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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우는 몸 전체가 검은 소로 한우의 1개 계통이다. 한우라고 하면 우리는 누런 황소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누런 소 뿐 아니라 모색이 다른 여러 종류의 소가 있었다. 1399년 발간된 우의방 (牛醫方)에 기록된 ‘상우형상 및 모색론’에 의하면 소의 모색은 아주 다양하다. 피모가 누런 황우(黃牛) - 황소 이외에 검은 흑우(黑牛) - 흑소, 얼룩의 리우(离牛) - 얼룩소 일명 칡소, 흰색의 백우(白牛) - 흰소, 검푸른 청우(靑牛) - 검푸른소, 사슴같은 녹반우(鹿斑牛) - 점박이소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1910년에 발간된 조선지산우(朝鮮之産牛)에 따르면 한우의 모색은 주로 적색이지만 적갈색 소도 있고 흑백무늬 소도 있다. 그리고 1920년에 간행된 조선농회보(朝鮮農會報)에 보면 한우 모색이 주로 갈색이지만 적갈색, 황갈색, 흑색, 흑갈색, 회갈색, 백색 등 다양하다. 아울러 1928년 권업모범장사업보고(勸業模範場事業報告)에도 한우의 모색은 적갈색 77.8%, 황갈색 10.3%, 흑색 8.8%, 렴색 2.6%, 갈색백반 0.4%, 흑색백반 0.07%였다. 그리고 1939년 발표된 함남축산10년기(咸南畜産10年記)에 실린 한우의 모색도 대체로 적갈색이지만 흑색과 호랑이 무늬 같은 호반(虎斑)도 있으며 그 비율은 적갈색 77%, 흑갈색 10%, 흑색 8%, 호반 2%, 기타 잡색이라고 하였다. 한편 ‘한우’라는 명칭이 불리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소 또는 조선우(朝鮮牛)였다. 이들 기록 이전에 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에 그냥 황우, 흑우, 백우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의방 모색론에 따른 흑우
천연기념물 제주흑우는 피모가 검고 호구와 만선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소를 우리는 언제부터 길렀을까. 2006년 문화재청 지원으로 남한과 북한 학자가 공동으로 실시한 황해도 안악 용순면 유순리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는 흑소, 황소, 칡소가 채색화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함께 삼국지‘위지 동이전 부여조’기록에서 보는 것처럼‘나라에는 군왕이 있고, 모두 육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정하여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있다(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猪加狗加)’라고 한 점, 그리고 신당서 ‘변진조(弁辰條)’의 ‘토지를 비옥하게 하여 오곡을 생산하고 우마를 탄다(土地肥美宜五穀 乘駕牛馬)’고 한 것으로 미루어 소 등 가축을 기원전 18년 경 이전부터 제사용, 농경용, 식용, 약용, 군사용, 피혁용, 만용(輓用), 태용(駄用) 등으로 기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와 격리된 화산섬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고도 200내지 500미터의 중산간지대는 넓은 초원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계절 온난한 기후로 가축을 사육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일찍이 흑우를 길렀을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단지 최근에 제주도 애월읍 고내 및 곽지 유적지에서 발굴된 1,100년 내지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뼈를 분자유전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현존하는 제주흑우와 유사한 점이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이미 흑우는 사육되었을 것으로 본다.
제주의 너른 중산간지대 방목지
안악 3호 고구려고분 내 흑우 벽화
한우는 아주 다양한 모색이 있었는데 왜 지금과 같이 누런 황소만 한우로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행한 일제의 농간이었다. 즉,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일제는 한우심사표준을 정하면서 ‘표준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고 정하여 다양한 우리나라 소 중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朝鮮牛)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화우(和牛)’ 일명 와규(wagyu)를 장려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폄에 따라 이렇게 되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흑우는 기르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고 1924년에 흑우 암소 125마리와 흑우 수소 50마리를 일본으로 가져가고, 1925년에는 암소 25마리, 수소 1마리를 가져갔다.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1945년 우리는 독립 국가가 되었음에도 우리 자신이 이를 그대로 이어 받아 1970년 한우심사표준을 개정하면서도 “한우의 모색은 황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라고 정함에 따라 누런 소만 ‘한우’인 것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기타 흑소 나 칡소 같은 모색의 소는 우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못하였다.
이런 불행한 한우의 역사에서 우리 전래의 전통 재래소를 되찾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2013년 7월 22일 제주 흑우가 우리나라 546번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일이다.
