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8:10~22)
하나님을 영원하고 유일한 왕으로 여기며 사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의 왕을 세워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신다.
사무엘이 사람들에게 세상 왕을 세웠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역기능을 설명하며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다.
우리에게 어떤 욕구가 일단 솟구치면
아무리 진실되고 충정어린 조언을 한다 해도
그 욕구와 반대되는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실행해 보고 싶어한다.
설령 실패의 쓴 맛을 본다해도 한 번 해 보고 싶은
위험한 열망이 들끓는다.
다른 이의 조언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리 강한 욕구라도
귀담아 들어야 함은 당연한다.
당시 사람들이 세상의 왕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듯하다.
먼저 하나님의 침묵이다.
현실에서의 급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직면하는데
이를 해결해주실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그러니 항상 내 옆에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행동할 수 있는 존재, '왕'이 필요했다.
두번째로는 그때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사사 체계 안에서 사무엘의 아들들이 저질렀던 비리 문제이다.
사실 첫번째 이유가 근본적인 문제였는데
울고 싶은데 빰 때려주듯,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여
첫번째 욕구를 밀고 나가는 빌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첫번째 이유에서 보듯
이들에게 직면한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사사 체계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 않는가?
어차피 사사 체계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을 왕정 체계로 바꾼다고
그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한 번쯤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은가?
묵상 에세이에서 제시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중략) 신앙이란 결국 내 안에서
승리하는 것이다.'에 답이 있는 듯하다.
그들이 이유로 삼았던 하나님의 침묵은 왜 발생하였는가?
그들의 범죄와 불순종,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마음은 그대로 두고 왕정체계로 제도를 바꾼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사사 체계의 불완전성에 대한 질의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온전하지 못한 사사들이 저지르는 일들이다.
사사들로부터 왕으로 리더를 변화시킨다고 해서 왕으로 등극한 이들이
갑자기 코페루니쿠스적으로 변혁되어 선량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인가?
결국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며
왕을 억지로 세워도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일만 더해진 것일 뿐이다.
결정적으로는,
하나님 아래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진리,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시점이 되었다.
이후로 더욱 매우 수직적인 계층구조가 형성되어
지금, 만인의 평등을 외치고 추구하는 일이
뭇 사람들, 더우기 기독교인들로부터도 불가능하고 터무니 없는 이상주의,
또는 불손한 사상으로 치부되곤 하지 않는가?
오늘 주일설교 말씀에서
내가 누군가의 바람이나 요청을 거부하거나 승인하는 근원적 요소를
우리는 재가 도움을 줄 자원의 부족 등으로 변명하나
사실은 '관계'의 문제라는 점 내용이 있었다.
어느 사람에게는 자원의 부족을 내세우며 거부하나
만일, 내 가족이 그 요청을 했다면
자원 하나 없더라도 무조건 요청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죄악은 아무리 Taugh한 현실의 상황을 내세워도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요원해진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중심과 동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원인이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