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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배꽃이 필 무렵
배꽃 냄새, 달나라 냄새, 달동네 냄새,
어느 산동네 백석을 불러내어 막걸리 한 대접 같이하고 싶다.
*섬을 읽으며
겨울 방학이 되어 동해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는 외손자가 왔다.
명암타워를 보며
“할아버지 저 건물 뭔데 왜 저리 높아”
“저게 높기는 뭐가 높아 할아버지도 잘은 모르지만 청주에는 한 오십 층짜리 아파트도 있을 껄”
손자 놈이 찾아 세어 보려한 고층 아파트는 그 놈에게 무엇 이였을까?
아버지
전남 남원에는 유명한 남원 식도가 있어,
중략
소주 한 잔을 넘긴다. 남원식도가 저 닮은 놈의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려내고 있다. 빨갛게 녹슨, 잘린 대가리의
눈알이 칼등에 새겨진 시퍼런 파도 문신을 쳐다보고 있다.
어떤 꿈은 너무 차갑고 낯설다.
청주 육거리시장 0 0 술집에 가면 이 빠진 칼들이 맨 날 맨 날 허구 한 날 해장으로 모여 안주보다 나 그때를 우물텅 우물텅 씹으며 파장을 맞는다.
생이기정
위 생략
연신 먹이를 나르는 아비와 어미들, 제비새끼들의 입은 닫
힐 줄을 몰랐다. 커지는 새끼들이 두려운 가난한 새들이 밤마
다 끼욱끼욱 우는 소리를 냈지만 충간소음으로 시비 거는 일
은 없었다. 가끔 바다로 추락하는 새의 소문이 돌면 복도는 오
래 적막했다.
거실 없는 벼랑 구멍집이 재건축 된다는 풍문에 해 긴 저녁
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모처럼 새 장난감을 쥐고 잠든 아이
옆에서 부부는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소문은 소문으
로만 돈 지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노동운동하던 집주인에게 보증금도 다 못 받고 나왔던 곳,
그때 노란 입을 철없이 벌리기만 하던 딸아이의 유치원 친구
들도 어디 가서 빨갱이 소리 들으면서 알바를 하고 있으려냐,
딱 구멍만큼만 자란 새들, 구겨진 날갯죽지를 펴고 벼랑으로
날아간다.
언젠가 생이기정 새들도 평생 둥지 하나 틀기위해 생을 받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는 오려나?
언제 대궐 같은 둥지를 수 십 채씩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새들이 없는
더 불어 사는 날이 오기는 오려나?
구멍집에서 부모들의 사랑 나눔을 보고 자란 콤플렉스로 넓은 집을 사 쟁기는 것인지 원?
빗살무늬토기
공사장 막노동 조 씨네 식구들이
우묵한 얼굴을 밥그릇으로 푹푹 꽂아놓고 저녁을 먹는다.
장마철
남자는 공친 하루를 밥그릇 바깥에 또 한 줄 새긴다.
///// \\\\\ /
뿔 달린 검은 물소를 잡아오던 남편의 전성기가 빗물에 시
궁창으로 쓸려가는 걸 보는 여자의 턱은 자꾸 뾰쪽해져 더 깊
게 밥상에 박힌다
타버린 까만 쌀알을 뱉어내던 아이들
가끔 물에 잠긴 머리맡으로 헤엄치는 아귀가 나와요
라고하자, 여자는 좁고 깊숙한 아이들 모구멍에 박힌 식탐의
가시를 뽑아낸다
중략
이제 민무늬 철제 밥그릇으로 저녁을 먹는다
탕탕 양철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를
가끔 습관처럼 폭식한다
비에 젖으면 보이는 무늬가
내 밥그릇에 있다
모텔이라 간판을 건 도심 여관들은 장기 투숙자를 받지 않는다
변두리로 찾아다니다 멀리 작은 도시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었던 숙소, 아침 6시30분까지 현장에 도착 하려면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야 했다. 해장국집에서 부랴부랴 아침을 채우고 현장에 도착하면 점호, 안전 교육, 체조하고 7시 오전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6시에(그때는) 끝나면 저녁 먹고, 차가 막히지 않으면
8시에서 9시 숙소에 도착하여 한방에 네댓 명이 씻고 양말을 빨고 하다보면 10시가 넘었다.
며칠 이어지면 치부책에 ///// 줄이 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비라도 쏟아지길 기다린다.
내 맘대로 \를 그릴 수 없었던.
그건 그렇고
유리그릇만 같은데
공룡도 잡아 올 수 있다는 남자.
아들의 목구멍 깊이 박힌 식탐을 뽑아내던 여자.
엇나가고 비나간 그 들의 무늬를 어찌 그리 잘 그렸을까?
플렛이 붙은 어는 노동자의 악보
공사장 옆 전주콩나물국밥집에서 혼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노동자(노가다 잡부) 소주도 한 병을 물 컵에 따라 마실 것 같다.
반음씩 내려가면 반 지하 불 꺼진 그의 숙소.
