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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송수권 시인을 비롯한 민권(民權)과 저항의 소도(蘇塗) 지리산 노고단과 달궁을 다녀오다
이 광 숙
가을이 어디만큼 왔을까?
바쁜 일상이 지쳐갈 무렵 문득 산이 그리울 때 그저 멋모르고 풍경에 취해 다니던 지리산이 아니라 한날한시에 통곡이 일어났던 밤, 불을 뿜던 빨치산의 마을들, 이념의 갈등이 빚어낸 슬픈 역사를 생각하며 “송수권 시인을 비롯한 민권(民權)과 저항의 소도(蘇塗) 지리산 노고단과 달궁”을 통해 가을을 마주하였다.
2018년 10월 9일 문학동인 「시와산문」 회원 16명이 문학기행을 떠났다.
오늘 목적지는 지리산 노고단과 달궁이다. 지난 달 독서토론에서 송수권 시인의 달궁아리랑을 만나고, 오늘은 가을산행 겸 지리산 골짜기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설레임을 담았다. 지리산은 결혼 전에 가보고 20년 만에 처음이라는 회원도 있었고, 산과 친하지 않지만 용기를 내었다는 회원도 있었다.
박귀주 총무님 차량 외에 성삼재를 오를 튼튼한 차량 2대가 섭외되었고, 준비한 김밥과 생수, 간식이 각자에게 배분된 후 차량 3대에 16명이 나눠 타고 이동하였다.
송수권 시인은 1940년 고흥에서 출생하여 고흥중, 순천사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등이 당선되어 등단, 2005년 8월 순천대 교수로 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계시면서 우리지역 문단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던 분이다.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고, 폭넓은 세상읽기를 통해 그가 펴낸 시집과 다양한 산문집, 음식에 관한 책, 비평집, 장편동화집 등 저서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특히 송수권 시인의 달궁아리랑은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한 장편대서사시로 2010년 4월에 발간되었다. 관련 자료 수집 뿐 아니라 수년에 걸친 한 명 한 명 인생사가 담긴 수많은 인터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이야기들은 산 고개를 넘어가는 판소리 가락 같기도 하다.
시집을 두른 흰색 띠지를 살펴봤다.
“이 시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달궁 아리랑』”
「지리산 뻐국새」의 시인 송수권이 쓴 ‘빨치산 투쟁’을 다룬 대서사집! 불온서적으로 기록되기 이전에 좌우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최초의 시집! 통일한국 100년을 예언하며 쓴 기록
보통은 책을 읽다가 방해가 되기에 띠지는 제거하는데, 띠지를 곱게 접어 책갈피로 넣었다.
띠지를 제거하고 보니, 뒷장 달궁아리랑 15편이 보인다.
혁명시인 유진오의 시, 이현상의 ‘당홍동’ 유고시를 읽은 적 없다는 시인에게 호통을 쳤다는 빨치산 여 전사 정순덕의 호통이 내게도 들리는 듯하다.
‘지리산은 현실 한복판에 아직도 서 있고
섬진강은 대낮에도 시퍼렇게
천년을 장대같이 살아 흐른다.
그렇구나! 우리 서정시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가볍구나
빈대 씹만 하고
벼룩이 간만 하구나
아나, 섬진강 퍼 마셔라
아나, 지리산 침 뱉어라.
- 달궁 아리랑 15(화개품바 중에서)
드디어 책을 열었다.
‘야구에 대해 열광하면서도 왜 시인들은 지리산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영원한 금기식 禁忌食 인가? 한평생 시를 쓰고 이 시대의 삶을 살면서 한반도적 부끄럼으로 남은 절름발이 시인은 이 시편을 노고할미에게 바친다. 2010년 4월 송수권 시인의 비장한 마음이 달궁아리랑 첫 장에 잘 나타나 있다.
서시
내 시는 눈 내리는 지리산에 바쳐진다.
아흔 아홉 골짜기 눈 내리는
해방특구 그 민주마을
통비마을
그 불타버린 마을들에 바쳐진다
네가 버리고 떠난 마을
그 산자락을 따라 돌며
줄초상에 줄제사
한날한시에 통곡이 일어났던 밤
그 밤 열두 시에 바쳐진다
너의 창 끝에 너의 총구에
혹은, 혹은,
불을 뿜던 빨치산의 마을들
그 외공리를 지나 구례 산동모스크바 지나
너희들 그 흔적 없는 범죄 위에
내 시는 쓰여진다.
