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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의 특별한 사진전 '사진과 시와 서예의 만남' 2007년 12월 5일 ~ 12월 11일 갤러리 나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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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 그분은 재주가 참 많다. 詩와 書 그리고 사진, 학문적인 깊이, 풍수지리 등등 그의 관심의 폭은 넓고도 다양하다. 그동안 사진 관련 글을 오래 연재하고 개인전을 두 차례 열다보니 사진계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보다 앞서 언론계에서 인터뷰 기사 잘 쓰는 기자로 명성을 날렸고, 시집과 꽁트 소설을 쓰는 문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시서화에 능했던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열세 살부터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으니 50년 넘게 카메라랑 놀았어요. 어찌 보면 아내 이상의 반려자인 셈인데, 50년이 지나다보니 그냥 놀기만 한 게 아니라는 어떤 표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더라고요.” 오효진, 그분은 타고난 성품처럼 세상일을 쉽게 풀어간다. 괜스레 폼을 잡지도 않고 까탈을 부리지도 않는다. 순리대로, 그저 휘파람 불듯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산다. |
“지금까지 사진은 사진기로 촬영하고 인화하는 과정까지, 내 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 섭섭했거든요. 인화지의 느낌이 차가운 것도 좀 그렇고요. 그래서 한지 같은 종이에 프린트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디지털 프린트가 발달하면서 내가 상상하던 일이 이루어졌어요.” 그는 언젠가는 한지에 프린트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마치 먹으로 그린 산수화처럼 글씨를 쓰고 낙관을 찍을 수 있도록 여백이 많은 사진을 준비해왔다. 디지털 프린트로 그의 뜻을 펼 수 있게 되자 드디어 사진위에 자작시(自作詩)를 붓으로 써서 사진의 영역을 확장하는 전시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막상 해보니까 머리 속에서 구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프린트와 액자까지 최고 수준으로 만들고, 대신 에디션은 붙이지 않고 한 점만 유일본으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
그는 사진전시장에서 사람들이 사진 앞에 오래 머물지 않고 쓰윽 지나가면서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진에 글이 있으면 글을 읽기 위해서 발길을 멈추고 글과 사진의 연관성을 생각하며 더 오래 동안 감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전시를 준비하다보니 다음 작업의 아이디어가 팍팍 솟아요. 지금 이 작업을 계속하다가 초점 흐림, 즉 무초점의 추상적인 사진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군자를 배워서 다음엔 사진과 사군자를 접목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전시를 준비하다보니 사진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간 것 같다고 하면서 그는 즐겁게 웃는다. 사진을 전공한 분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인 것 같아서 깊이 들어가진 말자 생각하는데 자꾸 빠져든다는 것. SBS에서 초대 보도국장을 역임하고 국정홍보처장, 청원 군수 등을 지내면서도 사진책과 카메라를 늘 곁에 두고 살아온 그는 카메라만 130여 대를 보유하고 있는, 어떤 사진가 못지않게 사진을 사랑하는 애호가이다. |
“나이를 먹으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도 싫고 싫은 소리를 듣기도 싫고 그래요. 내 영역에서 편하게, 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 싶어요. 요즈음 나 하고 싶은 거 하니 너무 행복해요.” 그는 요즈음 사진에 써 넣을 시를 짓고 먹을 갈아 글씨를 쓰면서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감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시를 적던 종이와 글씨연습을 한 한지들이 둘둘 말려, 다른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하고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글을 짓고 글씨를 쓰고 사진을 찍은 말 그대로 사진과 시와 서예의 만남, 이는 장르의 파괴이기도 하지만 다른 장르와 만남이고 새 장르 만들기이기도 하다. 비로소 그의 다재다능한 진가가 한 눈에 드러나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충북 청원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전시가 끝나면 고향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함께 즐기고 싶어서 청주 문화관(구 문화원)에서 12월 20일부터 말일까지 전시를 할 예정이다. 글·윤세영 |
오효진은1943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해서 고향 현도에서 현도초등학교를 거쳐 대전중, 대전고, 서울대 국문과와 서울대 대학원(석사과정)을 졸업후 미국
스프링힐스 대학 언론연구과정,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잉어와 꼽추'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고등학교에서 4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후 서울 문화방송에 입사해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서 2년형을 받고 복역중'헌병단가'를 작사한 공이 인전돼서 출옥했다. 그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부장대우, 조선일보 사회부장대우로 일했고, 서울방송 보도국장, 동경지국장, 편성이사를 거쳤다. 언론계를 떠나 정부대변인겸 공보실장 (국정홍보처장)을 지냈고 충북청원군 군수를 역임했다. 기자시절, 한국방손문화대상 기자상을 받았다. 저서로 소설집 ‘인간사육’ ‘아빠의 자유’ 꽁트집 ‘가을만 되면 미치셌네’ ‘사주팔자 고칩시다’ ‘봄밤의 데이트’ 시집 ‘고운꽃은 시들지 않으리’ 인터뷰집 '오효진의 인간탐험'4권 사진집 '내가 본 세상 즐거운 인생''개망초의 행복'등 여러 권이 있다. |
갤러리 나우 | 02-725-2930 |
첫댓글 언론인으로 이름이 익은 분이네요~~~
네, 디지털 인화해서 글을 쓰는가 봅니다. 다재다능한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