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1. 세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조용림 권사,이원준 장로,염성섭 장로,유춘자 권사,
성경말씀 에스겔 7:19~2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찬송 408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헌금 기도
광고 우리 집 준공됩니다.
찬송 376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쎄쎄쎄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신 곳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
구리구리구리구리 가위바위보
제가 커다란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침해가 심하신 우리 석 권사님께서
제 곁을 배회 합니다.
그러면 저는 제 무릎 앞에 의자를 끌어다
우리 석 권사님을 앉히고 이 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석 권사님께서는 죽어라 까르르 한 바탕 웃습니다.
그리고 이 놀이에서 제가 지고
우리 석 권사님을 모시고 자장면 집에 모시고 갑니다.
우리 석 권사님께서 어쩌다 한 번 드시는 자장면을 드시면서
아이구 너무 많네
이걸 어찌 다 먹지!
그러면서도 남김없이 드시려고 꾸역꾸역 드십니다.
그러고 라면 영락 채를 하셔서 고생을 하십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 어머님이 살아 계시기라도 하다면
우리 석 권사님처럼 아들 목사를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정채봉 시인은
엄마가 열여덟살에 정채봉 시인을 낳고
두 살에 엄마를 여의고
그래서
엄마 얼굴도 모르고
엄마 목소리도 모르고
어렴풋한 엄마 젖 냄새로만 기억이 나는 엄마 생각에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19절입니다.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20절,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21절,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게 하여
22절,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돈을 벌려고 죽어라 애만 씁니다.
그러다 허둥지둥 죽습니다.
아마 목사인 저 역시도 이러다 죽지 않겠습니까?
눈물이 납니다.
어제 토요일에도 저는 책 한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요양원에 왔습니다.
<참 좋은 당신>이란 시집도 읽고,
<마흔에 읽는 시>집도 읽고,
무거운 <에스겔 주석 집>을 두 권씩이나 끼고
좀처럼 잘 이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트를 타고 3층까지 올라 왔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으니
맨 먼저 다가와 인사하시는 우리 석 권사님을 반겨 맞고
각 방에 누워 계시는 우리 어르신들께 눈맞춤을 하며
발바닥, 종아리,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제 자리에 앉자마자 이 간호사가 와서 보고를 합니다.
목사님, 최연희 권사님이랑, 소연순 집사님이랑,
남상주 집사님이랑, 전예순 어르신,
한귀자 권사님, 이순희 어르신 모시고 병원에 가야겠습니다.
독감입니다.
제가 2층에 내려가 보았습니다.
우리 손일례 어르신이 끙끙 앓다가 저를 보고
목사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오른쪽 환도 쪽이 통증 때문에 죽것습니다.
엊그제 보호자분들하고 상담이 끝났습니다.
간암으로 전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도 모르시고 목사님께 살려 달라고
그래서 저는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주물러 드리고
위로를 해 드렸습니다.
장례 예식장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목사님은 맨 날 농담도 잘하시네.
그러면서 우리 손일례 어르신과 함께 슬프게 웃지요.
우두커니 휠체어에서 졸고 있는 우리 김성오 집사님께도
집사님, 힘차게 불러 봅니다.
눈물을 글썽글썽 거리며
목사님, 사랑해요.
이 말이 저에게 유언처럼 들렸습니다.
우리 김성오 집사님도 저와 12년째 살고 있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도 목사님 목소리만 들려와도 구세주인량
반가워하는 모습이 저를 너무나 슬프게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모시고 나가서 보신탕이라도 사 드려야겠습니다.
저 역시 감기에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저까지 아파 드러눕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이 온 통 콜록콜록 감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염 장로님께서 의사인까닭에
우리가 아플 때마다 뾰족한 주사기로
아픈만큼 치료해 주시지 않습니까?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미 한 송이가 향기를 뽐내는 대는 12시간이 소요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네 인생은
곧 시들어 버릴 빨강 장미 한 송이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까?
얼마나 예쁜 척,
잘난 척들을 하면서
목을 꼿꼿이 추켜세우고
궁댕이 흔들 흔들거리며 삽니까?
그래서 저도 아침이면 셔츠에 향수를 뿌리곤 합니다.
살아 있을 12시간만이라도
퀘퀘한 나이냄새 날까봐 그렇습니다.
어제 퇴근하는 길에 익산병원 중환자실에 들렀습니다.
임봉례 어르신께서 1개월여 식사를 못하시더니
감기에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난리가 났습니다.
병상에 한 노인이 두 손이 묶여 있는데
풀린 입으로 욕설을 하면서
두 다리가 날라 다니며 간호사들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살아서 뭐합니까?
목사인 저 역시도 이렇게 살까봐 심히도 걱정입니다.
임봉례 어르신께서
그 곁에 우두커니 누워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힘내세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이렇습니다.
감기만 걸려도 파리 목숨처럼 위태롭습니다.
장미 한 송이의 향이 12시간뿐,
그 이상 어떻게 살았다 뽐내겠습니까?
19절입니다.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20절,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21절,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게 하여
22절,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도대체 오예물이 뭡니까?
배설물입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나 여성의 월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오예물이란 것입니까?
은과 금, 재물이
오예물, 오물,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개그맨들의 우상인 주병진씨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병진씨는 아파트 제일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펜트하우스는 어마어마한 부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돈 많던 주병진씨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실려 온 주병진씨에게 의사가 물었습니다.
보호자가 누구냐?
그런데 돈만 있고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펜트하우스에서 으스대며 사는 주병진씨가 그 때 깨달은 것이
아, 이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
빈껍데기에 불과 하구나.
한마디로 오예물이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란 건 오물이고 쓰레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난한 우리들에게는
주병진씨의 이 말이 쉽게 와 닿지가 않습니다.
돈이 최고이고
돈이 제일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인생이란 것은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실존의 문제에 대하여
에스겔 선지자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입니다.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에스겔 선지자도
인생이란
심령과 창자를 채우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심령과 창자는 마음과 육신입니다.
인생이란
바로 마음과 육신에 만족감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과 은으로만
인생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창자만 채워지고
마음은 텅텅 비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돈이 전부인 것처럼
돈만을 위해서 죄악에 빠져 허둥지둥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최고의 가치는 돈입니다.
결코 심령, 마음,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입만 살아서
돈보다 사랑이라고 거짓을 말합니다.
이렇게 돈만을 의지하면서 살다가
돈 때문에 오히려 망해 버리고
돈 때문에 형제, 친구, 가족사랑까지 다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은과 금이 오예물, 오물, 쓰레기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례예식장에 가면은
죽을 때까지 돈을 모아서 뭐에 쓰려고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어 보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에
우리 고모님이 시장 길 모퉁이서 채소를 팔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청소를 하는데 장독 속에
5만원 지폐가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 조카인 저는
우리 고모님께
단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어본 일이 없습니다.
개그맨 주병진씨가
마천루,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살아보니
모든 것이 껍데기더라.
모든 것이 헛되도다.
개그맨 주병진보다 천배, 만배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전도서 1장 2절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허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잠언 11장 28절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이사야서 40장 6절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