천연기념물 제 546호 제주흑우
제주흑우가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된 것은 문화재보호법 제2조(정의)에서 정의하는 동물로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크고, 동법 시행령 제11조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 및 절차) 1항 별표 1에 의한 한국 특유의 동물로서 섬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성장하는 동물일 뿐 아니라 한국 특유의 축양동물과 그 산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것만은 아니다. 천연기념물 동물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쳐 왔으며, 향토적인 대표성을 지니고 있고, 민속 설화 속에서 지역민들의 상징물로서 그 지역에 토착한 것으로 과학적인 의미로서도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 내지 지역적인 고유성과 희귀성을 지니며, 역사적인 사건이나 민속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고, 형태학적 종개념이나, 진화적 종개념 및 계통학적 종개념에 근거하여 심미성, 상징성, 진귀성, 고유성 등의 문화적,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복합된 민족의 유산이며 생물자원으로서 그 가치가 충족되어 지정된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는 육지의 흑우와 다른 4개의 특징이 있다.
첫째: 제주흑우는 전신 모색이 흑색(black, 黑色)이다.
둘째: 제주흑우는 호구(white mouth, 糊口)가 없다.
셋째: 제주흑우는 만선(back line, 鰻線)이 없다.
넷째: 제주흑우는 비경(muzzle, 鼻鏡)이 흑색이다.
아울러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의 표준체형은 18개월령 수소의 경우 체중 378kg, 체고 124.9 cm, 체장 138.5cm, 흉위 170.5cm, 요각폭 44.4cm이며, 암소는 체중 297kg, 체고 117.3 cm, 체장 123.7cm, 흉위 162.8cm, 요각폭 38.1cm로 암소가 수소보다 약간 작으며, 대체로 한우에 비하여 20%정도 왜소하다.
제주흑우는 왜소하나 강건하고 내병성이 강하다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는 체구는 왜소하나 체질이 강건하고 지구력이 좋을 뿐 아니라 질병에 대한 내병성이 강한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흑우는 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올레인산, 리놀산 및 인체에 유익한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한우에 비하여 높고, 풍미와 식감이 우수하고 육질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피모가 검다는 이유로 천대받으며 멸종위기에 처하자 뜻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주흑우의 부활을 위해 1992년부터 도내에서는 물론 여러 인근 섬 등에서 10마리를 수집하여 사육하기 시작한 후에도 꾸준히 제주흑우를 수집하여 선발과 도태를 거듭하고, 대량 증식을 하며 분자유전학적(molecular genetic analysis)분석을 통하여 그 특성을 규명하고, 품종을 고정하여 오늘날 제주의 검은 보물 중 하나로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이 흑소는 2004년에는 유엔산하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데이터베이스에 한우 품종의 하나로 등재되었으며, 2013년 말 현재 제주도에는 축산진흥원에 136마리(암소 87마리, 수소49마리), 난지축산시험장에 65마리(암소 33마리, 수소 32마리) 그리고 34개 농가에서 403마리(암소 247마리, 수소 156마리) 등 모두 604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천연물기념물의 보존과 관리는 천연물기념물의 선정과 지정 보다 더욱 힘들어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기위해 십수년 준비한 것보다 수십배 어려움이 있다. 그 이유는 지정요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전폭적인 행정 및 재정지원이 뒷받침되어야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가 만일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로서의 지정요건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는 천연기념물 제546호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는 비록 유전자검사에서 100% 부합되는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라 하더라도 전신모색이나 비경이 100% 흑색이 아닌 것, 호구(糊口)와 만선(鰻線)이 있는 것은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가 아니기에 과감하고 철저하게 도태를 하고,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로서 특성을 지닌 것만 선발하는 작업을 충실히 이행하여야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로써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제주흑우’를 대상으로 하는 종축개량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 자체를 ‘살이 잘 찌고, 빨리 자라며, 근내지방도가 높도록 시도’하는 흑우개량 사업을 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종축개량에 의하여 생산된 제주흑우는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의 조건을 위반하는 행위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천연기념물 미시마소를 일본소의 원종으로 삼고 85년 이상을 유지해 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안다면 이해할 수 있다.
일본 문화재청이나 야마구찌겐(山口縣) 하기시(萩市)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흑우가 일본의 천연기념물 미시마소(見島牛)가 되었고, 이를 일본재래종의 원종으로 삼아서 네덜란드(和蘭陀)의 암컷 홀스타인과 교잡종을 만들어 겐란규(見蘭牛)을 만들어 내고 다시 흑모화종(黑毛和種) 와규를 개발한 일본이지만 한 때는 미시마소의 경우 갈색모(褐色毛)나 백반(白斑) 등 이모색(異毛色)이 발견되기도 하고, 만선과 호구가 관찰되어 1949년에는 미시마섬 촌장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시마소의 “천연기념물 지정해제 신청”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도민이 힘을 합쳐 과감하게 선발과 도태를 계속하여 이제는 피부와 피모형질이 흑색으로 고정된 명실상부한 천연기념물 미시마소 흑우만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될 일이다.
