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수정하면서 읽어 보면
역사의 한 장을 알게 되면서 인간사의 철칙을 배웁니다
양떼의 생각!!
조선의 명판결 - 믿기 어렵다고 대충 조사하지 말라
다산은 ‘흠흠신서’를 저술하면서 중국 명말청초의 소설 가운데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공안 소설류를 자주 인용했다.
이 중에서도 당대 유명 작가였던 여상두(余象斗)의 책은 단골이었다.
소설에는 황탄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많았으므로 다산은
“여상두의 소설 중 옮겨 적기에 알맞지 않은 내용이 많아 고소장이나
공초(供招) 부분 등은 참고하고 나머지는 삭제한다.”라고 밝혔다.
늘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했던 다산은 ‘괴력 난신은 논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을 철칙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는 믿기 어렵지만 믿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쉽게 믿을 수도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법이다.
피살당한 주인의 원통함을 알려준 원숭이 이야기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죽음으로 갚은 까마귀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다.
다산은 “주역에는 의리에 정밀하고 귀신에 감응해야 실용에 도달하고,
예기(禮記)에는 지성을 다해야 미리 알려준다고 하였으니,
살 옥사 건을 다스리는 기본은 정밀함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하면 귀신도 통하고, 정성이 감응하면 곧 귀신이 와서 알려 주니
나 또한 몸소 체험해 보았다. 그러나 이는 선량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지,
과장하여 믿을 수 없거나 스스로 뽐내고 말재주나 부리는 자에 해당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여 진정한 마음이 지극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임을 강조했다.
다산은 특히 괴이하고 신기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더욱 정진하여 귀신이 감응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여야지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라 하여 대충 조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어떤 사건이든 심지어 전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라도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불타 죽은 남녀의 시신
다산의 강진 유배 시절인 1814년 나주에서 35세 남자 김정룡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와 함께 한 방에서 불타 죽은 일이 벌어졌다.
나주 사또의 초검안에는 1814년 12월 12일 밤 고은옥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 정황이 자세하다.
먼저 고은옥의 집에 세 들어 살았던 나은 갑의 진술을 보자.
“제가 고은옥의 집에 세 들어 사는데 지난 12일 밤에
김점룡이 어떤 여인을 데리고 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데리고 온 여인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먼저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땔감으로 방을 데운 후 방으로 들어가는데
이미 한밤중이었습니다.
밤이 지나 아침 해가 높았으나 일어나지 않고 아무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문밖에서 불렀으나 대답이 없고 창문이 젖어 있는 데다 연기가 피어 나와 매우 놀랍고
괴이해 곧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안으로 문고리가 잠겨 있어 힘껏 문을 부수니
연기가 방 안에 자욱하였고 두 사람은 화염 가운데 껴안고
누운 채로 온 몸이 불에 타 문드러져 숯덩이가 되었습니다.
놀라고 두려워 곧바로 고은옥에게 달려가 알린 후 함께 불을 껐습니다
. 정룡의 아내도 데려와서 같이 보았습니다.
불은 방안의 물건에 옮겨 붙어 지붕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김정룡의 오른발은 화로에 닿아 있었는데 아마 깊이 잠든 뒤에 담아놓은
불에 옷이 닿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이 같이 불에 타서
모두 목숨이 떨어진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당시 김정룡의 아내 김소사는 12일은 시아버지의 제삿날이었으며
당일 남편 김정룡이 밖에 일을 보고 늦게 귀가한다고 나간 후 소식이 없었는데
다음날 이웃집 아이가 달려와 고은옥의 집에서 남편이 불 타 죽었다고
알려와 비로소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급히 가서 보니 화염이 방에 가득하였고 남편의 머리는
여자의 오른팔을 베고 있고 여자의 다리는 남자의 배 위에 걸쳐 있었습니다.
남편의 오른쪽 발이 화로 위에 있었고 온 몸이 데어 문드러져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중략) 오른발이 비록 화로 위에 걸쳐있었으나 발은 데지 않았고
불은 허리부터 다리 위에 있었습니다. 방구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구멍이 없었으며 불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으며
몸에 목맨 자국이나 칼에 찔린 자국이 없고 또 피가 흐른 자국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돌릴 수도 없으니 관아에 고발하여 시체를
검시하면 피해가 생기고 이익이 없을 줄로 생각하여
곧바로 관아에 고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라고 저간의 사정을 진술했다.
당시 사망한 김정룡의 검시장에는 불탄 흔적이 뚜렷했다.
나주 사또가 오작 사령 등과 작성한 시장(屍帳)의 내용이다.
“두 눈에서 선혈과 흰 즙이 흘러나와 서로 섞였고 어금니는 꽉 다물었으며
왼쪽 어깨의 움푹 팬 뼈 부위가 불에 타 시커멓고
왼쪽 어깨뼈와 겨드랑이가 데어 문드러졌다.
