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의 문서들 (사도신경, 디다케)
1. 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d)
우선 사도신경에 관해 알려고 하면 사도신경의 정체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고 또한 내용상 신학적 견지에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1) 사도신경의 정체
사도신경은 어떻게 해서 생겨졌는가? 우리가 가진 신앙과 행위의 규범이요, 표준인 사도신경이 성경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모든 개혁 교회들에는 사도신경이 마치 우리 신앙의 모든 핵심을 요약한 것처럼 중요시한다. 도대체 사도신경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사도신경이 정말 우리 신앙의 핵심을 요약해 놓은 것인가? 여러 가지 의심이 생긴다.
1) 사도신경에 관한 전설
그러면 사도신경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여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설을 소개하도록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사도신경은 A.D. 55년에 12 사도가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독교의 요약을 마련하기 위해 성령의 영감으로 베드로가 처음 한 구절을 기록하자 차례차례 한 구절씩 더하여 오늘의 사도신경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에서 말하는 또 다른 말은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제정하지는 않았으나 사도들의 신앙이 요약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이다. 사도신경은 수백 년 후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수차에 걸친 편집과 보완을 거듭해서 만들어진 가톨릭교회의 작품이다.
2) 사도신경의 역사
사도신경이 A.D. 300년경 이전에는 전혀 생긴 일이 없다. 앞서 초기 신약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는 중에 확인한 바이지만 신약교회가 생긴 A.D. 33년부터 100년경까지는 사도들이 건재했으므로 사도신경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주님을 목격한 사도들과 다른 목격자들의 상당수가 남아 있었으므로 저들에게는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도들이 다 떠나고 사도들의 제자인 속 사도, 또는 교부들 때는 침례 문답 때 간단한 문답서 같은 안내서가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A.D. 100-125년 사이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앙의 규율(Rules of Faith)이란 것이 오늘날의 요리 문답서 비슷한 것이있었을 것으로 본다. 또 170-180년 경에 현재와 같은 사도신경의 형태가 있었다고 하나 그같은 주장은 하나의 가설로 아무도 증명을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신조는 4세기인 A.D. 325년에 나타난 니케아 신조이다. 이때의 신조 내용을 보면 아리우스의 신학 사상을 공격한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강력하게 반영되고 사도신경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그 후 교회 회의는 계속 거듭되어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전의 니케아 신조를 확인했고, 431년의 에베소 회의에서는 펠라기우스 주장이 부정되었다. 451년에는 칼케돈 신조로 삼위일체론의 결정을 보며, 553년과 680년에 2, 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이런 회의에서 사도신경을 제정했거나 합의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정직한 역사가의 증언에 의하면, A.D. 400년경에 활약한 암브로스 루피너스에 의해서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 후에 A.D. 650년경에 '거룩한 가톨릭교회'(Holy Catholic Church)란 말이 삽입되고, 또 650년 이후에 '성도의 교제’란 말이 추가로 삽입되었다. 그리고 A.D. 750년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사’가 삽입되었다.
이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A.D. 325년의 니케아 신조가 한 시발점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해서 역사 속에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보완과 삽입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A.D. 750년대에 완성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작품이라는 결론이 생긴다.
여기에 대해 혹자는 사도신경이 너무 늦게 제작된 것을 호도하기 위해 A.D. 150-180년경 또는 381년이나 아주 고대적인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지할 역사적 증명이 없다. 한국 내 몇 학자의 책에 의하면 A.D. 381년경에 사도신경이 완성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381년의 교회회의록을 살펴보면 그 같은 일을 결정했다는 근거가 없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사도들 작품이 아니고 교회가 많은 세월 동안 발전하면서 조금씩 보완하던 것을 A.D. 750년경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제정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여기에 관한 자료는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제2권, 528-537페이지에서 잘 소개되고 있다.
(2) 사도신경의 검토
우선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작품이 아니다. 고로 사도신경이란 말이 맞지 않는다. 혹자는 사도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해도 사도들의 신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나 사도신경이 꼭 사도들의 신앙을 종합한 것도 아니다.
그 내용상 몇 가지를 지적해 보자.
