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에서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73호로 지정 되었다 탈놀이의 유래는 가산리 노인들에 의하면 약 200∼300년의 전통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확증할 만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다.다만 가산리는 조선 말기까지 조창(漕倉)이 있었던 곳으로 7개 군의 조곡(租穀)을 징수하여 제물포로 운반하것들은 이 탈놀이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말해 준다. 가산리에 전래되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봄에 가산의 바닷가에 궤짝이 표류해 와 주민들이 열어보니 탈과 놀이의 대사가 적혀 있는 문서가 들어 있었다. 그 뒤 탈은 궤에 모시고 놀이 때에만 썼다고 한다. 이상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가산 오광대의 발상은 100년 이전으로 소급시킬 수 있다.이 놀이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천룡제를 지내고 이어 지신밟기를 계속하다가 대보름날 밤에 연희한다. 가면을 궤짝에서 꺼낼던 항구로, 그 당시는 약 3백 호의 대취락지로서 큰 시장이 섰다고 하므로 탈놀음이 연희될만한 곳이었다. 당시에는 탈놀이를 ‘조창 오광대’라 호칭하였다. 음력 정월 초하루에 지내는 천룡제(天龍祭) 직후에 시작하는 지신밟기가 정월 보름에 연희하는 오광대와 밀착되어 있는 때에는 연희자들이 모인 가운데 양반역이 간단한 고사를 지낸 다음 각기 배역의 탈을 가졌으며, 초저녁에 공연을 알리는 의미에서 조창 오광대의 깃발을 앞세우고 말뚝이·양반·무당·풍물의 순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음은 탈놀이로 제1과장(科場)은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인데 황제장군(양반)을 중심으로 사방신장이 제자리에서 춤을 춘다. 이 과장은 고사(告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식무(儀式舞)이다. 제2과장은 ‘영노’이다. 사자 모양을 한 영노가 춤을 추며 등장하여 ‘비-비’소리를 내며 놀이판을 돌아다닌다. 영노는 춤추고 있던 신장들을 차례로 물어 퇴장시키고 결국 황제장군을 잡아먹는다.이 때 포수가 등장하여 영노에게 총을 겨눈다. 영노는 포수와 대치하여 싸우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양반계급에 대한 증오의 발로이다. 제3과장은 ‘문둥이’로 문둥이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한 장면이다. 눈·코·귀·입·팔·다리 등이 심하게 상한 문둥이 5명이 등장하여 장단에 맞추어 병신춤을 추고, 도(都)문둥이의 지휘에 따라 장타령을 하기도 하고 앉아서 이를 잡기도 한다.또한, 투전을 하며 싸우기도 하는데, 이때 천연두를 앓는 아들을 업은 병신 어딩이가 투전판에 개평을 청했다가 발에 채고 매도 맞는다. 화가 난 어딩이의 고발로 순검이 와서 모두 포박하여 끌고 나간다. 제4과장은 ‘양반’으로 양반을 모독하는 말뚝이 재담의 장이다. 양반이 두명 또는 세명의 양반들을 데리고 나와서 춤을 추는데, 하인 말뚝이가 들어와 문안을 드리고는 상전인 양반을 돼지에 비유하며, 또 양반의 마누라를 자기 배 위에 더덩실 싣고 춤을 추었다고 희롱한다.이어 말뚝이가 외설스러운 말로 양반의 신분을 야유하면 양반은 이에 맞서 자기의 지체와 재주를 자랑하다가 함께 춤을 추며 퇴장한다. 제5과장은 ‘중’으로 파계승의 장이다. 소무(小巫)가 서울애기를 데리고 와서 양반 앞에서 춤을 추는데 상좌(上佐)가 노장을 모시고 등장한다.노장이 서울애기를 유혹하여 업고 달아난다. 말뚝이에게 잡혀온 노장은 매를 맞고 양반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에 음양타령을 부르며 굴갓·염주·죽장을 차례로 던지고는 마지막으로 썼던 가면까지 벗고 여러 가지 단가를 부르며 속화(俗化)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소리꾼이 뛰어들기도 한다. 제6과장은 ‘할미·영감’으로 영감과 본처인 할미와 첩인 서울애기와의 애정적 삼각관계를 표현한 장면이다. 할미가 궁둥이춤을 추면서 등장하면 아들인 마당쇠가 따라 들어와 외설스러운 대화를 주고받는다. 또한 봉사이며 신장수인 옹생원이 와서 할미를 희롱하고 옹생원이 준 돈으로 과자를 사먹은 마당쇠가 배앓이를 하니 의원이 와서 침을 놓아 고친다. 영감이 서울애기를 데리고 들어와 재산을 분배하되 좋은 것은 모두 첩에게 주고자 하므로 할미는 반발하고 영감은 홧김에 물건을 부수다가 동티로 까무러친다. 옹생원을 불러다가 괘를 빼고 독경하였으나 효험이 없어 끝내 무당을 불러 오구굿을 한다. 등장하는 가면은 오방신장·영노·양반·말뚝이·문둥이·노장 등 30개로 대부분 종이로 만들고, 양반·문둥이·말뚝이는 바가지로 만들었다(도표 참조). 반주악기는 꽹과리(쇠)·징·북·장구 등이며, 장단은 굿거리가 주로 사용되고 춤은 덧뵈기춤이 주로 쓰인다. 1960년 마지막 놀이를 한 뒤 중단되었다가 1971년 대사를 채록하고, 1974년에 재연한 이후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8년 현재 예능보유자로는 한계홍(韓季弘, 옹생원·악사·가면제작)·김오복(金五福, 양반·오방신장)·한윤영(韓允榮, 말뚝이·할미·가면제작) 등이 지정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가산 오광대 보존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마을 주민 40여 명 그리고 사천 축동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활약하고 있다. 가산 오광대의 특징은 오방신장무가 있고 영노가 사자로 나오는 것 5명의 문둥이가 나오는 것이고 양반들이 총 3명 4명이 있다는 것 중이 음양 신세타령 하고 파계 하는것 영감이 죽는 다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가산 오광대 (駕山五廣大)