일찍이 삼한 적 하늘 밑
울바자 튼 집 자리
노고단 너머 첫 동네
못다 핀 사랑 이야기
그 달궁 마을에 눈 내린다
잔돌평의 봄을 부르는
14연대 – 한 나팔수가 버리고 간
그 아지트 속 나팔 주둥이에도
빨랭이 빨치산 붉은 녹물이 들어서
눈 내린다
그 무쇠솥 뚜껑 위에
산마루 태성 성城 돌을 베고 누운
잠든 얼굴 위에
지리산에 눈 내린다.
조금 일찍 출발한 선발대는 시암휴게소에서 차 마시는 여유를 갖고, 뒤따른 후발대가 모두 모이자 빠진 것은 없는지 서로 채비를 점검하였다.
일교차가 큰 날씨여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선 몇몇 회원들은 제법 세게 부는 산바람에 빗방울이 함께 날리자 화들짝 놀라 성삼재 휴게소 매점에서 일회용우의를 사 입었다. 다소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빗방울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일회용 우의는 산행 내내 바람막이를 하고 체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편한 길과 가파른 길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여유롭게 2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평소 운동이 부족한 탓인지 초반부터 땀이 나고 힘이 들긴 했으나 회원 중에 가장 나이 어린 축인지라 ‘이 놈의 저질체력’ 혼잣말을 궁시렁 거리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걸었다. 평소 아침마다 집 근처 뒷산을 오르신다는 최백용 회원은 줄 곧 선두를 유지하였고, 다른 분들도 모두 큰 어려움 없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오를 수 있었다. 사실은 최근에 운동을 시작하였기에 산행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해서 1차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모두 잔디밭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점심으로 주문한 김밥을 먹었다.
캔 맥주 몇 개를 준비했는데 김밥을 먹는 중에 대피소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지리산 국립공원 전역에서 음주, 흡연을 금지하며 단속반의 적발시 과태료가 부과되니 음주,흡연을 삼가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맥주 한 캔을 어떻게 본 것일까? 마치 대피소 주변에 CCTV가 우리를 보고 말하는 듯 행여 단속반 나타날까 가슴이 콩닥거렸다. 빈 캔을 서둘러 가방에 넣으면서 국립공원에서 음주,흡연금지의 기본상식도 모르냐고 무지를 지적받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일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노고단이 포함된 지리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 등산로 중 노고단은 심원계곡과 화엄사계곡을 통한 서쪽 입구가 되며, 노고단산장은 등산객의 휴식처 및 숙박장소가 된다.
서남향의 안부에 위치하는 노고단 제1,2산장 주변은 약 4천여 평에 이르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지형으로, 옛날 선교사들의 별장을 50여채나 지었던 곳이다. 산장들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는 지리산의 가장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이다. 노고단 남서쪽의 구례군 광의면과 북서쪽인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사이의 도로가 확장 포장되어 있고 이 도로에서 노고단까지의 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양호하다(출처 :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점심을 마친 후 노고단 고개를 올랐다. 노고단 고개만 올랐을 뿐인데 사방 풍경에 여기 저기 탄성을 자아가며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에 이르는 700m 구간은 탐방객이 많은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탐방예약제로 운영한다. 새벽 0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총 3회 개방이 되는데, 1회 개방시 64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다행히 문학기행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를 살펴본 덕분에 박귀주 총무님과 내가 각 10명씩 2회차 탐방예약을 해 놓아서 순조롭게 노고단 정상까지 탐방 할 수 있었다. 미처 정보를 알지 못한 등산객들은 정상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거나,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회원가입 후 탐방예약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노고단 고개만 보았을 때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건 정상을 가지 못한 이들의 경험 일 뿐이다. 노고단 정상은 통해 바라본 풍경은 그렇게 지리산 자락마다,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였다. 이념의 분쟁이 치열했던 시대의 지난한 흔적이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 아름다운 단풍만이 가슴을 시리게 하였다.
각자 가슴에 품고 사는 생채기들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노고단 정상을 내려오는 길목마다 마주한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까르르 웃는 소리 들리니 모처럼 닫힌 일상에서 해방되어 가을을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최경필 회원의 셀카봉과 안철수 선생님의 캐논카메라, 그리고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에 가을을 담뿍 저장하고 노고단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옛날 선교사들의 별장 허물어진 터를 보았고, 그 옛날 이 땅을 찾은 낯선 이방인의 풍토병도 지리산 깊은 품안에서 넉넉히 치유하였으리라 생각하였다. 박범석 선생님께서 과거 별장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였던 기억을 말씀해 주셨다.