음울한 G단조의 반복. 나이보다 더 현악기처럼 구부러진 어깨.
머리맡에 수북한 빈 소주병
콩나물 대가리처럼 쪼개진 같이 일하던 김씨, 안전모를 잠시 벗었던.
(써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더운 날 땀내로 찌든 안전모의 조임과 갑갑함. 무거움.)
조금 알레그레해져 면박으로 피날레를 연주하며 콩나물 국밥집을 나가는 콘도라 베이스 손가락 현에서는 담배연기가 낮고 긴 음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술냄새, 땀냄새, 발냄새, 담배냄새,
“씨발! X도 아닌 놈이 소장이라고 더러워서” …….
외떡잎
어쨌거나 ‘외’가 붙지 않았나
외로운 떡입이다
중략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 하나 키우고 있다는 미영이
엄마 없이 자란 그녀가
텃밭에 공벌레처럼 웅크리로 앉아
외떡입 하나 크게 밀어 올리고 있다
‘외’자
어려서 내편을 들어줄 형이나 남동생이 없어 그랬다.
스물다섯에 낳은 아들 . 밑으로 딸. 딸.
할아버지 할머니는 늘 손자편이였다.
나 같이 버릇없고 의타심 많은 놈이 되지 않게 하려고
늘 꾸짖기만 하는 애비였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아들과 아직도 다정히 술자한잔 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외’자 때문이라 핑계를 댄다.
고래가 숨을 쉴 때
도요새들이
밀물이 드는 자갈돌에서서
젖은 깃털을 말리고 있다
자갈은 들키고 싶지 않아
도요새의 깃털 색을 흉내 냈다
감쪽같이 바다가
하늘의 빛깔과 주름을 흉내 냈듯이
슬픔이 저녁노을 속에
딱 그런 색깔로 숨어 지내듯이
숨어 있기 위해
무장다리 꽃은
배추흰나비 날개를 하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들이 또
바람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밀한 보호색은 견고하지 못해
너무도 쉽게
포식자의 먹이가 되고 만다
아주 미세하게 슬퍼했을 뿐인 고동의 슬픔을
도요새에게 내주고 마는
갯벌 같은 어설픈 보호색
내 안의 어둠은
저 많은 밤 속에
얼마나 오래 숨을 수 있을까
고래가 숨을 쉴 때, 그 때
푸른 바다의 하얀 슬픔이 보이는 것처럼
그런 순간들 앞에서
들키고 마는 것들을
그렇지요
그러게요
자갈돌들은 수 만년 뒤에 올 꼬마물때새의 알을 어떻게 그리 베꼈을까?
고래가 아무리 바닷물에 감추려 해도 숨 쉴 때 드러나는 것을
난 아직 유명한 시인. 저명인사들을 이래저래 아는 사이라 쪽을 판다.
밥
시인은
조팝나무. 이팝나무. 박태기나무. 꽃으로
고봉 고봉 시를 지었는데
난 돋보기를 돋아 쓰고 실밥을 찾아야겠다.
그러고 나가면 마누라 망신시키는 것이라는 꾸중을 면하려면.
이녁
이녁이란 말이 참 좋다
이녁-, 하고
그를 부르면 그도 나도
저녁, 노을 진 어디쯤으로 끌려가
나란히 붉어지는 것만 같다
이녁-, 하고
나를 부른다면
그녀의 큰 손에 나의 전부가
넉넉히 감싸지는 일
이녁은 그와 나 사이에
두세 개의 징검다리만큼의
겨를이 있으면서도
언제든 건너가
허물없이 안기는 그런 말이다
이녁이란 곳은 참 아늑하다
노란 가로등이 비낀
바로 그 담벼락 같기도 하고
뜨뜻한 김이 지붕 위에 풀어지는 집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수제비를 떠먹던 아랫목은
가난하고 낮은 이들의 이녁일 것
찿아가면 선뜻
밥상 한자리를 비우면
숟가락을 얻어주는
이녁이라는-,
그 멀고도 가까운 말
정연승 소설가 가 부계사회를 찾아 나설 때 동행하여 이녁이란 말을 찾아봐야겠다. 그곳에는 그 말이 아직 남아있는지?
그리고 감히 나도 이녁이라 불러보고 싶다.
그러나 어림없을 것 같다.
남편이 주인어른이거나 바깥양반으로 불려 지던 부계사회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엄마
위 생략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엄마는 약밥이고 김치만두고 녹두
전이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둡갑시킬 수도 있다 봄에는 냉
이죽이 되었다가 가을엔 깨꽃튀김이 되었다가 겨울에는 동치
미가 된다 고교 유학 시절 자취방 문 앞에 “닥 티겨 와따 마시
게 먹어라”라는 쪽지를 놓고 가셨던 닭튀김의 젊은 나의 엄마
된장은 직장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못 만들 음식이
다 일 년 열두 달 엄마 된장으로 사는 내가 문득문득 언젠가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된당을 생각하면, 밥상에서 허구한 날 목
이 메일 걸 생각하면 내게 엄마는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아이들이 몇 살인지도 모르던 자기 것도 챙기지 못하던 어머니 말로 쥐변머리 없는 면서기 아버지. 여러 자식 밥 굶기지 않으려는 어머니는 집안보다 논에 밭에 산에서 보내던 시간이 많았다.