사진 : 문화재청 & Google & 김수남 기념사업회
가산오광대 탈들 (종이와 바가지로 만듬)
서방백제장군
중앙황제장군
남방적제장군
북방흑제장군
동방청제장군
오방신장들 (오방색을 의미하며 동방청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남방적제장군 북방흑제장군 중앙황제장군등 5명의 장군들이 서로 동서남북으로 서서 춤을 춘다 이때 황제 장군이 양반이 되어 영노와 상대한다 의상은 흰 민복에 짚신을 신고 오색 더거리를 입고 오색으로 칠한 패랭이를 쓴다 손에는 한삼을 낀다)
작은양반 (3개 또는 2개이며 모두 흰 민복에 옥색 두루마기와 갓을 쓰고 부채를 든다 갖신을 신었다 )
말뚝이 (양반과장에서 양반을 모욕하고 농락하는 역할로 나오고 중과장에서 서울애기를 겁탈한 노장을 혼내는 역할을 한다 흰 민복에 검정 더거리 행전을 메고 전대띠를 메고 패랭이를 쓴다 짚신을 신고 그리고 채찍을 들었다)
큰양반 (대바구니로 만든 탈이며 양반과장에서 말뚝이와 대립하는 역할로 나오며 할미 영감 과장에서 할미의 남편으로 나온다 재산분쟁을 하다가 살림을 부수는 과정에서 조상 단지를 부수다가 조상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결국 동티나서 죽는다 흰 민복에 노란도포와 노란 술띠를 메고 정자관을 쓰고 갖신을 신고 태극선 또는 한지선을 들고 지팡이와 장죽을 들었다 )
영노 (사자탈이며 대나무 키로 만들었다 옷에 털이 달렸으며 2명이 들어가 연희를 한다)
할미 (큰양반의 마누라이며 마당쇠의 엄마다 흰 치마 저고리에 머리 수건을 썼으며 짚신을 신고 지팡이와 장죽이 소도구며 요강 물레 등이 그외 사용하는 놀이 도구다)
소무 (중과장에서 나오며 서울 애기를 데리고 나온 다음 큰양반 앞에서 희롱 하면서 장삼춤을 춘다 흰 장삼에 가사를 둘렀고 고깔을 쓰고 짚신을 신었다)
몰이꾼
포수
포수와 몰이꾼 (영노과장에서 영노를 쏴 죽인다 포수는 흰 민복에 더거리를 입고 짚신을 신고 사냥 총과 망태기를 들고 나오고 몰이꾼은 흰 민복에 조끼 짚신을 신고 죽창을 들고 나온다)
마당쇠 (뭔가 모자란 바보이며 할미와 큰양반의 아들이다 흰 민복에 짚신을 신고 나온다)
서울애기 (큰양반이 서울에서 데려온 첩이며 초록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거나 머리 수건을 머리에 두른다 꽃신을 신었다)
중 (송낙을 쓰고 가사를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걸고 승복과 장삼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목탁을 치며 육환장을 짚고 나온다 서울애기의 자태에 반해 서울애기를 겁탈하고 큰 양반에게 끌려와 말뚝이에게 곤장을 맞고 음양 신세 타령을 부르다가 파계한다)
옹생원 (봉사 소경이며 흰 민복에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고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들고 나온다 독경 할때는 반드시 북과 꽹과리를 들고 나온다)
상좌 (중의 제자이며 승복을 입고 고깔을 쓰고 고무신을 신고 시주 바가지를 들고 바랑(스님들이 시주할때 매는 가방)을 매고 나온다)
문둥이들 (총 5명이며 한명이 도문둥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각설이 장타령 품바타령이며 타령이 끝나면 모두 투전판을 벌인다 어딩이가 나와서 깽패를 달라고 하자 모두 어딩이를 구타하고 놀이판에서 쫒아낸다 어딩이가 포졸에게 문둥이들이 서로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고발하자 결국 문둥이들은 포졸에게 걸려 놀이판에서 쫒겨난다 모두 누더기 바지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었다)
어딩이 (문둥이 과장에 나오는 거지로 깽패를 달라고 하자 결국 놀이판에서 쫒겨난다 분에 못이겨 포졸에게 문둥이들이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고발한다 누더기 바지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고 털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다)
무당 (영감 할미 과장에서 옹생원이 봉사 독경할 때 나와서 굿을 하는 역할이며 붉은 치마 저고리에 미투리를 신고 푸른 쾌자를 입고 주립(붉은 갓)을 쓰고 대나무 가지를 들고 나온다)
오무당 (총 5명이 등장하며 영감 할미과장에서 영감이 죽자 천도굿을 한다 의상은 모두 치마 저고리에 흰 장삼에 고깔을 쓰며 가사를 양쪽 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그리고 미투리를 신는다)
사진 : 하회동탈박물관 & 김수남 기념사업회
첫댓글 여기 까지가 야류와 오광대 소개였습니다 다음시간에는 기타 지역의 탈놀이를 소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