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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상당산~것대산~낙가산
해발 500미터도 채 안되는 네 개의 산(백화산,상당산,것대산,낙가산)은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서 용정동 방면으로 초승달처럼,바나나처럼
기다랗게 이어지는 산줄기에 솟아있는 멧덩이들이다.
시외버스에 오른지 한 시간만에 도착한 청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에 몸을 의지하고 산행들머리인 율량동 효성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30분 언저리가 된다.
오가는 차량이 뜸한 장례식장 앞 도로변의 주유소 좌측으로 산길이
빼꼼히 등산객을 손짓한다.
희뿌연 안개가 장례식장 건물을,주유소를,숲을,거리를,마을의 지붕들을
시름없이 감싸고 있다.꿈길에서 억지로 불려 나온 이의 눈길에도
몽롱하고,아슴푸레하고,불투명스럽게 마지못한 심상으로,
게으른 몸짓으로, 음흉스럽게 스며들려 한다.
미상불,소나무 푸른 가지에도,참나무의 나긋한 가지에도 몽롱함과
아쉬움이 허접스런 미련으로 남아있다.
가을의 전설을 노래하는가,여러종류의 매미들과 풀벌레들의 왁자한
노래인지 이야기인지 몹시 시끄럽다(?).그 시끄러움 속의 소음사이에는
구별조차 하기어려운 산새들의 지저귐도 더러 섞여있다.
산새들도 매미와 풀벌레들의 시끄러움에 질려버렸는지,그렇찮으면
지난 봄날 너무 목청을 써먹어서 그러한지,그럴 필요가 없어서인지.
그들 모두의 어떤 사연이 담긴 울음이 됐던, 이야기이던, 노래이던,
자기들만의 소통을 위한 수단일 터,그러나 그들 여러 개체들을 아우를
소통의 공용수단은 혹시 존재하지 않을까?
신에 의한 바빌론의 저주(불통)가 그러한 미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는
할 수 없다.그들은 바빌론의 인간들만큼 영특하고 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런만큼 신에 대한 도전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으니,
저주의 징벌대상은 더욱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양한 소리와 억양으로 그들나름대로의 소통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을거라는 상상은 가능하다.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에 다달은 기름한 등성이에
그늘쉼터와 여러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도로 중간중간에
이따금 만나는 휴게소같은 쉼터가 쉬어감을 권한다.
청주버스터미널에서 들머리로 오는 길에 배낭에 막걸리가 없음을
인식하고 불안감(?)을 느끼던 청아대장,택시기사의 배려로 목적을
이룬 그가 산길 휴게소에서,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간급유를
시행하려고,조금 전 어렵사리 구입한 막걸리의 병마개를 개봉한다.
새벽운동삼아 여러 운동기구에서 몸놀림에 열심인 인근의 등산객들,
땀을 훔치며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입산객들,가을벌레들의 풍류속에
주말을 맞아 산을 찾은 등산객들의 오가는 발길이 분주하다.
오르고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분주한 숨결이 감도는 소나무 숲길은
활기가 넘쳐 흐른다.
널찍한 헬기장을 뒤로하고,비알을 오르면 이내 백화산 정상이다.
해발 247m의 나지막한 멧부리.사각의 그늘정자,여러종류의 운동기구,
여기저기 나붙은 현수막으로 길죽하고 밋밋한 정수리는 다른 쉼터보다는
규모면에서는 앞서있다는 정도로 해두자.
흘러드는 수량(水量)을 이기지 못하고 본래의 하얀기색을 잃으며 속절없이
속을 드러내보이는 우유처럼,희뿌연 기운을 기세좋게 흩뿌렸던 안개도
태양의 강렬함에 쫓기 듯 뿔뿔이 흩어져 꼬리를 감추어 나간다.
백화산 멧부리를 뒤로하고 한번 내려섰다가 오른 멧부리,백화산 상봉,
삼각점만이 문패처럼 산객의 눈길을 끌고 소나무 그늘이 손님을 맞는다.
상봉을 내려서면 곧바로 약수터가 나오는데,돌탑 한 기가 우뚝하고,
태양광패널이 설치되어 있으며,약수터는 수량이 시원찮아 인내심이
필요하다.
곧바로 비탈을 오르면 상당산성의 서문(西門)을 만난다.
"미호문(?虎門)"이란 현판을 걸고있는 서문은 1970년 10월 1일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그간 수 차례 부분보수가
이루어졌으며,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전면해체 보수가
이루어 졌다고 .서문을 빠져나와 좌측의 노송 아래의 숲길로
들어선다.여러 입산객들이 노송그늘아래 놓여있는 쉼터의자에
나름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방형의 널찍한 평상이 비어있다.시각은 정오를 30여 분 앞둔
무렵인데도 출출하다.때를 기다릴 거 뭐있나,간단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배낭살림을 서둘러 평상에 펼쳐놓고 느긋한 한 때의
호사를 누려본다.고대 로마인들이 넥타르라고 불렀던 신주(神酒),
청아대장에게 초록색 패트병에 담긴 희뿌연색,안개의 빛깔이나
진배없는,걸쭉하고 텁텁하고 달달하기까지 한, 어렵사리(?)구한,
그 술은 불로불사주라고도 일컫는 넥타르보다 더 귀한 신주인지
모른다.산성 곁을 따르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휴식과 아쉬운대로 섭취한 영양보충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이겠다.