이어서 달궁 계곡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초기 빨치산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김지회가 지리산 달궁 마을 주막집에서 막걸리 서너 잔을 얻어 마시고 동료 10여명과 깊은 잠을 자던 중 주모의 밀고로 토벌대에게 포위되어 현장에서 사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막은 사라지고 음식점들이 즐비하니 관광객들을 손짓하였다.
달궁계곡의 수려한 풍경 곳곳에는 아픈 상처들이 짓뭉개진 것인지 웃는 것인지 서로 보아달라는 듯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역사가 산맥을 기록한다면 시인은 분명 산골까지의 삶을 기록함은 당연하다’고 했던 송수권 시인의 말이 가슴속에 메아리 쳤다.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서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꾸기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중 中
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쎈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지리산 뻐꾹새 」 전문
달궁계곡을 뒤로하고 차로 15분간 달려 정령치로 이동하였다.
정령치 휴게소는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 사이에 있는 높이 1,172m에 위치한 휴게소이다. 노고단 성삼재 휴게소 1,090m 보다 82m가 더 높으니, 산길 해발 82m는 제법 차이가 크다. 북으로는 덕유산, 남으로는 지리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마루금 고개이며, 1988년 지방도 737호선을 만들면서 산과 산이 단절되었다가 산림청에서 2016년 생태축 복권사업을 시행하여 터널을 만들어 단절된 산을 이어 옛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정령치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지리산은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봉우리들의 행렬을 볼 수 있고 남쪽으로는 성삼재, 서쪽으로는 남원 시가지가 보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휴게소였다.
성삼재 휴게소는 항상 만원이고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비해 정령치 휴게소는 고요하고 더 멋스러운게 앞으로도 자주 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글루처럼 생긴 휴게소 매점에서 차를 마시며 30여분 휴식, 단체사진을 찍었다.
휴게소 옆 계산을 오르면 정령치 능선을 타고 등산로가 나오는데, 여기에선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어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인생 샷이 된다. 김우영 회장님의 앵글에 잡힌 몇 명 회원은 평생 인생 샷을 건졌다는 후문도......
지리산(智異山) 글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라 한다.
경상남도, 전라남·북도, 1개시, 4개군, 15개 읍·면의 행정구역이 속해 있으며, 그 면적이 483.022㎢ 로서 22개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고봉준령마다 영기가 서리고, 계곡은 웅장하면서도 유현(幽玄)함을 잃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의 거리가 25.5㎞로 60여리가 되고, 둘레는 320여㎞로 800리쯤 된다. 지리산의 너른 품안에는 1,500m가 넘는 20여개의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개의 긴 능선이 있고 그 품속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등 큰 계곡이 있으며, 아직도 이름을 얻지 못한 봉우리나 계곡이 많다.
이렇게 넉넉한 지리산의 웅장하고 아늑한 산세는 영·호남의 지붕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지리산의 북쪽으로는 만수천-임천-엄천강-경호강-남강-낙동강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천왕봉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는 천왕샘을 비롯하여 주능선 곳곳에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강은 사람을 모은다”고 했다.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도 1시 4군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풍부한 동·식물만큼 그 문화는 동서 간을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은 단지 크고, 넓은 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다른 매력이 있는 산이다.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누구나 섬진강 벚꽃과 매화꽃을 보러올 생각만 하지 지리산은 뒷전이고 전혀 관심이 없다는 평소 송수권 시인의 지적, 봄이면 계절이 선물하는 풍경이나 감상하고 읊조릴 줄 알았지 지리산에 대한 생각은 왜 없을까?
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동안 지리산을 다니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달궁아리랑, 시와 산문 문학기행 속에서 알게 된 지리산 골짜기 슬픈 통곡의 이야기! 시려진 내 마음 한 자락 정령치 억새 바람에 실어 붉어진 단풍 속에 숨겨놓았다.
하루 종일 산의 무게를 짊어진 듯 것인가? 골짜기 사연들이 무거웠던 것일까? 차를 타면 제법 피로감이 몰려왔는데 이 때문인지, 해가 짧아져 갈 길이 먼 탓인지 순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육묘정, 춘향묘는 짧게 통과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식사가 가벼웠던 터라, 순천에 도착하여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야가 뻥 뚫린 그곳
예쁜 가을을 만났지요. 온갖 시름 다 내려 두고 온 이 기분
님들 덕분에 문학기행은 행복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며 환히 웃는 꽃세실님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기쁘고 충만한 문학기행 이었다.
안전한 운전으로 문학기행을 안내 해 주신 박귀주,안철수,최경필 3분 회원님들의 수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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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장을 그대로 옮긴듯 잘 표현되어 불참하신 회원들도 함께 동참한 것처럼 느낄 수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