워서 법회까지 보고 가게 하면 사람들 많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럴 경우에 점점 준비하면서 해야 한다.
우리가 작년에 봉불식하는데, 2~30년 선교를 한 한국 교회도 있다.
한인회가서 봉불식하는데 오라고 했다. 회장님이 기독교분이다.
그런데 원불교 한국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여기에서 봉불식한다니 잘 이해도 안 되고 놀랍다고 했다.
기독교가 30년 넘었는데도 건물도 못 짓고 있는데, 인도가 어려운데 땅을 사고 건물사고 시작하니 기분이 나빠서 못 온다고 하였다.
그분이 정말 기분이 나빠서 안 오셨다.
인도가 굉장히 어렵다. 한국에서는 전화 한통으로 해결되는 일이 인도에서는 수십 번씩 가봐야 한다.
건물도 되고 하니까 2~30년 해도 안 된 이웃종교에서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인도 사람들 교화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 보면 한국에서 와서 인도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인도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원불교와 다른 종교 차이가 있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한다.
상사님 와서 법회를 보는데 그 날 온 사람들이 삼세의 업장을 다 씻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왜 원불교가 93년 됐는데 그 때까지 안 오고 한국에서만 있는가 라고 했다.
가능성은 많다. 대신 여러분이 여기서 공부를 열심히 하셔야한다.
박원허 교우님 :
원불교에 대한 관심이 남녀평등에 대한 것으로 생기셨다고 했는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인도가 종교의 나라여서 모두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무님께서 종전에 가지셨던 종교와 내적 갈등은 없었는지.
그리고 여동생까지 원불교 교화를 시키셨는데 가족간 불화는 없으셨는지 궁금하다.
원현장 교무님 :
나는 티벳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티벳 사람은 아닌데 인도의 티벳 불교.
인도의 라닥은 티벳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인도에서는 가방 훔쳐갔다 사기 쳤다 하는데 라닥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 라닥은 지금도 열쇠를 잠그지 않는다.
인도와는 완전히 문화가 다르다.
아버지가 겨울에 3개월 동안은 꼭 묵언정진을 하셨다.
어렸을 때 보면 아버님은 저녁 식사도 안하시고 말도 안하고 방에서 경만 읽으셨다.
라닥에서는 집을 지을 때 세 가지를 먼저 한다. 법당, 화장실, 거실 순이다. 집마다 법당이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경전만 읽고 아버지가 말도 안하고, 그래서 눈 많이 내리니 썰매타고 잘 놀았다. 스님보다 더 열심히 하셨다.
나도 어렸을 때는 티벳 불교 스님이었다.
티벳불교는 원불교처럼 전문학교를 다니지 않고, 스님 한 분을 모시고 계속 따라다니며 배워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화장실에 가시면 화장실 앞에 서 있기도 했다.
그런데 티벳불교에서 술을 좀 한다.
하루 어디 다녀오셨는데 저 말고 다른 선배 분이 있었는데 술 드시고 와서 선배가 도망갔더라.
나도 집에 갔다가 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안갔다.
우리 집에 암자가 있는데 할아버지 중 한 분이 스님이어서 암자가 있다.
부모님이 다 불교 다니시고 하셔서 가족 중에서는 그런 문제는 없다.
원불교에서 하는 공부를 아버님께 말씀을 많이 드리고 싶었는데, 간사 근무할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뵙지를 못했다.
동생이 한겨레학교에서 근무하는데, 거기 가보니 동생이 없으면 안되겠더라.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이 바로 남조선이라고 하는 우리들에게 가면 거부감이 있다고 한다.
중간에서 외국사람이 관리를 해주고 훈련이 되면 위로 올려준다고 한다.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우리 조카 한명도 원광대 보내서 한국말 좀 공부해서 출가시키려고 일년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고 해서 델리교당 가서 공부하고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우리 조카들이 한 30명 정도 된다. 적어도 10명 정도는 경호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황원공 교우님 :
티벳 문화와 한국 문화를 다 체험하셨다.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수양인으로서 티벳 청년들보다 부족한 부분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원현장 교무님 :
나는 부족하다는 것은 못 느끼겠다. 사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다 부족한 사람이다.
서로 배울 점이 있다.
티벳 사람들은 신심이 매우 대단하다. 우리가 배울 것은 신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거꾸로 티벳불교에서 원불교에 배울 점은?
첫째는 화합단결이다. 불교는 화합단결이 없다. 그래서 인도에서 불교가 없어졌다.
티벳불교도 달라이라마 스님이 있지만, 그 안에서 4개 종파가 있고 부분적으로 10개 정도 있다.
서로 밀고 치고 하는 것도 있다. 다른 종교가 볼 때는 그런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다.
원불교에서 인도에서 대종사님의 법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를 다시 살리는 역할도 중요하다.
원불교가 인도에 가면 이런 면에서 단합해야한다.
저도 이것을 하려고 한다. 내가 요즘 델리 네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이런 조건이 되니까 내가 불교의 각 다른 종파 스님들, 인도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델리교당에서 회화하도록 하겠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많이 한다.
원불교가 빠지면 한국 종교들이 화합이 안 된다는 말을 누가 하더라.
4년전에 비행기 타고 가는데 홍콩을 경유해서 갔다.
거기에서 1시간 쉬는데 밖에 못 나가니까 안에서 얘기를 했다.
그 때 이건희 회장 따님이 미국에서 불상사가 있었는데, 뒤에 어떤 아주머니들이 “삼성 일가가 원불교 교도래.” 이런 얘기들을 했다.
그 때 일어나서 어깨를 펴고 “저도 원불교 사람입니다.” 했다.