산성길 우측으로 상당산 정수리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든다.
해발 491.5m의 멧부리에는 정상을 알리는 빗돌 그리고
그 주변일대는 비닐천막으로 바닥을 덮어놓았다.
이곳은 공북정(拱北亭)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확인되었다고.
(공북정이란,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대(將臺) 건물지를 보완해
주던 건물을 일컫는다).
건물은 남북 4칸x 2칸의 규모로 추정된다고.청주시는 상당산성
제 모습 찾기 일환으로 중원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여 2014년 4월부터
6월까지 상당산성 북포루터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복원사업에 대한 계획은 안내문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예산이
허락한다면 불원간 복원된 모습을 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상당산의 멧부리를 뒤로하자마자 산길 좌측으로 작은 공터가 보이고
공터 한복판에는 크기가 대략 가로 세로 60~70cm쯤 돼보이는
화강암 기둥 두 개가 마주보며 누워있다.
마치 목로주점의 기다란 의자를 마주보며 설치해놓은 듯한 자세다.
상당산성 포루터(砲樓址)다.포루는 성벽 안쪽에서 밖을 향하여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 방어하기에 긴요한 곳에 만든 군사시설이다.
건물을 지어 만든 집 모양을 한 것을 포루라 하고,성벽에 포혈(砲穴)을
만들고 화포를 배치한 것을 포대(砲臺)라 한다.
산성길로 다시 내려선다.곧바로 동북 암문(暗門)이 보인다.
이 동북암문을 빠져나가면 속리산 천황봉에서 가지를 친
한남금북정맥을 이어가는 산등성이가 줄지어 뻗어나간다.
완만하게 오름상태를 유지하던 산성길은 시나브로 내리막 상태를
유지하며 산허리를 구불거리며 이어나간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산성들의 축성방식이 산허리와 산등성이의
굴곡과 고저의 유리한 상황에 따라 축성되는 퇴뫼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치 구렁이가 산허리와 등성이를 꿈틀거리며
넘나드는 모양으로 이루어 진 느낌이다.
멀찌감치 동문의 거뭇한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鎭東門"(진동문)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동문의 누각을 뒤로하면
성곽은 오른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산허리를 감아돌며 이어진다.
산허리를 비스듬이 이어나가면 팔작지붕을 한 커다란 건물이
산객을 맞이한다.동장대(東將臺)다.
"보화정(輔和亭)"이란 현판을 달고있는 이 건물은 글자 그대로
상당산성 동쪽에 위치한 장수의 지휘소다.서쪽에 있는 서장대와
서로 마주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는 거다.
동장대를 지나면 곧바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도로 우측 방면의 마을 진입로인 것이다.상당산성을 축조하고
유지하고 있던 시절에는 군기지 마을 이었을텐데,지금은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술집 등이 어우러진 관광촌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도로를 가로지르면 우측으로 마을 앞쪽으로 커다란
연못이 그윽한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연잎이 푸른빛을 내뿜고,시원한 그늘을
연못주변에 널찍하게 드리운 수목들은 길손의 발목을 잡는다.
팔뚝만한 잉어들이 갑자기 닥쳐온 인기척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손쉽게 먹이를 얻는 방법을 이놈들은 이미 체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손쉬운 방법이 자신들의 혼과 이성을 무너뜨리는
줄을 그들은 아마 알 수가 없을 게다.
그들이 그것을 깨우친다면 낚시꾼들은 갈 곳을 잃을지도
모르겠다.수면위로 먹이를 찾아 큰 입을 뻐끔거리는 그들을
뒤로하면 누런 거적이 카펫처럼 깔려있는 비탈진 오르막이
기다린다.침입하려는 적을 공격하기도 하고,동태를 살피기도
하려는 목적으로 뚫어놓은 총안(銃眼)이 한 팔 간격으로 나 있는
성벽 곁 오르막 산길에 더운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헐떡이며 비탈을 오르고 숨을 고르면, "공사중"이란 입간판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남문이다.남문 주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것대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손짓하는 팻말을 따른다.
것대산으로 이동을 하려면 성곽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 통로가 서남암문이다.암문(暗門)이란 글자 그대로 후미지고
으슥하고 눈에 잘 안띠는 그런 문이다.
