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명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마르 2,3-4)
지푸라기
정호승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갈릴래아 연안의 작은 어촌 카파르나움에 예수님이 오셔서 기적을 베푸신다. 그러나 가난하고 척박한 땅, 열악한 의료환경,
중풍의 괴로움을 먼저 생각해보면 복음의 내용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병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위해 억척스럽게 움직인 네
사람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복음에 나오는 이들 모두가 향했던 곳이 예수님이었음에 주목해보자. 그런 예수님을 하찮은 지푸라기에
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예수님께 다가서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삭을 떨어낸 짚의 낱개가 아니라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오실 분이라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