두 어깨에서 팔꿈치 사이와 두 팔의 팔꿈치가 모두 데어 까맣고
두 손은 데어 문드러졌으며 오른손은 주먹을 쥐었고 왼손 역시 약간 주먹을 쥐었다.
양쪽 갈빗대와 옆구리 및 하복부나 두 사타구니는 불에 데어 문드러졌으며
피부가 벗겨져 말아 올라갔고 생식기는 곧게 섰으나
까맣게 불탔고 두 무릎과 두 다리와 정강이 모두 까맣게 그을렸다.”
영락없이 불에 타 죽은 시신이었다. 함께 죽은 무명의 여인 역시 불에 타 훼손된 상태였다.
뜨거운 방에서 의식을 잃고 불타 죽은 것
당시 나주 사또는 의심스러운 옥사가 많지만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고 운을 떼었다.
“남녀관계가 지나쳐 죽는 일이 있지만 대부분 남자가 사망하는 일은 있어도
여자와 둘이 함께 죽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이 첫째 의문점이요,
남자는 팔을 베고 여자는 남자의 배에 발을 올렸으니 서로 껴안고서
죽는 줄도 모르고 놓지 않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의문점이다.
불은 연소되어 옷은 탔는데 버선 등은 그대로이니 셋째 의문점이요,
불은 아래로부터 위로 타올라가는 법인데 허리와 배는 대부분 시커멓게 불타버렸는데
등 쪽은 화상이 가벼우니 네 번째 의문점이요,
가슴 아래 부위는 모두 타서 문드러졌는데
남자의 생식기는 오히려 뻗친 채로 그대로니 다섯째 의문점이요,
두 남녀가 누웠던 곳의 재와 먼지를 깨끗이 치우고 초(醋)를 뿌려보았으나
방바닥에 핏자국이 전연 발견되지 않았으니 여섯째 의문점이요, 마지막으로 불에 타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대개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이상할 게 없지만
두 사람이 모두 구할 생각조차 못하고 꿈꾸듯이 죽었으니 일곱째 의문점이다.”
나주 사또는 두 사람이 잠자듯 불에 타 죽은 일을 전연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원록’ 등을 인용하여 사망원인을 설명해보려고 했다.
“‘무원록’에 땔감 연기 때문에 죽은 조문을 살펴보면
‘탄을 구들에 때면 불이 잘 타오르는데 악취가 난다.
사람이 연기의 더운 기운을 맞으면 감각을 잃고 저절로 죽는데
밤에 가위에 눌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시신과 비슷하다’는 조문을 인용할 수 있다.
이제 두 사람은 추운 겨울을 당해 한 달 넘게 비워둔 방을 빌려 갑자기 땔감을 때고
하룻밤의 인연을 맺으려 하였다.
구들이 달궈지자 습기와 찌는 듯한 더움이 생기고 악취가 맞닥뜨려 연기에 접촉되어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워지면서 마치 가위가 눌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 경우이다.
죽은 뒤에 화로의 얼마 남지 않은 불씨가 솜옷에 붙으면서 밤새 불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연기에 병들어 죽었다고 하기도 어렵고
온전히 불에 타서 죽었다고 결정할 수도 없다.
이에 사망원인을 ‘방 안의 더운 기운에 의식을 잃고 불에 타 죽음’이라고 기록한다.”
전라도 감영의 제사
나주 사또의 보고를 받은 전라감사 역시 본 사건이 무척 괴이하고 난해하다고 인정했다.
한 번에 둘이 죽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치로 미루어 본다면 새벽에 아버지의 제사를 마치고
이미 하루 저녁잠을 설쳤고 저녁에 음탕한 여자를 만나 동침한 데다가
석 잔의 술을 마셔 취기가 더해진 게 분명하다.
여기에 불 때지 않던 방에 불을 지폈고 음습한 방에서 지나치게 관계를 하는 동안
밤이 깊었던 것이다. 남녀는 너무도 피곤하여 너나없이 서로를 베개 삼아 깊이 잠들었으니
비록 수없이 불러도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옷은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손과 발도 멋대로 놓았다가 화로의 불이 우연히 솜옷에 붙어 조금씩 태우면서
독한 연기가 방안을 채운 것이다. 불이 몸에 닿지 않았으니
놀라 깨어나지 않았고 잠은 깊이 들어 알아채지 못한 채 연기를 마셨으니
의식이 몽롱해지고 점차 희미해지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지각도 없어지게
되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불이 화로에서 솜으로 옮기고 솜에서 몸으로 붙어 꺼지지 않고 타면서
마침내 기세가 맹렬했으나 솜은 두께가 있으므로 버선으로 번지지 않았고
타면서도 등 쪽은 가볍게 탄 것이다. 데어 문드러지기 전에 이미 저 세상의 문턱에 있었으니
불타 문드러질 때는 어찌 사람이겠는가. 방바닥에도 핏물이 밴 흔적이 없으니
사람의 모략이나 흉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검험하여 증거가 있고 조사하면서 사실이 분명해졌으니
다시 사실을 밝힐 새로운 단서는 없을 듯하다.”라고 정리했다.