청우란 피모가 검은 흑우를 지칭하는 것이다
흑우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길러온 전통 있는 재래소다. 1702년 당시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였던 이형상이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회한 장면을 기록한 채색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보면 자그만치 703마리의 흑우가 기록되어 있다. 나아가서 조선왕조실록(1521, 1541, 1627 ,1638 ,1665, 1745년 등), 승정원일기(1627년), 일성록(1779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탐라지(1653년) 등에도 제주흑우가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중앙 정부에 제향이나 친경의 공물로 바친 기록이 대부분이다.
탐라순력도 중 별방점조 흑우둔
탐라순력도에 나타난 흑우목장 흑우둔
조선왕조실록 영조 8년(1784년) 11월29일 기사를 보면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 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 (祭享黑牛係是莫重薦獻之需)’라고 기록되어 있고, 영조 43년(1767년) 1월10일 기사에 보면 ‘친경 때에 흑우를 사용(親耕時用黑牛)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우에는 모색이 아주 까맣다 못해 빛을 반사하면 광택이 나는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검푸른 빛이 도는 듯한 “검푸른 소”청우(靑牛)도 있다. 이를 국어대사전에서는 “청치”라 하여 “푸른 털이 얼룩얼룩한 소”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푸른 털이 있는 소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인지 흔히 청우를 “푸른소”, “사전에만 있는 소” 또는 “상상의 소”라고까지 적고 있고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영조 19년(1743년) 4월 20일 “친경 때 청우에 푸른색으로 염색한 무명을 입히고 있다. 그런데 종묘에 청개, 홍개란 것이 있으니 이른바 청개란 곧 흑개이다. 오례의 <청우조>는 <흑우>로 주를 달아 놓는 것이 옳다 (親耕時靑牛以染靑木衣之 而宗廟有靑紅蓋所謂靑蓋 卽 黑蓋也 五禮儀 靑牛條 以黑牛 懸註可也)”고하며 ‘청우는 흑우’라고 영조 임금은 정의하였다. 한편 춘원 이광수가 을축년을 맞아 소를 찬양한 수필 ‘우덕송’에서 검은 소를 한문으로 靑牛라고 쓰는데 그 이유는 ‘검은 빛은 죽음의 빛’이라 ‘생명의 빛인 푸른빛’으로 빗대어 黑牛를 ‘청우’로 부른다고 한 점과 함께 겸재 정선이 노자의 함곡관 출관을 묘사한 견본담채화 “청우출관도”에 등장한 소도 화제(畵題)는 청우이나 그림은 검정 소-흑우로 묘사되어 있고, 중국의 많은 시문이나 서화에서 흑우를 청우라고 적고 있다.
‘청우는 흑우’라고 정의한 영조대왕실록
겸재 정선(1676-1759) 작: 청우출관도(왜관수도원 소장)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본다면 삼국사기 신라 파사이사금왕전(三國史記 新羅 婆娑尼師今王傳)에서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5년(서기84년) ‘고타(지금의 안동 또는 거창으로 추정됨)의 군주가 파사이사금 왕에게 청우를 바쳤다(古抒郡主獻靑牛)’는 내용은 ‘고타 군주가 흑우를 바쳤다’라는 내용으로 볼 수 있고 흑우는 굉장히 귀한 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에 부가하여 신라시대에도 흑우는 이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온몸이 까만 천연기념물 제 546호 제주흑우
죽은 씨암소와 씨수소로부터 복제된 제주흑우 송아지(연합뉴스)
제주도는 제주흑우가 천연기념물 제 546호로 지정된 후 제주흑우의 명품브랜화를 위해 대량 증식과 고품질의 브랜드육 생산체제 구축 등 각종의 산업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그 하나의 방안으로 우선 2017년까지 제주흑우를 3만마리까지 증식하여 산업화 기반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그 중 하나가 제주흑우 증식 방안의 하나로 노령으로 도축한 제주흑우 씨수소와 씨암소의 체세포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복제 송아지를 생산하기도 하고 생명공학 기술과 수정란 이식기술을 이용하여 대량 증식의 길도 마련하였고 최우량의 씨수소와 씨암소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는 최우량의 씨소의 생산이 아니라 이들을 씨소로 하여 살이 잘 찌고 빨리 크며 근내지방도가 높은 최고 품질의 세계적 명품 소를 생산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의 관리 책임은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의 천연기념물 지정 조건을 유지하도록 보호하고 보존하며 육성하는 일이 관리의 요체다. 그래야 자연자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후세에게 온전히 물려 줄 수 있는 제주의 검은 보물 첫째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문화재청 연구보고서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