1) 사도신경의 제작연대가 A.D. 55년이라는 전설이 맞지 않는다. 그 이유로 A.D. 45년경에는 야고보가 순교했었고(행 12:1), 또 신약성경 중 절반 가량을 쓴 바울 사도가 배제된 사도신경은 그 이름이 전혀 걸맞지 않는다.
2) 앞서도 말했지만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모두 죽고 난 후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계속 보완되고 참가되었으므로 사도들 신앙의 요약이라고 하는 말은 할 수가 없다.
3) 내용 중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사'라는 대목이 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이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케 한 본디오 빌라도에 대하여 분한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동방 희랍정교회나 시리아교회는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인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를 마 27:19에 근거하여 성녀의 반열에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을 사용치 않는다.
그리고 이집트의 곱틱 교회도 사도신경을 사용치 않는다. 사도신경은 로마 가톨릭과 가톨릭에서 분리해 나온 개혁교회들만 사용한다. 이것은 세계적 교회 입장에 볼 때 한 편견에 불과하다.
4) 사도신경의 원문에는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라고 되어 있다.
즉 원문 대로 하면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 성도들의 교통을 믿사오며,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믿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말로는 '거룩한 가톨릭 교회'를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하였다. 물론 가톨릭이란 말이 공회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만든 가톨릭교회에서는 자기들만이 지상에서 유일한 교회이므로 자기들 교회의 결정대로 믿고 따르겠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여기에 개혁교회들이 기만당하고 있다.
5) 사도신경의 내용에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교회론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또 구원받은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교적 기능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단지 전통적 교회 유산을 그대로 순복하겠다는 '얌전한 신자 훈련용’으로 쓰여져 오고 있다.
6) 사도신경의 내용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엄위하신 면은 많이 강조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속능력 등은 말하고 있으나 이웃사랑은 물론이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도신경에는 구약의 율법적인 신앙에 제약받는 모습이 역력하게 강조되고 있다.
7) 사도신경을 함께 이해하는 것으로 신앙의 동질성을 찾으려고 하는 현대교회의 동향은 그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는 것은 불문에 부치고 관습적 암기와 동의가 신앙인 양 착각으로 오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사도신경이 아니라 성경을 수없이 많이 암송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격 속에 변화가 없는 한 그는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다.
(3) 결론
사도신경은 전혀 불필요하다. 개혁교회들이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이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요식행위라면 그것은 전혀 착각이다. 사도신경을 제아무리 많이 암송한다 해도 그의 인격에 변화가 없는 한 그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좀 더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도신경 때문에 신앙이 자랐다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신경 속에서 신앙의 덕이 될 요소는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은 건덕상 이해는 되나 신앙과 구원에는 결코 도움이 못 되는 가톨릭교회의 산물이다.
2. 12사도 교훈집 (Didache)
(1) 디다케의 유래
「12사도의 교훈집」이라는 이 책은 신약 외경에 수록되어 있다. 원제목은 ‘12사도에 의하여 이방인에게 준 주의 교훈’으로 되어 있다. 이 문서는 1873년 희랍정교회 주교인 필로데우스 브리에니우스(Philotheus Bryennius)가 콘스탄티노플의 예루살렘도서실에서 발견하여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출간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가 알려지면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하였다. 즉, 「12사도의 교훈집」이라는 책명과는 달리 그 내용이 사도들의 교훈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었고, 또 이 책을 인용하면서 기독교의 탈선 등이 생겨난 것이다.
(2) 디다케의 내용
전편이 모두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1-6장 : 주로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를 취급하였으며 두 갈래의 길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생명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을 설명한다. 그 내용이 유대교의 교리문답 형식과 비슷하고, 초기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때 그들 교육을 위해 이 문서가 사용된 것 같다.
2) 7장 : 주로 침례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였으며, 즉 물이 없는 지방에서 침례를 실시해야 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언급하고 있다. 이 문서는 물이 없을 경우는 물을 세 번 붓거나 세 번 뿌리라고 한다. 그 외에 금식, 주의 만찬도 다루었다.
3) 9-10장 : 공동식사 전과 끝난 후의 감사의 절차와 형식에 관한 규정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유대교의 축복형식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변경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4) 11-13장 : 예언자와 사도들이 전하고 가르쳐준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관한 논의로 설명되고 있다.