전라감사는 김정룡이 제사를 지내 피곤한 데다 술에 취한 채 화간 하다
잠이 깊이 들어 연기에 질식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고,
이후 불이 맹렬히 타올라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불타 죽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방바닥에서도 핏자국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두 남녀의 죽음은 사고사가 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다산의 음화론(淫火論)
다산은 나주 사또와 전라감사의 보고서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즉 먼저 죽은 후에 불탔다고 말하면 가능하지만 방 안의 뜨거운 더위와
연기에 질식하여 거의 죽은 후 다시 불에 타 죽었다고 말한다면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 두 번 죽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산은 이런 식이라면 죽은 뒤에 사람을 목매달아 위장하거나
죽은 뒤에 물에 빠뜨린 경우도 죽은 뒤에
또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산에게 죽음의 원인은 질식 사거나 혹은 불에 타 죽었거나 한 가지였다.
다산은 음화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남녀 두 사람의 교접 시 정욕의
불꽃이 몸속에서 불을 일으켜 두 사람 모두 타 죽는다는 설명이다.
괴력 난신을 말하지 않던 다산으로부터 나오기 힘든 의견이었다.
자신도 이를 의식하여 여러 가지 고사를 증거로 들고
통달한 자라야 믿을 수 있다고 부언했다.
다산은 우선 중국의 유사한 일을 인용했다.
중국 허베이 성의 한 부잣집 며느리가 친정에서 돌아온 다음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남녀가 모두 불에 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침상을 보니 두 사람의 몸은 불탔지만 다리는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다산은
‘음욕의 화근’에 대한 불가의 논리를 활용했다.
부처는 음탕한 교접이 그치지 않으면 크고 맹렬한 불이 일어나고
극도에 이르러 욕화가 갑자기 불꽃으로 일어나 결국 스스로 탄다고 말씀하셨다.
그 불이 침상 자리와 집을 태우지 않는 것은
욕망으로 인한 불은 보통의 불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사와 정욕의 화근에 대한 불가의 학설로는 부족했던지
다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의학 지식까지 동원했다.
“소의 심장과 신장 등 장기들을 살펴보면 누런 기름이 끼어 있는데
살아서는 기름이 생동하다가 죽으면 흰색으로 엉기게 된다.
사람도 같아서 신장 등에 누런 기름이 끼었다가 정욕이 치솟고 갈고 비비어
극도에 달하면 불이 붙어 안으로 장기를 태우고 사람의 목숨은 곧 끊어지고
이 불이 밖으로 나와 살갗이 타고 사지와 몸뚱이에 미치게 되면
남녀 두 목숨이 동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주의 시신이 몸통은 탔으되 다리가 타지 않았으니
대개 그 불이 몸속의 신장이나 심장에서 타올라 겉으로
나오면서 배에서 몸으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믿기 어려운 일을 믿으려면 보다 많은 증거와 신뢰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다산은 너무나 믿기 어려운 일이라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자료들을 제시하여 설득해야 한다고 보았다.
단지 믿기 어렵다고 대충 조사하지 말고 왜 그런지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사또들을 능력 있다고
칭송하는 세태를 다산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일처리가 신속하면 실수가 많을 뿐이요, 일처리가 늦은 것은 꼼꼼하여
다시 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논한 다산은 빨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올바른 판단에 이르는 게 우선임을 강조하였다.
무슨 일이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것, 다산의 길이었다
[출처] 31. 믿기 어렵다고 대충 조사하지 말라
첫댓글 예향님
<2022 2월18일 /조선의 명판결 -믿기 어렵ㄷㄱㆍ고 다충 조사하지 말라>
고운 정보글 다녀갑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썩어 있어서겠지요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코로나와 감기에 조심하시길!~~~~
오늘도 행복한 금요일
아름다운 날들 되시길!~~~~~
그러니요.
그 옛날 역사를 보면서
놀랍기도 합니다
고운 댓글 늘
고맙습니다
주말 행복 하셔요
월요일 뵈어요
헬렌 님
조영남의 좋은 곡들을 함께해주시고
조선의 명판결 - 믿기 어렵다고 대충 조사하지 말라
다산 정약용은 흠흠신서를 저술하여 사건을 자세하게 적고
그 사건의 원인을 세세하게 적어 야사를 보면
가끔 이런 것을 보게도 되더군요
하여튼 다산 정약용은 훌륭하신 분이시죠
이런 분이 계신다는 것에 긍지를 갖게 합니다
오늘도 게시해주신 별스러운 사건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가 오후엔 풀린다 하네요
따뜻하시고 행복한 불금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요
조영남이 노랠 좋아해요
인생은 어수선하게 살앗지만서도
이렇게 특별한 역사는 봅니다
저도 옮겨 오면서
공부많이 한답니다
가끔은 어이쿠야 하면서요 ㅎ
월요일 올게요
뭘...
특별한 작품이 잇으면 슬그머니 다녀 갈것이고 ㅎㅎ
쉬세요
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토요일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