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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尊賢養士 스크랩 조광조와 수지 심곡서원(深谷書院)
이장희 추천 0 조회 50 15.11.26 22: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 선생을 배향(配享)한 심곡서원(深谷書院)

묘소(墓所) 수지에 있다. 갈 때는 (여기 아니라 어디라도) 사전지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그냥 가면 아파트에 갇힌 그렇고 그런 옛날 기와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정암(靜庵)은 너무나 유명한 분이고 내가 해설하기에는 힘이 딸린다.

자세히 알고 싶으나 딱딱한 책이 겁난다면 최인호 씨의 소설 유림(儒林)을 권한다.

필자도 그걸 읽고 심곡서원 찾아갔다. 서울신문 연재를 인터넷으로 읽었는데

여기에 링크 붙이려고 찾으니 어느 틈에 내렸다.

하긴 인터넷에 그냥 놔 두면 누가 돈 내고 책 사보겠나.

 

 

유림(儒林)은 전 5권인가로 돈이 좀 들겠으나 값어치는 있다.

형편이 안되면 정암(靜庵)은 1권에 나올 테니 그것만 사 보다가

재미있으면 나머지 차례로 지르던지.

 

최인호씨는 유림(儒林) 도입부에서 정암, 이어 공자와 맹자, 다시 우리나라로

와 퇴계와 율곡으로 맺으니 다섯 인물을 통하여 조선 사림의 유래를 밝혔다.

 

서평이라면 내공이 태부족하여 그냥 읽은 느낌을 말해 본다.

지식전달이라면 (도올이나 신영복 선생 글에 비하여) 어설프다.

소설이라면 한 말 하고 또 하여 골기(骨氣)를 느낄 수 없는 데다가,

주인공에 대한 존경만 있지 비판이 없다. 작가의 눈으로 인간 내면의

보편세계를 파 헤치는 것은 필수 아니던가? 그러나 읽기에는 더욱 수월하여

잘 팔리는 모양이다.  발간한지 얼마 안되어 벌써 15만 부라니 출판사 뻥을

감안해도 많이 나갔다. 잠깐 15만? 아무래도 나누기 5 하여 3만 질 쪽이겠다.

 

 

심곡서원 가는 길

 

분당 끝까지 가면 죽전 4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고가 위로 직진하면

구성-신갈 수원이고, 좌회전은 죽전-용인 방향이다. 고가 아래에서 우회전

하여 43번 국도를 타면 수지를 거쳐 동수원으로 간다. 죽전 4거리에서

5분 - 4 km 정도에 있는 ‘두산연구원’ 을 드라이브 목표로 삼도록.

 

 

 

지도 : 구글-심곡서원. 정암 묘소는 위 지도처럼 서원 바로 근처다.

 

하마비(下馬碑)

 

두산 연구원 옆길에서 서원으로 꺾기 바로 전에 하마비가 있다.

 

 

사진 : 하마비. 옆에 해설이 있다.

 

정암이 이곳에 시묘(侍墓)할 때 어느 날 잠깐 나갔다 오니 이웃집 아낙네의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종자에게 사연을 알아 오게 하니 여인의 외아들

5대 독자가 마마(천연두)를 앓다가 방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선생은 서찰을 써서 종자에게 주면서 '어디 가면 백발노파가

푸른 보따리를 가지고 지나 갈 것이니 이 서찰을 전해 주라' 고 일렀다.

종자가 일러준 곳에 가니 과연 백발노파가 있어 절하고 서찰을 내밀었다.

노파는 이를 보더니 '아하 정암선생의 부탁이니 어쩌겠수' 하면서 알았다고

하였다. 노파가 든 푸른 보자기 속에 5대 독자의 혼이 있었다.

종자가 부지런히 돌아와 보니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

 

그때부터 이곳 상현리 마을에는 마마(천연두)가 ?어졌으며 선생의 은혜를

잊지 못한 5대 독자의 어머니가 하마비(下馬碑)를 세웠다는 전설이다.

 

정암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싫어하는 정통 성리학자이나 민간전설이란

그런 것 가리지 않는다. 또한 무속에서는 최영 장군처럼 억울하게 죽을수록

주력(呪力)이 더 센 법이니 정암이 동원되었다고 이상할 것이 없다.

 

 

홍살문

 

 

우리나라 홍살문은 다 이렇게 생겼다. 사진을 겨울에 찍어 놓고 여름에 소개하니 시즌이 맞지 않는다.

 

외삼문(外三門)

 

 

 

일조당(日照堂)

 

본채 일조당(日照堂)은 정암이 능주 유배지에서 사약 받으며 남긴 절명시(絶命詩)에서 딴 이름이다.

 

 

사진 : 정암의 절명시

 

애군여애부 (愛君如愛父)

임금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

 

우국여우가 (憂國如優家)

나랏일 걱정하기를 가족 돌보듯

 

백일임하토( 白日臨下土)

맑은 해 땅을 환히 밝히니

 

소소조단충 (昭昭照丹衷)

내 붉은 마음 거울처럼 비치네

 

과연 하늘을 우러러 또 땅을 내려 보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절개 높은

선비가 마지막 남길 만한 구절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 아닌지. 퇴계는 정암을 다음과 같이 평하며 죽음을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됨을 면치 못하여

무릇 건의하고 시행하는데 조급하게 굴어서 장황하고 과격하며

또는 나아가 젊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유행에 뜻이 맞아

함부로 날뛰는 자가 그 사이에 많이 끼어 있었고, 늙은 신하들이

새 시의(時議)에 배척당하여 이에 따라 공박(攻駁)을 당한 자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치고 있었다.

 

뜻은 좋지만 방법이 너무나 태급(太急)하여 중용을 잃다가 선생 때문에

기득권을 빼앗긴 무리의 모함을 받았다는 해설이다. 퇴계는 차마 임금

원망을 못 했지만 최인호 씨는 중종 또한 정암에 진저리 내며 죽이는

과정을 소설가적 상상력을 붙이며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지도 않으며

잘 그려내고 있다.

 

정암(靜庵) 묘역

 

심곡서원에서 2-3분 걸어 수원 가는 43번 도로 옆에 묘역이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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