5) 14-15장 : 주일, 감독, 집사 장립에 관한 교훈이 수록되어 있다.
6) 16장 : 종말론을 다루었다.
(3) 디다케의 영향
1) 이 문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한다면 물이 없는 지방 (이집트나 기타 사막국가)에서 사는 사람의 기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이 없는 지방에서는 침례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문서는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는 저자가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2사도 교훈집이라는 책명과는 달리 12사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의 작품이다. 이것은 12사도 이름을 빙자한 위조작품이다.
2) 디다케는 내용도 사도들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다. '70계명은 하지 말라', '40계명은 지키라' 등 계명을 요구하는 것은 복음적이 아닌 율법적인 것이다.
3) 디다케는 기독교 의식의 잘못된 관행을 열어놓게 했다. 침례는 분명히 물에 잠그는 의식이었다. 유대 나라도 물이 귀한 나라지만 물이 많은 먼 곳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침례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물이 귀하다는 이유로 물을 붓거나 뿌리도록 한 것은 기독교 의식을 변질시키는 기초역할을 한 것이다.
4) 신약성경 중 교훈이라는 말이 'Sifaxy'이다. 신약 안에도 이 용어가 30여 회나 나온다. 기독교가 전도해서 교육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사도들의 사상과 전혀 다른 위장된 사도 교훈집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타락하게 되는 기틀을 만든 셈이다.
5) 이 문서의 연대를 대략 A.D. 125-165년으로 추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아주 일찍부터 사탄의 침공을 받고 있었다. 이 문서는 초대교회의 예배 모범과 생활이 어떻게 달라져 가는가를 알게 해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외경(Apocrypha)
외경은 성서의 정경 편집시에 제외된 여러 가지 문서를 가리킨다. 외경은 구약 외경 15권이 있다.
에스드라 제1서, 에스드라 제2서, 토비트, 유딧서, 에스더서의 추기(남은 부분), 솔로몬의 지혜, 벤시락의 지혜, 바룩서, 예레미야의 서간, 용광로 가운데서의 아사리아의 기도와 세 아이의 노래, 스잔나 이야기, 벨과 용, 므나세의 기도,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 등이 있다.
이들 구약 외경은 전부가 중간기 (B.C. 400-A.D. 직전)에 기록된 것으로, 구약성경이 39권으로 정경화 될 때(A.D. 90) 이 책들은 제외되었다. 그런데 1546년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들 외경 중 11권을 추가로 구약성경에 첨가시켰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구약의 외경이나 위경(거짓 문서)은 모두 주전 시대 작품이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친다.
신약의 외경은 수십 권이 있다(신약의 위경은 없다). 즉 복음서가 40권, 사도행전이 7권, 시간이 4권, 묵시록이 10권, 시가가 2권이 있다. 이들 외경을 알게 되면 현재 우리가 가진 정경으로서의 성경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1) 복음서 외경
1) 아그라파 (Agrapha) 사복음서에 전승되지 않은 예수의 어록을 모은 것인데 이것은 사복음서를 모방하여 개작한 것으로 본다.
2)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840 : 그렌펠과 헌트가 1905년에 옥시린쿠스에서 발견한 한 장의 양피지 사본인데 4, 5세기경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용은 예수와 대제사장 사이의 문답을 기록하고 있다.
3) 에게르톤 파피루스 (Papyrus Egerton 2) : 150년경에 이집트에서 기록한 것이다.
4)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654 : 그렌펠과 힌트가 1903년에 발견한 3세기 초의 것으로서 내용은 예수의 말씀 다섯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5)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1 : 1897년에 발견되었다.
6)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655 : 1908년 발견되었다.
7)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1224 : 학자와 예수의 대화가 수록되었다.
8) 카이로 파피루스 10735 : 예수의 탄생과 이집트 피난에 관한 내용이 취급되었다.
9) 피아움 단편 : G. 빅켈이 1885년에 발견했다.
10) 프리이 로기온 : 5세기 와싱턴 사본의 한 단편
11) 사도들의 서간 : 카이로 고고학 연구소에서 발견했으며 11 제자가 교도들에게
보낸 서간이다.
12) 스트라스부르그 파피루스 : 5, 6세기의 것이다.