그 사람들은 1시간 동안 할 일도 없고 방송도 영어로 해서 못 알아듣는데, 이런 얘기하면서 재밌어 했다.
그 때 그 분들이 천주교 신자들이었는데 인도에서 어떤 학생이 지하철에서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는 사람을 따라서 한국에 공부하러 왔는데 교회를 안 가고 천주교에 왔다고 좋아하더라.
그 사람이 신부님이 되고 한국사람과 교화 같이 할려고 하다가 안 돼서 그 분 먼저 인도로 보냈는데, 그 신부님 생일이라고 축하해주러 간다고 그러셨다.
그 분들이 한국에서는 원불교가 없으면 종교가 단합이 안되고 서로 싸우고 난리치고 한다고 그러셨다.
그런 부분을 우리가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종법사님께서 뭐라고 하시면 종법사님을 오롯이 받든다.
그러면서 원불교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 면은 서로 배울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들은 서로 배울 점이 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시는데 앞으로 인도에 오셔서 많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
인도가 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젊었을 때에 가봐야 인도에 잘 다닐 수 있다.
결혼하고 갈게요 하다가 결혼하고 애기 생기고 애들 자라면서 계속 미루다가 나중에 허리가 아파서 못 간다고 하더라.
우리 인도 성지, 부처님이 2500년 동안 돌아다니신 분이다. 멀다.
그리고 인도 불교를 믿는 인구가 없으니까 개발이 안 되어있다. 성지순례할 때 힘이 많이 든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는데 도로가 안 되어있다. 외국에서 많이 찾아오면 개발을 한다.
인도의 5년 계획에 인도 불교 성지순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서양 기독교 사람들이 불교 성지순례를 하려고 하니 엄청난 수입이 된다.
개발이 아직은 잘 되지 않고 있다.
성지순례 할 때 기본적으로 6~10시간 버스 탈 수 있다. 몸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많이 오시기 바란다.
김제원 교무님 말씀
일주일간 훈련 나고 온 사람이 21명이다.
아까 정산종사님에 대해서 원공교우님이 준비 많이 하셨다.
앞으로 금년에는 대종경에 나오는 초기 교단의 선진님들에 대해 강연하도록 계획이 잡혀있다.
다양하게 하면서 선진님들을 알아가도록 하겠다.
우리가 데카르트, 플라톤 이야기를 하는데 선진님들을 모르더라.
우리가 살아있는 최근의 불보살 선진님들을 아는 것이 원불교 문화도 알고 전통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 속에 대종사님의 사상이 담겨있다. 원공교우님께서 모범을 잘 보여주셨다.
우리도 인터넷 자료와 도서관 책자를 통해서 좋은 강연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장 교무님 말씀 들으면서 많이 배웠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선(禪)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한데, 이것을 해서 그 맛을 좀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 훈련 때 내가 소식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틱낫한 스님도 그것을 강조하셨다.
먹는 것, 식사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소보다 더 먹는 것 같다.
그런데 먹는 것이 마음이 동해 몸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도 정말 공부다.
식사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마음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먹을 때의 마음이라든가 환경 문제, 그리고 밥을 많이 먹으니 피가 위로 가서 소화시키려 하니 심장에 무리가 생기고 식곤증에 시달린다.
아까 오다 보니 어떤 차가 사고가 나 있더라.
저 사람이 분명히 차가 엎어진 것은 졸려서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밥 먹는 것 하나도 공부다.
우리의 기쁨과 재미 중에 법을 만난 것도 그렇지만 머리가 시원할 때 매우 기쁘다.
나는 여러분 시절에 몸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소식하며 호흡하니 너무나 진경에 들고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식사를 더 하게 되고 몸이 불어나게 되더라.
내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이번에 훈련 난 사람 분명히 소식할 것이다.
그런데 훈련난 사람이 소식하려 하는데, 안 난 사람이 그것 먹고 어떻게 살아 하면 안된다.
여러분이 보통 사람 먹는 것의 1/3만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 아주 상쾌합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더 납니다.
내가 미국 일본 한국사람 비교한 데이터를 보았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 일하는 노동시간이 미국 일본 사람보다 훨씬 많은데도 그 효율이 60%밖에 안된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먹는 것의 많은 것을 배출시키지 못하니 소화를 못하니 저축을 하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리카에 가면 그 자원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금수초목까지도 우리는 사은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버린다. 그것이 천지의 배은이다.
우리에게는 호흡의 기쁨이 있다. 호흡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식사문화도 하나의 습관이다.
안암교당이 헌배 사경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식사 문화를 천지 보은과 수행 마음공부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란다.
먹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차라리 조금 먹고, 유기농을 사서 드시기 바란다.
입맛이 바로 달라진다. 밥 먹으면서도 먹고 나서도 훨씬 좋다.
많이 먹을수록 뚱뚱해지고, 게을러지고, 수면시간도 늘어난다. 몸을 건사하지 못하고 무슨 성불제중인가. 안 그런가.
먹을 때에 마음을 챙기기 바란다. 틱낫한 스님이 먹을 때 생각하고 숟가락 들 때 생각하라 하셨다.
그리고 육식. 우리 계문에도 있다. 너무 즐겨하지 마시고.
앞으로 교당에서 피자 통닭 시켜먹지 말라, 그것 시켜먹을 돈 있으면 나 주라,
이것이 싫으면 다른 교당 가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짝짝짝! 은전교우님 후기 감사해요 ^^
은전교우님 진짜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은전 짱b 감사해용^^
청년 게시판만 읽어도 시야가 넓어진다. 두루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