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2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가 활기에 넘쳤다. 놀이동산 곳곳에서 관람에 열중하던 방문객들이 홀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소풍 나온 어린이에서부터 팔순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놀이동산을 찾은 남성들의 눈이 빛났다. 드디어 저 멀리서 음악과 함께 거대한 마차가 등장했다. 스페인·일본·중국·브라질 등 세계 각국의 문물을 형상화한 퍼레이드가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들은 마치 동화의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기분에 퍼레이드 행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40여분에 걸쳐 펼쳐진 퍼레이드는 어린이들의 빛나는 눈을 뒤로한 채 막을 내렸다. 퍼레이드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환호를 받은 것은 이국적인 풍모를 보이는 외국인 연기자들. 어린이들은 손 한번 잡아보려고 줄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저씨, 아저씨"라고 소리를 치며 달려들거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놀이동산의 외국인 연기자들은 러시아 출신이 전부다. 예전에는 미국·유럽 등지에서 온 연기자도 있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연기자들이 놀이동산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발레 등이 강하기 때문에 춤을 많이 춰야 하는 퍼레이드에 제격이다. 비용문제도 이들이 놀이동산 터줏대감으로 만든 요인 중 하나다.
러시아 연기자들은 춤연습과 공연으로 하루를 보낸다. 오전 8시에 하루를 열고 밤 12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연습 또 연습이다. 춤에는 일가견이 있는 춤꾼들이지만 퍼레이드에 맞는 춤과 공연마다 새로운 안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 힙합 등 새로운 장르의 춤도 익혀야 한다. 춤추는 시간은 하루 6시간. 그외에는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에는 독서나 운동 등 취미활동을 하거나 개인 연습을 한다. 헬스클럽을 찾아 몸을 단련하거나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외출을 해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한다. 주로 잠실에서 가까운 신천이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친구들과는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이트클럽을 찾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면 '쫑파티'를 겸해서 찾는다.
그날 이들이 찾는 나이트클럽은 장사하기 어렵다. 배우같이 생긴 이들이 무대에 등장해 화려한 춤으로 손님들의 기를 죽이기 때문. 손님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웨이터들은 발만 동동 구르기 일쑤다.
휴일이면 쇼핑을 다니기도 한다. 동대문이 이들이 주로 찾는 쇼핑명소다. 동대문에는 다리와 팔이 긴 러시아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파는 상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식당도 있다. 고향의 음식을 맛보며 시름을 달래곤 한다.
러시아 연기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음식문제. 한국음식의 매운맛에 모두 혀를 내두른다. 러시아에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기름진 음식이 많아 러시아 연기자들은 담백한 한국음식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월급 1,000달러(약 120만원) 중 30%를 먹는 데 쓴다.
미모의 발레리나 올가 소로키나(26)는 구소련에서 독립한 벨로루시 출신이다. 벨로루시는 러시아 등 다른 공화국들과 함께 전통적인 발레의 강국. 올가는 다섯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그는 벨로루시 발레대학 무용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2000년에는 벨로루시 고전발레 챔피언에도 오른 재원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벨로루시 오페라극장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롯데월드에서 일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 한국생활을 한 지 10개월이 다 됐다. 미국·이탈리아·스페인·독일·네덜란드·브라질 등 해외공연을 자주 다닌 그는 새로운 문화와 나라에 대한 동경으로 한국생활이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