13) 나사렛 사람 복음서
14) 에비온파 복음서
15) 히브리인 복음서 : 유대적 그리스도교 복음서 (2세기 전반)
16) 이집트인 복음서 : 이집트의 이방인 그리스도교 복음서
17) 베드로 복음서 : 2세기 중엽에 시리아에서 기록된 것이다.
18) 진리의 복음 콥트어로 된 시리아나 이집트에서 3세기경 성립된 것이다.
19)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 :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20) 파스티스 소피아 영지주의적 계시서
21) 예우(Jeu)의 두 책
22) 빌립보 복음서
23) 도마스 복음서
24) 마티아의 복음서
25) 유다의 복음서
26) 요한의 아포크리폰 (Apocryphon):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구원의 비의(秘意)를 소개했다.
27) 예수와 요한과의 대화
28) 마리아의 질문
29) 마리아의 복음서
30) 마리아의 겐나 (Genna of Mary)
31) 케린토스의 복음서 (Gospel of Cerinthos)
32) 말시온의 복음서 (Gospel of Marcion)
33) 아펠레스의 복음서 (Gospel of Aplles)
34) 바르데사네스의 복음서 (Gospel of Bardesanes)
35) 마니의 복음서 (Gespel of Mani)
36) 야곱의 원복음서
37) 도마스에 의한 유년 예수의 이야기
38) 아부가루스 전설
39) 콥트어 이집트인의 복음서 III
40) 콥트어 이집트인의 복음서 VII
이렇게 많은 복음서들을 제쳐놓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복음서만 갖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영광인가를 알 수 있다.
(3) 사도들의 행전
1) 베드로의 선교 : 희랍의 다신교와 유대교의 예배와 대비한 기독교의 단일성을 기록했다.
2) 요한행전 : 요한과 그리스도가 계시를 이야기한 것을 기록했다.
3) 베드로행전 : 베드로와 마술사 시몬과의 논쟁을 기록했다.
4) 바울행전 : 금욕, 부활, 내세 구원의 희망을 제시했다.
5) 안드레행전 : 일시적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내용을 기록했다.
6) 도마스행전 : 도마스의 남인도 전도 여행기
7) 위 클레멘스 문서
(4) 서간
1) 라오디게아인에게 보낸 편지
2) 세네카와 바울의 왕복 서간
3) 위 디도의 편지
4) 콥트어 야곱의 편지
(5) 묵시록
1) 이사야의 승천 : 전반은 이사야의 순교, 후반은 그가 본 환상을 기록했다.
2) 베드로의 묵시록: 천국과 지옥을 묘사했다.
3) 신탁집
4) 엘케사이의 서 (Book of Elkesai)
5) 바울의 묵시록
6) 도마스의 묵시록
7) 콥트어 바울의 묵시록
8) 야곱의 묵시록 I
9) 야곱의 묵시록 Ⅱ
10) 아담의 묵시록
(6) 시가서
나세네 시편, 솔로몬의 송가 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초기 문서로 전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 왜 하필이면 27권만이 신약성경이 되었는가?
여기에 대한 정경의 기준은
첫째, 사도성 (Apostolicity): 사도가 직접 썼거나 저자가 사도와의 관계를 뒷받침될 만한 동일 수준이냐?
둘째, 내용 (Contents) : 내용이 영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셋째, 보편성 (Universality) :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아 용납되었는가?
넷째, 영감성 (Inspiration) : 그 책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증거를 내보이고 있는가?
이 같은 4대 원칙을 놓고 A.D. 397년 칼타고의 제3차 회의에서 어거스틴의 주장으로 오늘의 27권이 정경으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 할 점이 신약성경은 모두 A.D. 100년 이전에 기록이 되었는데 왜 A.D. 397년에서야 정경 형성으로 끝이 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그만큼 교회가 핍박으로 인해 자신들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세월을 보냈고, 그다음에는 너무도 많은 각종 외경, 위경들이 난립함으로 인하여 교회가 이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을 정도의 자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세월 동안 많은 시련을 거치고 난 뒤 찬란한 보석 같은 진주를 갈고 닦은 후에 정경을 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현재의 27권의 성경을 규정지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