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산] 전북 완주군 천등산
전북 완주군 천등산(天燈山·706.9m)은 이름 그대로 하늘이 불을 밝혀주는 산이었다.
산 위에 올라서는 순간 온천지가 푸르게 빛났다. 연둣빛 산봉과 산릉을 끼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하얗게 반짝였고, 산봉과 산릉에 막힌 산중 호수는 짙푸른 빛깔로 삼라만상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천등산의 이름은 옛날 시골집에서 쓰던 호롱같이 보인다고 해서 지어졌다는 얘기와 함께
견훤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천등산에 산성을 쌓고 있던 견훤이 한밤중 적의 습격을
받게 되자 바위굴 안에 있던 용이 닭 울음소리를 내어 견훤과 군사들을 깨우고, 천등산
산신이 밝은 빛을 비춰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늘(天)이 불을 밝혀(燈) 준 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천등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산성 이름이 용계성(龍鷄城)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달 초 찾은 천등산 길목에는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버티고 있었다.
'호남의 금강'이라는 대둔산(大芚山·878m)이었다. 괴목동천을 사이에 두고 솟구친 대둔산은 능선과 골짜기
곳곳에 기암을 세워놓고 바위절벽을 늘어뜨린 채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이런 세련된 산세 덕분에
'완주의 산' 하면 대둔산이 으뜸으로 꼽힐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주변 산은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싶었다.
버들피리 꼬리를 흔들며 노니는 괴목동천 맑은 물을 건너 석굴계곡으로 들어서자 계곡물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흘러내리고 있다. 후미진 계곡은 영험함까지 갖추고 있는지 골 곳곳에 기도(祈禱) 흔적이 눈에 띈다.
돌탑에 쌓인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등산객들의 염원이 담겨 있으며, 절벽 아래 촛불이 켜져 있는 자그마한 터도
기도하는 곳이었다.
자연미에 세련미까지 갖춘 와폭(臥瀑·경사가 완만한 폭포)을 지나 시원스럽게 불어대는 골바람을 등지고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을 올려치자 거대한 벼랑 아래 움푹 파인 석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굴 기도터는
홍매화와 백매화가 화사하게 조화를 이루고, 민들레도 "나도 꽃"이라며 노란 꽃 예쁘게 피운 앞마당과
어우러져 말 그대로 선경이요, 골 건너편 능선의 감투봉은 털갈이를 막 끝낸 산새의 등을 보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다. 이런 풍광과 하늘의 빛이 한데 모여 있기에 석굴계곡이 영험한 곳일지도 모른다.
보살 할머니가 건네준 석간수(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로 갈증을
씻어낸 다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신록 빛에 취해 가파른 오르막도
단숨에 올려친다. 정상에 올라서자 솔매 등에 올라앉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분이다. 남으로 금당리 용계천이 들녘을 가르며
흐르고 있고 그 너머로 운장산으로 뻗어나가는
금북정맥(錦北正脈·경기 안성 칠장산과 태안반도의 안흥진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과 그 안쪽에 솟아오른
산봉과 산릉이 신록빛에 힘 얻어 꿈틀거리는 듯하다.
북으로 또 다른 장관이 가슴 벅차게 한다. 대둔산이 기암절벽과 암봉을
일으켜 세운 채 웅장하고 화려한 풍광으로 솟아 있다.
하지만 호남정맥(湖南正脈·전북 장수 주화산에서 뻗어 내장산에 이르러
전남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광양 백운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도 '호남의 금강'도 부럽지 않다.
때 묻지 않은 천등산은 산객을 신록빛에 취하게 해 다른 풍광에 젖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 여행수첩
산행 길잡이
산행은 대개 운주면에서 약 3㎞ 떨어진 장선리 원장선 마을에서 출발해 감투봉과 정상을 거쳐 고산촌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따른다. 바위 구간이 여러 차례 나오지만 우회로가 나 있거나 안전로프가 걸려 있다.
정상에서 고산촌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약 30m 높이의 벼랑길에 이어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
구간을 내려선 다음 갈림목이 나타난다. 나뭇가지로 길목을 막아놓은 이 지점에서 곧장 가면 고산촌,
왼쪽 능선을 따르면 괴목동천 변의 유원지로 내려선다. 원장선 마을은 운주면소재지에서 대둔산 방향으로
약 3㎞ 지점에 위치한 GS칼텍스주유소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200m쯤 가면 나온다. 들머리 맞은편에
‘황골 유원지’ 안내판이 서 있다. 약 4시간 30분.
석굴계곡으로 내려서려면 정상에서 고산촌 방향으로 약 100m 거리에 세워진 ‘긴급신고 01-15’ 팻말에서
왼쪽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된다. 석굴계곡을 타고 정상에 오르려면 칼텍스주유소 삼거리에서 대둔산 방면으로
2㎞쯤 가다 괴목동천을 가로지른 보를 건너선다. 개울을 건너 산길을 좇아 들면 곧 석굴계곡으로 들어선다.
3시간 30분.
대중교통▶전주→운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50, 09:00, 09:40, 14:20, 15:50 출발하는
운주 경유 금산행 직행버스 이용. 50분, 4600원. 또는 전주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535번
(20분 간격)이나 300번(1시간 간격) 시민여객 버스로 고산(1000원)까지 가서 1일 16회(06:55~20:30)
다니는 운주행 버스 이용.
▶운주→장선 삼거리·하산북·평촌·고산촌: 대둔산행 버스 1일 9회(07:10~18:20) 운행. 1000원.
▶대전→운주: 서부터미널(042-584-1616)에서 07:45, 13:20, 17:30 출발하는 대둔산행
직행버스(40분, 3300원)로 대둔산 주차장(063-262-1260)까지 간 다음 운주행 노선버스나
택시 이용. 또는 대전시내에서 시내버스로 진산으로 간 다음, 진산에서 천등산 기점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1만2000원.
승용차: 대전통영고속도로 추부 나들목→17번 국도→복수삼거리→대둔산관광단지 입구를 거쳐 진입하거나,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 나들목→635번 지방도→복수삼거리→17번 국도→대둔산관광단지 앞 경유해서
운주면 접근. 전주 방향에서는 17번 국도를 타고 고산·경천면 경유해서 운주면 접근(
익산-포항고속도로 완주 나들목에서 17번 국도 진입 가능).
맛집(지역번호 063)
옥계천 계곡유원지에 위치한 옥계정가든(261-8008, 011-675-7577)은 메기매운탕(중 4만원, 대 4만5000원)과
백숙·닭도리탕(각 4만원)을 내놓는다. 운주면소재지에서 전주 방향 약 1㎞ 지점에 위치한
일미한우집(263-7419)은 한우 암소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300g당 모둠 1만5000원,
특수부위 2만원, 육회 1만5000원. 면사무소 앞 전주식당(263-7114)은 전주식 백반(5000원)이 맛깔스럽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천등산과 가까운 대둔산 도립공원 관광단지에는 산산산(263-3829) 등 토속음식점과 여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