철철이 봄나물. 올갱이. 새뱅이. 산밤. 머루다래가 반찬이 되고 주전부리가 되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자싯물이나 구정물로 나가는 법이 없었다.
볶던 지지던 찌던 새로운 요리가 되었다.
명태껍데를 넣어 끓인 된장. 먹다 남은 전으로 양념간장을 뿌려 밥에 찐.
제상에 올라 던 두부는 간장에 독에 담가 두부장아찌가 되었다.
설 지나 요즘 다시 생각나는 엄마가 해주던…….
이사
겨우내 그러낸 곰팡이 구름 아래도
그늘 없이 날아가는
어린 딸애의 비행기 벽화는 그냥 두고 간다
죽자고 올라서던 베란다 난간 위에 뜨던 달
그건 어차피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있던 거다
부엌과 화장실으 근접 강장동물처럼
구토와 배설을 식음과 혼돈했던 버릇은
잘 묶어 문가에 내논다
밤마다 여자의 얼굴에 흐른 절망을 새기던
304호 남자의 망치는 돌려주었다
짐을 다 싸고
306호의 늙은 여자가 준 무장아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아들이 다녀간 날
신발장에 남은 숨을 매단 그녀를
빈 그릇째 태우고 간다
그렇게 떠난다, 그런데도
미어질 듯 용달은 흔들리고
집은 부동산이 아니다
그림이네!
생생한 그림.
난 이런 셋방살이를 해보지 않았지만 딸애가 다세대 주택을 가지고 집세를 놓았었다.
여러 가지 사람들의 세 살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보았다.
야반도주한 사람 끝내 집들이를 통해 살림살이 아니 쓰레기를 치우던.
3개월도 안된 아기를 두고 화장실에서 목매죽은 젊은 여자, 그 아기를 키우며 끈 질게도 이사를 가지 않던 남자.
강대나무
나의 늙은 어머니
뿌리가 되어가는 중이시다
첫 월급 타서 끼워드린 은가락지가
약지에서 중지로 옮겨간 지 오래
다산초당 오르는 뿌리의 길
딱 그 소나무 뿌리들 같은
손과 발
그녀의 귀, 느릅나무 새순 같았을까
흔들리던 수만의 잎사귀들 아래
바람이 머물던 그녀 옆구리의 그늘을 기억한다
장경 같던 발목에서 마른 흙냄새가 난다
이제 가늘고 가는 뿌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몸의 골짜기를 경울 산처럼 다 드러내는 중이시다
비 내리는 날이면
밖의 슬픔들을 뿌리는
천천히 안으로 젖어 울었을 것이고
낙과의 상실을 흙으로 덮어 삭였을 것이다
근심 없는 날 없었으나
근심(根心)으로 살아왔을 어머니
하늘도 뿌리 한 몸만 남기는
강대나무 돼 가신다
어머니
생전에 너무 잘 못한(다들 그러지만 정도 이상)것이 세월이 갈수록 죄스러워 장롱깊이 넣어두었던 어머니 영정사진을 작년에 꺼내 식탁 앞에 놓고서도
설이 되어서야 어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을 알았다.
지난 섣달 열아흐레(아내한테 물어야 알던 것을 작년에 탁상 달력을 만들며 적어 놓고도)가 어머니 돌아가신지 31년이 되는 기일이었다.
섣달 열아흐레 양력 1월 13일
1월 10일 방학을 한 11 살배기 외손자가 저를 데려가라 해서 동해시 에 가서 12일 같이 왔다. 아내는 출근을 하니 이놈하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 다니다 어머니 제사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손자가 하고 싶다는 것 이것저것 다 해주려고 하면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 년 여 병석에 누워 지내시다 71살을 다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일흔은 넘기셨으니 애통하지 않을 만큼 사셨어”
그 때는 아니 몇 년 전 까지는 남들 말이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71살이 되고 보니
지금 내가 죽으면 살만큼 산 것인가?
아니지. 아니지!
자식을 낳고도 돌아가시도록 철없던 이 외아들 때문에 젊은 날 이미 강대나무 되셨을 우리 어머니!
오늘
시인에게 들켰네!
발목. 멸치들. 사랑. 면목동 반지하. 껌 씹는 염소.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는
아껴두었다 구진 한날 다시 꺼내 되새김하기로 하고.
에스더!
누구도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음식이나 옷을 줄에 매어 내리게 하는 동굴로 몰래 몰래 문둥병 환자인 마님과 아가씨를 찾아가는 에스더.
구름에서 그리움과 슬픔의 실을 뽑아 옷을 깃고
엄마의 약밥이고 김치만두고 녹두전으로 시를 지어
면목동 반 지하 보다 깊은 동굴을 영원히 찾아가는 조 에스더가 되어주시길.
* 이제는 해설도 읽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