성벽의 바깥 산 아래에서 드나드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는 곳에
만든 사잇문이라고 할 수 있다.이곳으로 사람과 가축및
식량 등을 몰래 들여오거나,적군 몰래 아군을 내보내
성 밖과의 연락을 취하거나,적의 뒤쪽으로 출동하기 위해
나가는 용도로 만들었다.암문의 규모는 너비 약 166cm,
높이 약 172cm이고,구조로 보아 처음에는 문짝을닫고
빗장을 질러 문을 닫고 있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것대산 2.7km"라고 가리키는 화살표의 지시대로 서남암문을
빠져나간다.산길은 외길이고 완만해서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숲길이 연달아 이어진다.
상당산성 옛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삼거리,것대산은
맞은 쪽 512번 지방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건들건들 출렁출렁거리는 다리를 현기증을 느껴가며
넘어선다.비탈진 오르막을 올라서면 산길은 급하게 좌측으로
방향을 바꾼다."낙가산 2.5km"라고 가리키는 안내팻말을
따르면 이윽고 상봉재에 내려서게 된다.사거리 안부,
오른쪽으로는 옹달샘을 가리키고 왼쪽으로는 것대마을을
가리킨다.상봉재에는 그에 얽힌 이야기가 구구하게 담긴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다섯 기의 봉수지가 있는 것대산 봉수지는
상봉재에서 십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것대산의 정상은 봉수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지척이다.중년의 세 사내가 자기들 덩치만한 짐을 지고
힘겹게 것대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행글라이더들인 모양이다.
것대산 정상은 행글라이더들을 위한 활공장이 닦여있으며
한켠으로는 아담한 팔각정도 쉼터와 전망대 역할까지
두루 이용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해발 484m의 높이다.
장비를 힘겹게 지고 오느라 지쳤는가? 세 사내들은 두런두런
이야기 꽃만 피우고 실상 행글라이딩에는 관심이 없는 듯이
딴청만 부린다.이왕지사 그들의 활공을 구경이나 할까 했더니
우리도 그것을 기다릴만큼 그렇게 한가한 것은 아니다.
궁둥이를 툭툭 털고 낙가산을 바라보며 길을 재촉한다.
그늘을 벗아나면 햇살 따갑기가 복날을 떠오르게 하지만
숲 그늘에 들어서면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가을은 이미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는 모양이다.
이러구러 별 특징없는 산길을 따르고 나면, 낙가산 정수리
턱밑에서 가뿐숨을 한 차례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해발 482m의 낙가산 정상에는 산불초소가 멧부리를 지키고
있으며 무선기지철탑이 우뚝 서 있고, 한국전력 시설물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낙가산 멧부리에서 날머리인
양궁장으로 하산하려면 "원봉공원"을 가리키는 안내팻말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야 한다.보살사입구 삼거리를 지나면
날머리로의 하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진다.가파른 하산길이야
언제나 맞이하는 일상에 가까운 다반사지만 산길이 다소 거칠다.
돌뿌리가 너더분하며, 나무뿌리까지 그에 어울려 얽혀있으며,
게다가 산길은 가파름의 연속이다.
등산객이 다수라면 흙먼지도 한몫 거들게 될지 모르겠다.
어쨋든 애면글면 오지(?)를 빠져나오면 데크계단길이 지친
산꾼을 맞이한다.우측 산기슭에 푸른 그라운드가 나무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김수녕양궁장이다.
널찍하고 시원한 초록빛 그라운드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넓은 운동장은 양궁을
위한 전용 운동장이기 때문이기도 한 이유일게다.
양궁뿐아니라 다른 구기종목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
쓸쓸하고 한적한 운동장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운동장은 일단 활기가 넘치고 생동감이
샘솟는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데크계단을 내려서면 곧바로 왼쪽으로는 용정산림공원
입구가 된다.우측으로는 양궁장 입구이자 넓은 주차장이고.
귀로를 위한 교통편은 양궁장을 뒤로해서 유도회관을 지나서
번거롭지만 용성초교 근처까지는 발품을 팔아야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를 수 있다.
터미널 근방의 갈비집에서 갈비탕에 소주를 곁들인 두 노마들은
여남은 여객만을 태운 고속버스에 지친 몸을 맡긴다.
청주터미널을 출발한 시각은 오후 5시4분이다.
첫댓글 전에 수원있을때 러쎌에 몇번갔읍니다 이렇케 다시보니 반갑습니다 충주10년살고 청주로 왔읍니다
강건하신걸뵈니 흐뭇합니다 항상 좋은 산행 하시길빕니다 언제 빌수 있겠지요
산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다니 반갑습니다!!
신갈바단줄 알았는데 아니로군요
바다님 반갑습니다
산친구니까 언제든 뵐 수 있겠죠..청아입니다.
바다님은 아직도 산길을 꼬옥 붙잡고 있으리라는 것이 어림됩니다.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